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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 ‘내일 Demain’ ― 그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소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경이로운 영화, 또는 영화의 경이로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쿠엔틴 타란티노, 2009)와 <리스본행 야간열차>(빌 어거스트, 2013)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국민배우 멜라니 로랑(Mélanie Laurent)과 작가이자 감독인 시릴 디옹(Cyril Dion)이 연출한 <내일 Demain>(2015)은 경이로운 영화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10,266명의 시민들에게 투자를 받아, 이틀 만에 4만 5천 유로를, 두 달 만에 20만 유로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에 맞춰 개봉하여 프랑스에서 환경다큐멘터리로서는 경이로운 1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멜라니 로랑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지구온난화와 자원 파괴, 인구 증가로 인한 지구의 위기를 다룬 『네이처』지(誌)의 연구를 그녀에게 먼저 이야기한 것은 공동연출가인 시릴이었다. 디스토피아적 연구 결과 앞에 세상은 그녀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불과 몇 천 명만이 지구의 장래를 위한 시위에 참여하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상황. 다급해진 두 사람은 영화계의 친구들을 모아, 그 끔찍한 연구결과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의기투합한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멜라니 로랑은 말한다. “환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우린 아이들이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정치와 대중이 외면하는 끔찍한 진실에 영화가 저항하고 있다. 

2. 다섯 개의 거대 담론 

<내일>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돼 있다. 농업과 에너지, 경제, 민주주의 그리고 교육.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의 위기 앞에서 연출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따라가며 해결책을 고민한다. 그러다 이 다섯 개의 큰 주제를 만난다. 그리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먼저, 그들은 기후변화 앞에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식량에 주목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기본은 상상력을 토대로 한 극영화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한다. 그들은 현실을 드러낸다. 또는 직시한다. 잘 알려진 미국 도시 디트로이트와 영국의 무명 도시 토드모던(Todmorden)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취재한다. 이 두 도시 방문의 초점은 소규모 농업을 조명하는 데 있다. 자신들이 소비하는 과일과 채소를 자기 스스로 경작하는 것. 심지어 소유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운동은 대규모 기업농에 태클을 건다. 대규모 농업기업에 의존한 먹거리는 미국의 경우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먹거리 운송거리가 평균 2400km이다. 서울과 부산을 3번 왕복하는 거리. 더욱이 우리는 산업형 농업이 세계를 먹여 살려 왔다고 생각했으나, 전세계 소비 식량의 60~75%는 소규모 농업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기업형 농업은 다만, 자연과 농부를 파괴하고, 빈부격차만을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 재앙의 근원에는 화석연료가 있다.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은 대기권을 이산화탄소로 채우며 급격한 기후 변화를 주도한다. 자연스럽게 에너지 문제가 거론된다. 탄소중립을 표방하는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프랑스의 일부 도시와 지역들. 쓰레기 재생의 문제는 중국이 세계의 쓰레기를 받지 않아 각국에 쓰레기 대란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는 최근의 뉴스를 연상케 한다. 

과도한 에너지의 낭비는 성장 지향의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 경제 성장이 둔화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 없이 부(富)를 창출하는 사례가 있다. 그래서 <내일>은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는 ‘전환도시’ 모델을 조명한다. 화폐가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단일화폐는 중앙에 자본을 집중시키며 지역을 황폐케 한다. 이렇게 성장하는 경제는 초국적기업을 탄생시키는 데, 그 공룡 기업들은 이제 법과 민주주의를 조롱하고, 정부를 통제한다. 우리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정치권력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권력에서 민중이 배제되고 있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 프린스턴 대학의 한 연구는 이제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소수에 의한 과두정치 국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뒤에는 기업과 부패한 정치 엘리트들이 있다. 그래서 추첨을 통해 대표를 선출한다는 새로운 민주주의 방식은 매력적이다. 말이 된다. 공익과 정의보다, 재선(再選)과 다선(多選)만 추진하게 하는 정치제도를 대체할 이론적 근거가 눈물 나게 반갑다. 

그리고 마지막엔 교육. 또 다시 핀란드. 평가제가 없는데, 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는 늘 1위를 하는 이상한 나라. 관용과 비인종차별주의를 가르치는 한가한(?) 나라. 무엇보다도 핀란드 교육의 장점은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교육이 경쟁력이라며 아이들을 학대하고 부모들까지 고문하는 이 나라 교육입법자들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교육의 이유가 핀란드엔 자원이 없고 유일한 힘은 교육뿐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기인한다는 것. 상황은 우리와 같다. 

  
 
보르헤스는 ‘후회’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 가장 나쁜 죄를 저질렀다. 나는 / 행복하지 못했다.” 아이들도 날마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을 포함해서. 

3. 다큐멘터리의 가능성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낸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은 이 용어를 ‘현실에 대한 창조적인 치유책’이라고 규정하며,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반드시 정치·사회적인 분석가여야 한다고 했다. <내일>은 ‘현실에 대한 창조적인 치유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에 호응한다. 그러나 그 감독들이 정치·사회적인 혜안을 가진 분석가일 필요가 없음을 조심스레 속삭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릴 디옹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멜라니 로랑은 연기 잘하고 매력적인 여배우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자기 아이 또는 그 세대를 위한 거대 담론의 세계에 투신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많은 보통 사람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그래서 <내일>은 아름답다. 평범한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어 만들어 낸 지극히 상식적이고, 그래서 놀라운 희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장 뤽 고다르는 아름다움이 두 가지 극단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진실을 발견함으로 필연적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영화(다큐멘터리)가 있는가 하면, 아름다움을 발견함으로 진실을 발견하는 작품(극영화)이 있다는 것이다. 진실로 <내일>은 필연적 아름다움에 도달하지만, 그 이상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희망과 대안이 더해져 있다. 

  
 
인터뷰어들이 이동할 때 보여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 그리고 차창을 어루만지는 어린아이의 손. 영화는 이 천진한 아름다움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간절함을 전달한다. 전설적인 비틀즈의 저 유명한 1969년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 자켓을 연상시키는 제작진들의 이동 모습. 그 앨범에 수록된 ‘Here comes the sun’이 추억된다. 여기 태양이 다시 뜬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 문제 등 좀처럼 이슈화되지 않은 문제들을 ‘내 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만든 <내일>은 우울하지만 아름다운 작품이다. 

  
 
P.S.: 프랑수아 트뤼포의 조언을 따라 두 번 이상 본 영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자전거 도둑> 같은 영화는 수십 번을 보았다. 그러나 두 번 이상 본 다큐멘터리는 얼마나 있었던가? <공동정범>은 아프고, <천안함 프로젝트>는 명료했다. 분명 <내일>은 다시 한 번 봐야 할 영화였다. 

*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내일 - 포토

글: 정동섭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연구자. 현 전북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서울대 교류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인문학연구소장 역임. 『돈 후안: 치명적인 유혹의 대명사』, 『20세기 스페인 시의 이해』등의 저서와 『바람의 그림자』,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스페인 영화사』등의 번역서가 있음.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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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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