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에 담배 한 가치
- 영화 무뢰한 -
박태식(영화평론)
2015년 칸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영화 두 편이 주목받는 시선 부문에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극영화/추리, 한국, 2014년, 120분)와 이제 소개하려는 <무뢰한>(오승욱 감독, 극영화/폭력/애정, 한국, 2014년, 118년)이다. 사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진 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전도연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이야기 일색이었다. 이제는 한 물 간 강남 10% 연기가 참으로 실감나더라, 얼음을 잘근잘근 깨물어 먹는데 소름이 끼치더라, 밀양을 뛰어넘는 연기더라, 심지어 화장이 남다르던데 어떤 화장품을 썼는지 궁금하더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니까 온전히 전도연을 위한 영화라는 평가인 셈이다. 그리고 약간 덧붙여진 게 멜로와 하드보일드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점에 주목했다.
우리나라에서 폭력물이라고 하면 조폭 세계의 생리를 낱낱이 보여주거나 희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범법자들의 잔인함을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을 보여주는 데 힘을 기울인다. 볼거리 풍부한 장면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는 뜻이다. 가물에 콩 나듯 좋은 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시간 죽이기 유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뢰한>은 무엇인가 다른 데가 있을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것이 폭력물이다 보니 무엇인가 변별력이 필요했을 탠데, 칸 영화제에서 주목까지 받았으니 달라도 무엇인가 다르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정도 장황하게 서론을 뗐으니 영화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자.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독한 사람이다. 그래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범인을 검거하는데, 그의 전력이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는지는 선배 형사인 문재범(곽도원)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하지만 재범이 대놓고 모욕을 주는 수모의 순간에도 재곤은 냉정하다. ‘선배,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독설을 내뱉는 이유가 뭡니까?’ 하며 따질 만도 한데 말이다. 또한 재곤과 칼잡이 살인 용의자 박준길(박성웅)이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세부적인 묘사가 아주 뛰어났다. 싸움 전문가들의 솜씨가 역력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관객들은 영환 전반부에 나오는 두 사람의 결투 장면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폭력물의 진수가 느껴지는 곳이다.
김혜경(전도연)은 사연이 복잡한 여자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다. 젊은 시절엔 강남 룸 사롱에서 주가를 올려 암흑가 두목의 애인이 되었다가 그의 부하 박준길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고생길로 나선다. 두목의 눈 밖에 난 혜경은 빚에 몰려 싸구려 룸 사롱으로 흘러들어갔고 술에 만취해 업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일쑤다. 게다가 박준길마저 사람을 살해하는 바람에 도망자가 되었으니 혜경의 삶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한심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인생, 룸 사롱 부장으로 위장해서 접근한 재곤이 끼어들기에 아주 적당한 조건이다.
곽도원과 박성웅은 자신들의 연기 역량에 비해 그리 부각되지 못한 반면 악당 중의 악당 민영기(김민재)는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했다. 암흑가 두목의 하수인 역을 맡은 김민재는 표정 연기나 걸음걸이나 야비한 언어구사까지, 진짜 무뢰한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사건이 돌아가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꿰뚫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서,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불량한 짓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무뢰한의 사전적 정의에 딱 들어맞는 인물 설정이었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의미다. 김민재는 이 영화를 통해 주연급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흐름은 그 자체로 탁월한 구성이 돋보인다. 살인자를 잡기 위해 잠입한 형사가 살인자의 애인에게 접근하다 사랑에 빠지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다소 빤한 이야기 흐름에 새로운 감각의 김장감을 더해 주었다. 특히 세 사람이 둘씩, 둘씩 얽히고설키는 설정이 좋았고, 혜경이 빚진 돈을 갚으러 간 자리에서 세 사람이 한 번 마주치고, 혜경이 납치된 현장에서 또 한 번 셋이 마주치는 상황은 정말 재미있었다. 둘 둘, 셋 셋, 마치 박자에 맞춰 그네를 타듯 이야기에 리듬이 생겼으며 그 때마다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줄거리가 만들어졌다. 감독은 아마 영화 구성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을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형사도 얼마든지 무뢰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남의 인생에 끼어들어 허락도 없이 온통 헤집어놓고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어느 날 홀연히 떠난다. 형사에게는 사건의 해결만 있을 뿐 선과 악이라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곤의 행보는 몇 년 전에 칸에서 주목을 받았던 영화중에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시드니 루멧 감독, 극영화/스릴러, 미국, 2007년, 116분)라는 작품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무뢰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당신은 아마 30분쯤은 천국에 있을 것이다. 악마가 당신의 죽음을 알기 전에.”(You may be in heaven half an hour...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영화 첫 장면에 앤디(필리 시모어 호프만)가 그의 제수弟嫂 지나(마리아 토메이)와 요란한 잠자리를 하고 난 직후 등장하는 문구다. 감독은 일반적으로 영화의 첫 장면을 가능한 한 인상 깊게 장식하려 한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감독의 의도가 완벽하게 성공한 작품이다. 그 정도로 강하게 시작을 했으면 따라 나오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앤디와 행크(에이단 호크) 형제는 돈이 궁한 처지였다. 그들은 보석가게를 털 궁리를 하는데 누구보다 그 가게를 잘 알고 있기에 성공을 확신했다. 바로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일도 했던 부모의 가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세운 계획이 한 번의 실수로 망쳐지는 바람에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그 다음부터 사태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아 최악의 지경으로 추락했고, 결국 형제에게 죽음과 대면할 시간이 다가온다.
영화는 비록 잔혹한 범죄를 다루지만 실제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매우 철학적이다. 앤디와 행크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심약한 행크는 순간순간 임기응변을 발휘해 살살 피해나가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에 비해 앤디는 상당히 침착한 편이다. 항상 두 세 단계 앞을 내다보고 이런 장기적 안목 덕분에 범죄에서 벗어나는 데 거의 성공할 뻔 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이 형제의 아버지 찰스(알버트 피니)로 옮아가면서 앤디의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영화가 철학적인 이유는, 비록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가지 범죄 사건을 다루는듯하지만 실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중요한 주제를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양심’의 문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 노력한다. 남의 잘못에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했을 거야, 내가 잘한 일이 얼마나 많은 데 이 정도 쯤이야, 그 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 그랬을 뿐이야, 누구나 그렇잖아, 과연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어. 그렇게 갖가지 말로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양심’은 언제나 은근슬쩍 뒤로 돌아와 인간을 괴롭힌다.
<무뢰한>의 주인공 재범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사랑에 빠진 혜경과 도망을 칠 것인가, 아니면 형사로서 임무를 다 할 것인가? 혜경과 줄행랑을 놓을 경우 비록 인생은 복잡하게 꼬이겠지만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할 마음의 부담은 떨쳐낼 수 있다. 그러나 형사로서 할 바를 다하면 그 후로 혜경이 겪어야 할 불행이 눈에 보이듯 빤하다. 역시 ‘양심’의 문제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이 영화를 애정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제공된다.
혜경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맘을 쏟을 줄 아는 여자다. 그래서 거짓말인지 훤히 알고도 준길의 요구를 다 들어주며, 이용당하는 게 빤한데도 준길에게 의리를 지킨다. 그랬던 혜경과 준길의 사이에 재범이 끼어들었고 혜경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도연의 연기가 뛰어나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한 때 모든 남자들의 후려낼 수 있었던 혜경이 지금은 땅으로 추락하는 중이고 거의 바닥까지 도달할 무렵 재범을 만난다. 재범을 향한 그녀의 맘이 얼마나 불안정 하겠는가? 전도연의 눈빛 연기나 걸음걸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폭력과 애정이 섞인 영화는 대체로 결말이 어두운 편이다. 모두 허무하게 죽어버리거나 만신창이 인생이 되고 만다. ‘사랑’뿐 아니라 ‘양심’을 일깨워준 혜경 앞에서 재곤은 ‘난 그저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칸 영화제는 예로부터 예술성에 방점을 두어 심도 있는 표현을 높이 사는 전통이 있다. <무뢰한>이 주목을 받았다면 아마 혜경과 재곤, 두 남녀 마음의 흐름을 끝까지 놓지 않은 데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무엇일까? 영혼 불멸을 믿는 사람에겐 죽음이란 그저 지나가는 과정 정도로 여겨질지 모른다. 죽음을 대수롭게 보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보통은 죽음을 통해 하나의 단계가 마무리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도달해야 할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성취하게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죽음과 마주한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보려는 노력이다.
죽음에 도달하기 직전, 당신은 30분쯤 천국에 있을 것이다. 악마가 당신의 죽음을 알기 전에! 과연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할까? 30분쯤의 천국에 두어야 할까, 죽음을 알아챈 악마에게 두어야 할까, 아니면 문장 전체에 두어야 할까?
재범은 마지막 가는 길에 서둘러 한가치 담배를 꼬나문다. 악마가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