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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 재개봉되는 멜로영화에 관한 이야기

가을이 시리다. 시린 가을날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영화 한 편 보고 싶은데 극장가를 뒤덮은 블록버스트 영화가 선뜻 내키지 않은 관객을 위해 재개봉 영화들이 줄을 섰다. 11월에 개봉 확정된 59편의 영화 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2.12.개봉, 2017.11.16.재개봉)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2007.2.28.개봉, 2017.11.16.재개봉) <이프 온리>(2004.10.29.개봉, 2017.11.23.재개봉) 등 재개봉 영화만 7편이다. 

영화사들은 영화 흥행을 위해 전력질주를 하겠지만 웬만한 영화로는 관객들에게 선택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재개봉 영화는 관객에게는 ‘익숙한 편안함’을 주는 영화, 기대를 저버릴 것 같지 않은, 그리고 배급사에는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달콤한 열매로 보인다.   

  
 
3D영화로 변환한 재개봉 영화 붐

그때 재개봉 영화 붐은 2012년을 전후에도 한 번 있었다. 그때재개봉 영화 붐은 애니메이션 영화에 3D를 입혀 재개봉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시기였다. 기존 영화에 3D라는 기술 진보의 결과를 입혀 재흥행해 보려는 시도였다. 1994년에 개봉된 디즈니 정통 2D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이 2011년에 개봉해 29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우리나라 재개봉 영화 중 역대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92년 개봉한 후 30년 후 다시 찾아와 14만 명의 관객을 모은 <미녀와 야수> 그리고 <니모를 찾아서>(2003)가 2D를 3D로 재개봉해 당시 완성도 높은 장면으로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타이타닉>(1997)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1999) <쥬라기 공원>(1993) 등 개봉 당시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2D를 3D로 만들어 2012년에 재개봉되었다.

멜로영화의 재개봉 붐

그러나 최근 재개봉영화의 붐은 기술적인 진화를 덧입혀 나온 5년 전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영화다. 멜로 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터널 선샤인>은 첫 개봉 당시 17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지만 개봉 10주년을 기념해 2015년 재개봉을 하면서 두 배 가까운 3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후 <노트북>과 <500일의 썸머>는 재개봉 당시 각 18만 명과 15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기록을 세웠다. 

재개봉을 한다는 것이 인기의 척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지만, 최근 재개봉 영화의 공통점은 상당수가 정통 멜로이거나 멜로 분위기가 짙은 작품이다.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멜로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 분위기가 멜로 감수성에 메말라 있는 관객의 욕구가 재개봉 영화의 장르에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영화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멜로영화의 전성기가 있었다. 그 당시 멜로 영화에서 명대사들이 수없이 쏟아졌으며 그때의 명대사들은 아직까지도 달달하게 입에 맴돈다. "라면 먹고 갈래요?"를 비롯해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속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등의 대사가 아직도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로맨스 영화에 목말라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의 관객층이 있다. 

그러나 요즘 한국 영화 극장가에서 멜로 영화를 찾기 힘들어졌다. 관객들은 더 다양한 영화를 원하지만 한국 영화는 블록버스터나 역사물에 장르의 중심이 기울어진 오래다. 멜로보다는 장르적 특성이 강한 스릴러나 액션이 영화의 흥행과 연결된다는 인식이 강해 이 장르적 편향을 심화시키고 있다. 

  
 
왜 멜로영화의 재개봉 붐인가

로맨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재개봉 멜로 영화가 붐을 이룬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여기에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복고 열풍이 반영되기도 했고, 재개봉 멜로 영화는 이미 입소문이 돌 정도로 검증된 ‘믿고 보는’ 영화라는 인식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재개봉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흥행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영화사들이 제작은 꺼려 하지만 재개봉 멜로영화들이 줄을 잇는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관객들의 욕구와 맞물려 1990년대에서 2000년 초반에 개봉된 일련의 멜로 영화들의 판권 기간(7년 이상)이 최근에 만료돼 판권 소유자가 바뀐 것도 재개봉의 원인으로 주목된다. 하지만 판권을 새로 사들인 영화사들이 굳이 돈 들여 재개봉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극장과 배급사의 입장에서 보면 재개봉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재개봉 영화는 일반적으로 5만 달러 정도에 구매하고 손익분기점으로 1만 정도를 본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영화를 재개봉하면 신작 영화보다 마케팅 비용도 절감되고 마니아 관객층도 함께 끌어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개봉을 한 번 더 하면 IPTV나 케이블 시장에서 판권료를 책정할 때 더 유리해지기 때문에 재개봉을 시도한다.

이렇게 재개봉이 극장이나 배급사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면서 구매 경쟁으로 인해 한국 판권 비용을 높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멜로 제작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 충무로 분위기로 봐서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내 영화사들 간의 재개봉 영화 판권 경쟁은 당분간 더 치열해질 것이다.  

재개봉 영화 시장은 급격히 늘어나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재개봉 편수는 2013년 28편에서 2014년 61편, 2015년 102편으로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거의 일주일에 2편 꼴로 재개봉 영화가 개봉된다. 그런데 외화는 제로섬(zero-sum) 시장이어서 재개봉영화들이 멀티플렉스의 다양성 영화 전용관을 많이 차지할수록 신작영화들이 개봉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 특히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다양성 영화들은 상업영화와 싸우다 못해 재개봉 영화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좋은 영화는 우리 곁에 오래 남는다. 다시 음미하면서 재관람하는 문화 향유의 풍토는 영화를 관람하는 좋은 자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개봉으로 인해 우리 영화계가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줄고 관객과 영화사의 안목이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거기에 좁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의 개봉할 자리가 더 좁아진다면 향후 한국 영화계는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복고 열풍에 힘입어 향수에 의존하려는 편리한 상술은 영화계에 오랜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보다 다양한 영화를 원하는 많은 관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려는 영화사의 노력이 더 많이 요구되는 시기로 보인다.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이자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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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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