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0여 분 간 숨 막히게 조여 오는 이야기는 힘이 넘친다. 캐릭터는 벼랑 끝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폭주기관차마냥 무섭게 질주한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기에 불안감은 증폭된다. 불안을 증폭시키는 날것 같은 카메라와 편집은 지뢰밭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똥밭 같다. <껍데기>는 이런 똥밭을 구르는 똥냄새 짙은 영화다.
그러나 전반부의 미스터리 함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의 과용에 빠져든다. 그들은 오랜 친구사이라는 걸 무색케 할 만큼 서로를 집요하게 할퀸다. 그 에너지는 인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갈등을 위한 갈등이랄까? 그러나 갈등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영상연출의 능력은 탁월하다. 여간 재간꾼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똥밭개천을 구르는 징글징글한 삶의 한 면을 투사하듯 감독은 감추고픈 껍데기를 한껏 열어젖힌다. 그 안에 구더기가 꾸물거리는 것처럼 혐오스러워 보기 싫은 이면을 관객에게 들이민다. 고린내가 진동하는 내면은 껍데기 기름으로 절인 것처럼 심지에 불이 붙듯 타오르고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된다.
2.
이야기의 시작은 택시의 인명사고로 시작한다. 택시기사와 피해자, 그리고 목격자는 친구사이이다. 매력적인 설정으로 풀어가는 미스터리 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일은 우연인가 의도된 계획인가? 각자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각자의 사연들은 하나의 고리처럼 먹이사슬 관계로 엮여있다. <껍데기>에서 우리는 이 정답을 찾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처럼 연출은 그 목적지를 살짝 벗어나(범인이 누구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삶의 이면으로 카메라를 돌리더니 난장 같은 파티로 우릴 초대한다. 껍데기를 벗겨내는 것처럼...
삶의 팍팍함을 풀어헤쳐 밥상 위에 올려놓는 솜씨가 놀랍고 강렬하다. 인간군상을 다루는 솜씨 또한 놀랍다. 감독이 연극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곳을 거쳐 왔다는 말을 듣고 무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무대에서 갈등은 캐릭터로 증폭시킨다. 캐릭터의 팽팽한 긴장감은 서로를 견인하며 상승시킨다. 상승폭이 클수록 긴장감은 배가된다.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고 받아치는 상반된 캐릭터들의 날 것 같은 울부짖음은 폭탄 돌리기처럼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만든다. 그러나 이야기는 빈약하다. 딱 독립영화다운 스토리다. 택시충돌사고로 다리를 절뚝이는 피해자의 모습은 이 이야기가 그릇이 작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그릇 속의 갈등을 증폭시키려는 연출의 트랜지스터는 스토리에 비해 너무 크다. 과잉으로 보이거나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또한 포커스가 펀드로 오면서 논점이 분산된다. 왜 하필 펀드일까? 그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도 작년 1천5백 펀드로 날렸지만 한잔 소주로 털어버렸다. 그건 결국 투자한 자의 책임이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즉 동정은 가지만 현 수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견인차로 펀드나 투자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거다. 즉, 이야기는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동일하게 한 방향으로 연출의 의도를 따라가야 한다. 이야기를 보면서 어, 나하고 생각이 다른데, 어, 나는 저런 판단을 내리지 않을 거 같은데.. 하는 식의 견해차가 나면 이야기라는 배는 산으로 간다)
3.
따라서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의 영상연출 능력만큼 그에 걸맞은 이야기가 그릇에 담겨야 강렬함은 배가된다.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인 택시 충돌 장면이 경찰서에서 그리 큰 사건이 아닌 걸로 넘어가고 (이야기가 하강하고) 캐릭터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부터 긴장감도 하강하였다. 그 하락한 긴장감을 다시 상승시키기 위한 야유회 장면은 축구로 치면 후반부이다. 문제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그리 큰 연결고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전후반으로 나눠지는 모습도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후반부에 와서 다시 이야기를 상승시키기 위해 극적인 임팩트가 조금은 설득력이 없어 보일 수 있다. 만약 지금처럼 칼을 들고 설칠 정도로 분노가 극에 달했다면 부부가 집에서 야유회로 가는 모습부터 그런 연결고리가 있어야 했거니와 지금처럼 우발적으로 갈등이 상승하다가 계속 맞물리면서 사방팔방으로 갈등이 퍼져나가고(이 부분도 잘못하면 갈등이 집중되지 못하고 각각의 캐릭터로 분산되는 걸로 보일 수 있다) 결국 허물어지는 걸로 끝나서는 나중에 남는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복선이 약하다. 그러다보니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연출은 아마도 그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즉물론적 현상에 집착한다. 시적 메타포 보다는 소설의 리얼한 묘사에 잘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제목 그대로 껍데기 같은 궁상맞은 삶을 추상적으로 느낄 뿐이다. 독립영화다운 미덕은 있으나 상업영화적인 틀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강렬한 힘을 가진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재능 있는 감독을 알게 되서 반가운 감상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솜씨 있는 감독을 만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