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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죽음과 배회의 시간,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여자와 남자가 이제 막 군산에 도착한 듯 관광지도를 보기도 하고 식당을 찾아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여자의 이름은 송현(문소리)이고 남자의 이름은 윤영(박해일)이지만 영화가 한참 진행되는 동안 이들의 이름도, 명확한 관계도 제시되지 않는다. 이들은 다만 천천히 걷고 느리게 둘러본다. 두 사람은 식당주인(문숙)이 알려준 민박집에 머물며 서울에서의 삶을 잠시 멈춰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결정도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막 한 참이다. 우리 잠시만 여기에 머물러볼까, 하며. 이들이 머무는 민박집의 주인(정진영)과 그 딸(박소담)까지, 장률 감독의 신작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를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다. 윤영은 송현을 좋아하지만 큰 용기를 내지는 못하는 듯 보이고 송현은 오히려 민박집 주인에게 마음이 가있다. 민박집 딸은 윤영을 종종 훔쳐본다. 이렇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감정들과 비어있는 듯 느린 리듬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다.

 

<군산>은 그러한 감정들을 명료히 정리하거나, 감정의 흐름 때문에 인물의 관계가 틀어지는 식의 사건이 발생하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네 인물이 민박집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흑백사진이나 민박집 내부를 비추는 CCTV화면, 동네의 폐가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불현 듯 고개를 들었다가 스산한 기운을 남기고 다시 사라져간다. 윤영은 종종 “어디서 본 것 같아”라고 말하는데, 영화 또한 그러한 기시감을 통해 진행되는 것 같다. 방에 걸린 흑백사진과 윤영이 꾼 듯한 흑백의 꿈은 이후 실제 장소가 되어 영화에 등장한다.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인물들이 화면에서 빠져나가도 남아있는 목소리들, 계속 눈을 감고 잠드는 듯한 윤영의 모습,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는 군산 거리의 풍경들은 영화에 지속적으로 죽음의 감각을 부여한다. 죽어있는 것 같은데 살아있고, 살아있는 것 같은데 죽어있는 기묘한 상태가 바로 <군산>과 인물들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인 것 같다.

영화에는 또한 통로와 본다는 행위가 자주 등장한다. 영화의 초반부 군산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송현과 윤영은 천천히 걸어서 어느 터널을 통과한다. 다소 뻔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터널의 반대편에는 꿈과 현실, 죽음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 기기묘묘한 ‘군산’이라는 세계가 있는 것이다. 군산에서 송현과 윤영이 머물거나 가보게 되는 건물들 내부에 존재하는 복도들이 이러한 통로의 형상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는 점이 흥미롭다. 통로를 통과하고 빠져나가는 행위들이 반복되면서 이 세계의 모호함은 점점 더 중첩되어가는 것 같다. 민박집에는 현관과 옥상 등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그 화면들을 볼 수 있는 작고 어두운 방이 있다. 민박집 딸은 자폐증세가 있는데 바로 그 방에 주로 틀어박혀서 외부 세상을 훔쳐보거나 엿본다. 후에 민박집 주인은, 예전에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었고 어린 딸이 사고 장면을 눈앞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보는 행위는 때로 너무나 버겁지만 계속해서 고개를 드는 욕망의 행위이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이제 윤영은 서울로 돌아와 있다. 아버지를 만나고 약국과 치과에 들러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데, 우리는 이미 윤영이 조금은 이상하고 묘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타이틀이 그제야 뜨더니 영화가 다시 시작하듯 며칠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며칠 전의 서울은 영화 전반부의 의문들이 해소되는 곳이며 또한 세속적이고 노골적인 시공간이다. 윤영은 아주 오랜만에 아는 형의 아내였던 송현을 우연히 만나고 그녀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다니며 술을 마시고 마음을 떠본다. 송현은 송현대로 전 남편(윤제문)에게 심술을 부리고 윤영의 미적지근한 행동을 어이없게 여기면서도 같이 다녀보기로 한다. 그렇게 밤새 술을 마시고 난 어느 새벽 두 사람은 군산으로 향한다. 영화의 맨 처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윤영은 종종 군산과 서울을 하릴없이 배회하는 듯 보였는데, 시공간을 넘나들며 영화 속을 배회하고 있기도 했던 것 같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어느 장면에서 폐가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던 그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줄곧 벗어난 뒤 불현 듯 이상한 장소에서 등장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장면의 설명되지 않는 그의 동선이 영화 전체를 요약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 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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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2-31

조회수7,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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