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하싼 감독의 『검은 바람, The Dark Wind, 92분』
IS의 잔학상을 고발한 쿠르디스탄의 비극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검은 바람』은 이라크, 독일, 카타르 합작영화로 전 세계 처음으로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영화는 전형적 드라마 트루기를 견지하고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구인 쿠르디스탄 지역의 평화로운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결혼을 앞둔 총각 레코(레케시 샤바즈)와 처녀 페로(디만 잔디)의 혼담으로 시작된다.
이제 산자르 지역에 사는 야디지족 청년 레코는 페로와 약혼한 사이가 된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페로는 급습한 IS에 의해 납치되고 노예시장에 팔려간다. 레코는 미국 정유회사 경비 업무를 보러 마을을 떠나 있어서 약혼녀 페로의 납치 사실을 알지 못한다. 레코는 여러 인맥과 수단을 동원, 위험을 무릎 쓰고 천신만고 끝에 그녀를 찾아 난민캠프로 데려고 돌아온다.
레코의 부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몸이 더럽혀진 페로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우리 조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다가오는 고려와 조선조의 환향녀(還鄕女), 현대사의 위안부 문제가 오버랩 된다. IS의 학살과 만행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현재적 사실을 묘사하지만 영화적 들뜸과 과장을 최대한 자제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감독 자신의 영화적 주제에 집중한다.
가을의 미토스에 걸린 『검은 바람』은 시종일관 비극의 기류를 타고 영화 전반을 우울과 초조함으로 흩뿌린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페로에게 레코는 늘 희망이다. 쿠르드족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하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극영화는 IS에 대항하는 민병대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들 구성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세심한 심리 묘사로 커다란 충격을 준다.
지고지순한 사랑과 전통적 가치관, 종교관 사이의 갈등과 충돌이 구체적으로 돌출되는 IS에 의한 강간, 그로 인한 임신 사실이 알려지고, 가문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차가운 시선은 페로의 고통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그녀의 고통을 감싸는 이는 레코와 어머니 뿐 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전쟁, 테러의 가장 심각한 피해자는 늘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검은 바람』은 도덕적 종교적 미덕을 존중한다. 분위기는 만들되 결행하지는 않는다. 살인, 강간 등 구체적 장면은 암시와 상징으로 처리된다. 원경으로 처리된 전쟁의 흔적, 죽음은 우리 가까이, 조금만 고개를 들면 주변에 있음이다. 영화는 이슬람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굴레 위에 전쟁이 겹치면 그들을 보호할 방어막이 사라진다는 것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시적 제목은 상징을 불러오지만 ‘검은 바람’은 직설적이다. 심각한 트라우마로 시달리면서 페로의 고통이 더 심각한 이유는, 그녀가 모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마을 사람들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핏기와 미소의 상실, 여유와 인내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의 정신적, 경제적 상실감이 페로를 더 증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저명한 배우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후세인 하싼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전개해 나가면서, 극적 갈등구조는 유지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현재 현실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비극임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리고, 이 비극이 야즈디족에 국한된 것이 아닌, 동시대 인류의 보편적인 비극임을 강조하고 있다.
후세인 하싼은 1974년 이라크 쿠르디스탄 태생으로 작가이자 배우, 감독이다. 2006년에 첫 장편 <만개한 수선화>가 56회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상영되었고, 2009년 연출한 두 번째 장편 <헤르만>은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았다.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샤우캇 아민 코르키의 <크로싱 더 더스트>(2006)와 <돌의 기억>(2014), 그리고 바틴 고바디의 <마르단>(2014)의 주연을 맡아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흙먼지 일으키며 거친 산악지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검은 바람은 핏빛 선홍의 처형을 몰아왔다. 검은 비에 씻겨갈 바람의 회오리는 세계적 재앙인 악의 널뜀을 낳고 있다. 해도 너무했으면 하고 중동 영화인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검은 바람』은 잔잔한 울림으로 중동 지역의 평화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가 상처받은 피해자들의 치료약이 되기를 희망한다.
장석용(영화평론가,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