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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세대의 고통 '4개월 3주 2일'


 

 경제화와 민주화의 고통속에서 태어난 영화

<4개월 3주 2일>은 루마니아의 크리스티안 문주(Cristian Munjiu, 1968- )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속에서 태아가 낙태되기 전까지 자궁에 머물렀던 시간을 말한다. 영화는 현재가 아니라, 1987년 공산주의 정권의 독재자 챠우세스쿠가 집권하던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인 루마니아는 우리의 기억속에 소설 [25시]의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와 종교신화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 거의 신의 점수를 따내 전세계를 놀라게 한 올림픽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의 나라이다. 한편 악명높은 공산당 지도자 차우셰스쿠도 있다. 차우셰스쿠는 1965년부터 1989년 총살 당하기 까지 루마니아를 통치한 독재자였다.

그는 김일성을 존경하여 어버이로 불려지길 원했고, 독자노선을 걸었으나 민주화를 탄압하였고, 경제를 파탄시켰다. 강제출산정책을 통해 한 가정에 다섯 자녀를 두게 했고, 낙태나 피임을 하면 벌금을 물었다. 외국에 가서 출산하는 경우, 적발되면 처형하기도 했다. 공포정치를 실시하여 체제를 비난하는 자를 색출하고, 서로 감시하는 방식을 가동하였다. 비밀친위대를 통해 그러한 공포분위기를 유지하였다.

<4개월 3주 2일>은 낙태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속에서 낙태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이 영화는 낙태를 금지해온 루마니아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를 그린다. 낙태는 소재일 뿐이다. 루마니아의 독재가 자유를 억압하고,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잃은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영화속에서 루마니아 정부를 비난하는 장면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하루의 일상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아주 작은 것을 통해 커다란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다른 나라 영화와 차별을 두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문주 감독은 원래 교사, 기자 생활을 하다, 영화학교를 뒤늦게 들어가 영화를 배웠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사회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어서, 첫 작품(2002)에서부터 국제영화제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1987년의 실화를 소재로 하였다. 문주감독은 챠우세스쿠 독재 당시의 비참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극화하고자 항상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적은 예산으로 제작했다. 문주 감독처럼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젊은 루마니아 감독들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루마니아 영화’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들 영화들의 주제는 80년대 챠우세스쿠 독재시절의 암울함을 파헤치거나, 몰락 이후 현재 루마니아가 겪고 있는 경제화와 민주화 사이의 갈등이다. 미학적으로는 미니멀리즘(극소주의)인데, 단일한 이야기, 긴 시간의 촬영을 선호하여,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해준다.


낙태라는 은유를 통한 인간의 부자유

영화의 주인공은 오틸리아. 영화는 그녀가 곤경을 겪은 상황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 먼저 가장 가까운 친구 가비차. 그녀는 임신을 해서 4개월이 넘었고, 키울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낙태를 해야 한다. 4개월 자란 아이를 낙태하면 정부에서는 살인죄를 적용한다.

그녀의 고민은 처음부터 친구인 가비차에게 있지 않았다. 그녀에겐 의대에 다니는 남자 친구 아다가 있었고,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녀의 고민은 겉으로 드러날 만큼 두드러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남자란 일생 믿고 살아야 할 대상이며,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줄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하다. 오틸리아가 고민스러운 것은 남자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결국 오틸리아의 고민은 남녀관계의 가장 본질적인 면, 즉 남성,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문득 가비차의 문제가 시급하게 나타났고, 그것이 오틸리아의 마음에 가장 큰 고민으로 대두되었다. 가비차는 남자친구 이상으로 절친한 그녀의 친구였다. 그녀가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고, 형편상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낙태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낙태는 불법이므로 몰래 브로커를 동원해 낙태007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겁이 많은 가비차가 오로지 의존하는 것은 오틸리아 밖에 없다.

 

오틸리아는 임신을 했던 가비차의 바보같은 행동에 핀잔을 주면서도 불쌍한 그녀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동정하고 도와준다. 오틸리아가 겪은 첫 번 째 수난은 불법 브로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기 몸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다. 젊은 여대생들은 브로커에게 약점을 보여주었고, 브로커는 그들을 협박하여 갈취해 내고자 했다. 그들이 브로커를 달래 낙태를 성사시키려면 뭔가 보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틸리아는 이 범죄에 같이 동참하여 불법을 자행해야 하는 위기에 몰려 있다. 두 번째로, 남자 애인이 있지만,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답답하다. 게다가 그의 집안은 자신의 집안과 서로 계층간의 차이로 인해, 어른들조차 이해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싶은 사랑의 대상조차도, 오틸리아에겐 곤경스럽다.

영화는 낙태를 하기 위해 업자를 만나고, 호텔로 가서 낙태를 한 후, 애를 버리고 다시 돌아온다는 하루 동안의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평이함의 이면에서 오틸리아는 갈등의 중심에 서있다. 이 영화는 오틸리아의 하루를 그리지만, 동시에 대학생 오틸리아가 살아가는 것이 왜 힘든가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특히 1987년 루마니아 독재체제하에서 이들의 삶이 더 어려운 이유가 무엇이었던 가를 반성하자는 취지도 있다. 이 영화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만큼,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볼 때, 그 한심함이 더욱 비교되기 때문이다.  

 

글: 정재형

영화평론가이며 동국대 교수이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9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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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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