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영화 <해피 댄싱>(Finding Your Feet, 111분)은 삶의 엉킨 스텝 풀기에 집중한다. 고위경찰인 남편의 은퇴를 맞이해서 아내 산드라(이멜다 스턴톤)는 현재 삶의 성적표를 받는다. 여주인공의 행로를 ‘해피 댄싱’이라고 이름한 영화, 남편의 은퇴파티에서 자기 집 골방에서 절친과 남편의 외도현장을 목도한 산드라는 화려한 파티의 분위기를 깨는 발언들을 쏟아낸다.
인생의 황혼 무렵에 내조만 해온 산드라가 홧김에 짐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 찾아간 곳은 의절하고 있던 언니 비프(셀리아 임리)의 집이다. 언니는 상황을 짐작하고 놀라지 않고 여유롭다. 비교적 상류층의 현모양처인 산드라 앞에 현실의 이면은 윤기 없는 뒷골목 전통시장 같은 초라한 것으로 다가오지만 점차 적응과 어울림이란 과정의 소중함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일흔을 넘긴 영국감독 리처드 론크레인은 능수능란한 연출로 <해피 댄싱>을 통해 환갑을 넘긴 사람들이 고민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위로하면서 의연하게 생활하는 모습들을 노년에 삶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노인들의 열정을 고양하는 영화는 다양한 장르적 장점들을 혼합한다. 촌스럽게 보이던 것들이 갈수록 환태하여 빛난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다수의 서민적 삶 속에 진입한 산드라는 자신을 이방인 같은 존재로 느낀다. 상황을 대처하고 전개시키는 연출 과정에서 <해피 댄싱>은 고급코미디의 외양과 드라마적 순수를 오간다. 영화는 부드러운 영화전개와 무난한 촬영, 노련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연기자들, 인상적 장소 헌팅, 세련된 편집으로 로마에서의 공연이라는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해피 댄싱>은 커뮤니티 댄스를 매개로 한다. 사람들은 지친 일상에서 춤을 배우면서 삶의 의욕을 찾아간다. 이 공간에서는 과거의 신분이나 빈부의 차이를 논할 틈이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의 숨은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남편의 배신으로 무료하게 절망하던 ‘산드라’는 언니의 권유로 마을 댄스 교실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간다.
산드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남루하게 보이던 주변 사람들의 과거와 현실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고, 닫혀있던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 언니의 삶이 유별나게 보였던 사연(결혼을 앞두고 잃은 남친)을 듣게 된다. 자신이 말기 암환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로마공연을 잘 마치고 호텔 침실에서 죽음을 맞은 언니의 장면은 감동이다.
장례식에서 상주가 된 산드라는 언니와의 야외수영의 추억을 떠올리며 조사를 한다. 먼저 뛰어들어 발을 열심히 굴려야 추위를 덜 탄다는 얘기를 꺼낸다. 남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귀가하지만 남편의 기존 방식에 환멸감을 느끼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정 많은 찰리(티모시 스폴)의 바다 여행에 동참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뛰쳐나오면서 영화는 종료된다.
<해피 댄싱>은 삶의 두 번 째 여정을 독려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삶을 두려워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해준 언니의 말이 용기를 준다. 슬픔을 감추며 자유롭게 살아온 언니, 외부의 시선과 체면 때문에 자신을 억누르며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 온 동생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빠르게 현실에 적응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며 관계를 회복한다.
언니는 ‘남을 믿을 수 없다면 네 자신을 믿고 믿음의 점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산드라의 꼬인 스텝을 바로 풀어주었다. 춤추면서 발을 맞춘다는 것은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것과 같다. 삶과 춤의 함수관계로 인생살이를 풀어간 영화는 영화적 묘미를 듬뿍 풍긴다. 등장인물들의 현실감을 살리는 춤 연기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네 인생살이와 다를 바 없다. 사소한 일상적 에피소드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글: 장석용
영화・무용평론가, 시인, 중앙대・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전공,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한국영상작가협회 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르몽드 영화평론상・PAF 영화평론상・한국문화예술상 등 수상, 서경대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출강, 이태리 황금금배상・다카영화제・네팔 인권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대종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