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학산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조교수) 1. 연안 문예 강좌에서 삼돌출론까지 : 중국영화론의 계승 중화인민공화국은 1950년 영화의 심사와 지도 그리고 감독과 배급 상영을 통제하기 위해 영화지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영화지도위원회는 국가에 의한 영화의 통제라는 원칙하에 영화를 교육과 선전 선동의 도구로 삼았다. 국가의 권력이 집중되면 예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왔던 것은 유사 이래 반복되어온 관행이다. 모택동은 1942년 2월 28일 연안의 양가령에서 ?연안문예강화?라는 연설을 통해 사회주의적 세계관과 노동자, 농민 중심의 예술관과 지식인의 사상 개조 그리고 당파성을 강조하면서 인민예술의 지도지침을 하달하였다. 모택동의 예술에 대한 정치적 도구화는 “예술가는 정신적 영웅이고 예술은 인류의 교육자”라는 서양 중세 인문주의자의 입장과 흡사하다.
중국영화는 연안문예강화의 방향타에 따라 영화지도위원회라는 조타수를 통해 교육과 선전의 깃발을 내걸고 항해를 시작했다. 영화 이념의 전파자라는 소명은 중국의 2세대와 3세대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5세대와 6세대는 국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으로 중국의 전통에 카메라를 돌리거나 당대의 삶과 개인의 내면으로 도피하였지만 여전히 정치라는 구심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웠다. 정치는 적극적 호응과 소극적 외면으로 다루어졌지만 중심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중국의 1세대는 1910년부터 1930년대에 외국의 상업영화의 예술형식과 중국 전통을 창조적으로 결합시키는 문제에 매달렸다. 2세대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에 걸쳐 자유로운 외국영화의 영향과 항일운동기라는 역사적 사명을 수용해야했다. 하지만 3세대는 1949년 모택동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으로 연안문예강화를 근간으로 한, 선전과 교육의 수단으로 매진했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자 4세대의 관심은 국내의 정치적 상황과 해외영화에 대한 탐구로 분산되었다. 5세대는 북경전영학원 1982학번의 세대의식으로 중국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갔으며 6세대는 1989년 천안문 사태라는 정치적 경험으로 탈정치와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전향해갔다. 중국의 세대론은 구체적인 단절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지배 혹은 영화적 영향력으로부터 중국영화가 자유로워지는 사적 궤적을 살펴볼 때 중요한 거울이 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1942년에 연안문예강좌에서 영화지도위원회를 거쳐 인민 교육과 정치 선전이라는 두 기둥은 세워졌지만 산업의 파도는 1993년 중국전영공사에 의한 국가 배급체계의 종료를 가져왔다. 영화는 관주도 관리 대상에서 시장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상품으로 용도변경이 불가피했다. 물론 국영영화사에 의한 당의 선전영화인 주선율 영화의 제작 지원과 수입 제작 편수 제한을 통한 자국의 영화 보호 그리고 검열을 통한 표현 수위와 이념의 제어라는 국가의 영향력이 여전히 정치의 울타리 너머에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여러 세대가 형성한 영화 미학의 지층과 이념의 스펙트럼은 세대 간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잠재된 내면의 영화 스타일의 전통으로 축적되고 있다. 이 점은 중국영화의 동아시아영화 혹은 서양영화와 차별화된 지점을 만들어내며 중국영화의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호명할 수 있다.
정치에서 산업으로 헤게모니 이동이 이루어져가는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영화의 경향은 다양성을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 중국영화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중국 5세대의 계보를 잇는 신민속영화다. 두 번째는 국책영화의 영향 아래 있는 주선율영화다. 세 번째는 통제에 대한 저항과 해외영화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대중영화다. 펑 샤오강은 대중영화의 자장 안에서 활동하는 감독이다.
펑 샤오강은 국책성보다는 대중성을 지향한다. 하지만 중국의 현대사와 중국의 영화사의 내면적 전통은 해외 장르영화의 영향과 중국영화의 미학적 스타일을 상호 삼투시킨다.
<대지진>의 서사와 편집과 그리고 인물 재현은 대중적 장르영화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영화전통은 그의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음화(陰畵)로 각인되어있다. 양화(陽畵)는 장르영화의 모범을 보여주지만 이면에는 중국영화론이 스며있다. 그 흔적을 세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는 선전과 교육의 메시지가 내재되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이지만 가족의 치유와 회복이 전경에 자리한다. 하지만 한층만 더 파고 들어가면 자연의 재해로부터 중국/가족을 지키자는 슬로건이 보인다. 당산대지진의 복구현장에 중국 해방군이 투입되는 장면은 재난에 대한 국가의 대응을 잘 홍보해준다. 당산지진의 피해자들은 지진의 모습으로 비틀거리면서 참화의 현장에서 빠져나온다. 하지만 중국 해방군은 붉은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지진 피해 현장으로 뛰어가는 장면을 익스트림 롱샷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지진 복구 현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장면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승리자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더욱 구체적인 것은 가족을 잃고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딸 팡등을 집으로 데려가 양육한 양부모가 바로 해방군이다. 국가에 의한 자연 재해와 인민 고통의 구휼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이는 국가 홍보와 인민 교육이라는 중국 국책영화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중국 전쟁영화의 모티브인 ‘성장’ 모티프의 변용이다. 중일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는 주인공이 전쟁으로 인한 평화의 상실과 고난의 체험을 통해 보다 강건하게 성장하는 성장영화의 서사를 채택해왔다. <대지진>은 재난영화이지만 재난을 극복하고 더 굳건하게 가족 구성원의 결속력을 획득하게 되는 성숙 모티프로 귀결된다. 1976년 당산대지진으로 트럭 기사 팡다창의 가족은 가장을 잃고 딸과 헤어지고 아들은 한 팔을 상실한다. 그들은 자연 재앙으로 인해 가족 파괴 상황을 극복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는다. 결국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정신적인 성숙을 통해 가족을 재구성하고 삶의 행복과 미래의 전망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문화대혁명기의 중국영화지침인 삼돌출(三突出)론의 수용이다. 삼돌출론은 창작의 심미적 기준으로 인물 재현에서 세 가지를 돌출시킨다는 이론이다. 하나는 긍정적 인물을 돌출시키고 다음으로는 긍정적 인물 중에서 영웅적 인물을 돌출 시키고, 마지막으로 영웅적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영웅을 돌출시킨다.
<대지진>은 긍정적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아버지 팡다창은 지진으로 붕괴된 주택 속에 있는 아이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의협심과 희생정신의 표상이다. 딸의 양부모는 해방군으로서 자녀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사랑을 베풀며,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의리와 죽은 것으로 여겨진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개가하지 않으며 당산을 지키면서 팔 잃은 아들을 잘 양육한다. 딸은 양부모에게 헌신하고 미혼모로서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고 지진의 상처와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극복하여 가족과 화해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아들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건실한 가장으로 성장하고 지진의 참사 현장으로 찾아가 구호에 힘을 쏟는 희생정신으로 무장되었다. 전체적으로 긍정적 인물이 돌출되며 특히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양부모에게 양육되고 성정한 딸로 대표되는 세 명의 인물이 더 돌출된다. 결국 지진이 파괴한 가족을 복원하는 구심점에 어머니를 놓는다. 어머니는 고향 당산을 지키고 아들과 딸과 재회로 균열된 가족을 복원하는 역할을 한다. 어머니는 가장 돌출된 영웅형 인물이다. 지진은 가족을 균열시켰고 긍정적인 인물들의 성숙한 노력과 태도는 가족의 균열을 봉합한다. 지진이 땅을 갈라놓고 가족을 갈라놓았지만 인간의 노력은 도시를 재건하고 가족을 복원해냈다. 이는 긍정적 인물들로서 가족 구성원을 부각시키고, 구심점이 된 어머니의 희생을 가족 복원의 결정적 기여도로 인정하여 가장 돌출된 인물로 부각시킨다.
펑 샤오강은 겉으로는 재난영화와 가족애를 다루는 할리우드 영화 문법을 준수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한다. 이면에는 국가의 홍보와 성장 모티프와 삼돌출론의 변용을 통해 중국적 영화 이념과 미학의 전통을 계승해낸다. 펑 샤오강의 다른 작품을 언급하면서 필자가 명명한 바대로 중체서용의 영화적 적용의 모범사례다. 펑 샤오강은 중국 정신을 중심으로 서구의 장르 문법을 채택하는 중체서용의 영화론을 굳건하게 지켜가면서 작가적 입지와 대중적 호응을 동시에 성취해간다. 2. 대중영화의 미학적 장면 벤야민은 참된 비평가는 그 작품을 위해 태어난 자라고 했다. 참된 감독은 그 작품에 대해 무한 책임을 각오하는 자이다. 펑 샤오강은 당산대지진이라는 대자연의 재앙에 대항해서 소생하는 풀뿌리에 대해 강한 애정과 책임을 카메라로 담아낸다.
수잔 손탁은 좋은 영화는 언제나 해석의 충동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직접성이 있다고 했다. 뛰어난 영화는 해석의 강요나 번역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와 소리 속에서 자체 완결성을 갖는다. 이와 같은 장면은 영화를 예술의 지위에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조차도 무색하게 한다. 단지 장면 그 자체로 숭배의 고개를 숙이게 하고, 동시에 숭고함과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적 찬사들을 입 밖으로 굳이 실토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준 채 이미지는 관객의 기억 속에 굵은 글씨로 남게 된다.
이와 같은 스스로 입증된 영화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적 장면을 만들어내는 감독에게는 작가의 칭호를, 해독해 내는 관객에게는 정신적 충만감을 선물한다. 펑 샤오강의 <대지진>은 대중영화의 재미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성찰이 감독의 연출력으로 잘 용해되었다. 가독성이 담보해낸 대중적 코드가 인간의 감정과 심오한 철학을 견인할 때 예술성의 성체는 문을 활짝 열게 된다. 가장 아프고 아름다운 장면은 생의 거역할 수 없는 실감을 시각화한다.
가장 깊은 아픔은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로 표현될 때 빛을 발한다는 미학적 사실을 목도할 수 있는 몇 장면이 <대지진>에 존재한다. <대지진>은 자연이 파괴한 인간/가족의 행복을 인간이 어떻게 다시 복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이 한 줄의 명제 위에 희생과 상처와 슬픔과 성숙과 용서와 화해라는 무거운 삶의 감정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우선 떠오르는 장면은 당산대지진으로 남편과 딸을 잃었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팔을 잃은 아들 팡다를 할머니에게 맡기는 장면이다. 대지진은 가족의 절반을 파괴했으며 남아있는 어머니와 팡다조차 생계의 문제로 갈라져야 하는 상황이다. 어머니는 텅 빈 길 한복판에 남겨지고 아들을 태운 버스는 멀어져간다. 카메라는 차 안과 밖을 번갈아가며 넘나든다. 차 안에서 길 위에 남겨진 어머니를 후경으로 보여준다. 후경으로 밀려나고 혼자 가족으로부터 떨어지고 멀어져간 어머니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다시 카메라는 어머니를 걸쳐서 멀어져가는 차를 보여준다. 차가 정차하자 차에서 내린 아들과 어머니가 포옹하는 장면을 익스트림 롱샷으로 포착하여 인생의 슬픔 풍경으로 완성한다. 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다시 헤어지려는 상황에서 한 점으로 가족 통합을 보여준 이미지다. 이 장면은 이별의 아픔과 살아남은 자들은 가족을 복원하여 다시 재생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두 번째 장면은 감정의 맨살이 감촉되는 장면이다. 팡등은 고향으로 돌아가 유년의 가족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꿈을 꾼다. 악몽을 꾼 팡등의 침실로 양부가 찾아가서 머리를 지압해준다. 팡등에게 마실 것을 준비하는 양모는 속옷 차림의 남편이 성장한 딸의 침대에서 지압하는 것을 흔들리는 칸막이 사이로 바라본다. 그리고 부부 싸움을 한다. 인민 해방군이 지진 고아를 양육한다는 건조한 소명의식 뒤편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된 어린 딸을 사이에 둔 양부와 양모의 감정적 갈등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세 번째 장면은 시장에서 재봉틀로 옷 수선하는 어머니에게 이웃집의 남자가 관심을 보인다. 이웃 가게 남자는 어머니의 집 전화를 수리해 주고 두 사람은 식사를 한다. 그들의 식사 장면은 프레임 인 프레임으로 창문 밖에서 카메라를 통해 보여진다. 어머니는 당산대지진의 참사와 가족사를 식사하면서 얘기한다. 이때 카메라는 줌인되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게 한다. 다음 컷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남자와 이를 묵묵히 듣는 어머니의 모습이 투 샷으로 포착된다. 다음 컷은 어머니의 손을 잡는 남자의 손이 클로즈업된다. 어머니의 표정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남자는 술병을 들고 어머니가 앉은 자리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는 손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매만진다. 그때 어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자리로 되돌아 갈 것을 요구한다. 다음 컷에서는 어머니는 집을 나서는 사내를 배웅하고 그는 반복해서 사과를 한다. 어머니는 ‘가족 복원의 한 가지 사명을 위해 사적인 감정과 자신의 새출발을 접었다’는 결의를 절제된 컷으로 드러낸다.
네 번째 장면은 왕등/팡등이 양부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양부는 노인들과 실내 집회에 참석해 있을 때 왕등이 자신의 딸과 도착한다. 왕등의 도착 장면은 뒤돌아보는 양부의 시점 샷으로 잡혀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안녕이 염려되었던 양부에게 긴 방황을 끝내고 왕등이 찾아온 것이다. 다음 장면에서 아주 정적으로 앉은 양부는 그동안 왜 소식을 전하지 않았으며 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지를 추궁한다. 딸은 용서를 구하고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연락을 못했다고 한다. 양부는 매일매일 집에 돌아오지 않는 너를 걱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손녀의 방으로 가다 웃는 양부의 얼굴에서 다음 장면이 컷되면 연을 날리는 광장으로 돌입한다. 이 장면과 같은 긴장과 이완의 리듬은 펑 샤오강의 편집 스타일 전형을 보여준다.
펑 샤오강의 <대지진>은 재난영화라는 장르와 자연 재해로 상처받고 균열된 가족의 복원과 화해의 서사로 요약된다. 하지만 그의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뛰어난 후각은 서사적 연결의 매끄러움과 컷과 컷을 연결하는 편집의 연속성 그리고 상처를 받고 회복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다루는 인물의 깊은 내면을 성공적으로 살려낸다. 대중영화 감독은 생의 깊은 아픔과 심오한 철학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탁월한 힘으로 인해 예술적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펑 샤오강의 서양영화의 장르 관습의 영향과 중국영화론의 창조적 계승 그리고 삶의 표면을 담아내는 영화적 장면을 구사하는 연출력은 대중 영화감독의 자리에서 영화 작가의 자리를 넘나들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