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5일 개봉
1. 세 개의 광고판
영화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2017)는 세 개의 광고판(three Billboards)과 함께 시작한다. 밀드레드는 7개월 전에 발생한 자신의 딸 안젤라 강간 살해 사건에 대해 경찰을 비판하는 세 개의 광고판을 세운다.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아직도 못 잡았다고”, “월러비 서장은 어떻게 된 거냐?”라고 적힌 세 개의 광고판이 도로 따라 줄지어 서있다. 세 개의 붉은 광고판은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원한, 가책, 복수의 의미로 변화한다.
2. 원한의 인간: 무능력, 수동성, 잘못의 전가
<쓰리 빌보드>에서 밀드레드는 거금을 들여 자신의 딸 안젤라의 강간 살해 사건 해결에 대해 미온적인 경찰에 대해 비판하는 광고판을 게재한다. 뿐만 아니라 방송 인터뷰를 통한 비판, 광고판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 폭행, 화염병을 이용한 경찰서 방화 등 밀드레드는 경찰과 대치한다. 그래서 그녀는 안젤라 강간 살해범의 죄에 대해 경찰에게 잘못을 전가시킨다. 이런 밀드레드에 대해 신임 경찰 서장은 “우린 적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그녀의 분노를 잠재우고자 하지만 역부족이다.
딕슨 경관은 경찰이 되고 싶었는데 영어를 못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인물로 나오며 형사가 되는 꿈을 안고 있다. 그는 밀드레드의 공개적인 비판을 받은 월러비 서장을 대신하여 나서게 되면서 밀드레드와 갈등하게 된다. 그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월러비 서장을 힘들게 하는 밀드레드와 광고판을 제작한 웰비를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엄마가 시킨 대로 밀드레드와 가장 친한 여자친구를 감금하고 웰비를 이층 창밖으로 던져 다치게 만든다. 원한의 인간은 상대방의 악의에 근거하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원한의 세 가지 유형은 무능력, 수동성, 잘못의 전가이다. 죽은 딸의 부모로서의 무기력한 밀드레드와 사건 해결에 대해 수동적인 딕슨 경관 둘 다 잘못의 전가와 끊임없는 비난으로 원한의 인간임을 드러낸다.
3. 가책의 인간: 원한의 내재화와 승계
<쓰리 빌보드>의 중반부에 딸 안젤라가 죽기 전 엄마와 살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전남편이 전달한 후 밀드레드는 혼자 슬퍼한다. 그리고 그녀가 자동차를 빌려달라는 딸과 말다툼을 하다가 “오다가 강간당해라”고 폭언을 한 그날 딸이 강간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밀드레드는 광고판 아래에 앉아 다가오는 사슴에게 환생한 안젤라이냐며 말을 건네고는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자책하던 그녀는 자신의 가게로 찾아와 기물을 파손하고 죽어가는 딸을 강간하고 싶었다는 낯선 남자의 위협에 두려움과 살의를 동시에 느낀다.
웰비 폭행 사건으로 총을 반납하게 된 딕슨 경관은 자살한 월러비 서장이 남긴 편지를 받는다. 월러비 서장은 형사가 꿈인 딕슨에게 좋은 경찰이 되기 위해 세 가지, 즉 분노 조절, 침착함, 사랑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후 딕슨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 후, 밀드레드의 방화에 침착하게 대응해 목숨을 건지고, 강간범을 발견하지만 분노를 조절해 단서를 확보하고, 웰비에게 사죄하고 방화범인 밀드레드를 용서한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자신이 발견한 강간범이 안젤라 사건의 용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 강간범을 응징하고자 한다. 둘다 자신을 반성하고 자책하지만 이러한 자책은 원한을 내재화하고 승계하여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쓰리 빌보드>에서 인물의 이중성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희생자의 엄마인 밀드레드는 월러비 서장을 비난하는 광고판을 게재함으로써 평판이 좋은 월러비에게 죽는 순간까지 심리적인 부담과 고통을 안겨주고, 이로 인해 분노한 딕슨이 웰비를 폭행하고 경찰직에서 잘리게 만든다. 웰비 폭행과 광고판 방화로 분노한 밀드레드가 경찰서를 방화해 딕슨이 심각한 화상을 입게 된다. 희생자의 아버지인 경찰관 찰리는 광고판을 세운 밀드레드에 대한 분노로 그녀의 목을 조르고, 광고판에 불을 지른다. 희생자의 남동생은 엄마 목을 조르는 아버지 목에 식칼을 들이댄다.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불을 지름으로써 딕슨이 치명적인 화상을 입게 만든다. 반면에 밀드레드의 적대자이자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던 딕슨은 월러비가 남긴 편지를 받은 후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안젤라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며 밀드레드를 용서하고 돕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범죄 영화의 세 축은 범죄자, 희생자, 수사관이며, 보통 범죄자/희생자 혹은 범죄자/수사관이 대립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특이하게도 범죄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수사관과 희생자의 가족이 대립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밀드레드를 비롯한 희생자 가족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는 반면에, 월러비 서장과 딕슨은 적대자에서 조력자로 변모한다. 이렇듯 주인공, 적대자, 조력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범죄자가 없는 상황에서 밀드레드와 딕슨은 또다른 복수의 대상을 찾아 나선다. 딕슨이 발견한 용의자는 외부 지역 사람이면서 어느 누군가를 강간한 범죄자라는 점에서 공동체의 복수 대상으로 바쳐지는 희생 제물로 적절한 인물이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상대방의 범죄 사실에 비추어 자신들이 선량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복수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원한의 인간임을 보여준다.
반면에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월러비 서장과 용서와 관용을 보여주는 웰비는 선량한 면모를 드러낸다. 월러비 서장은 난장이와 유색인종을 괴롭히는 딕슨 경관에게 경고하고 그를 위한 조언을 담은 편지를 남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아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공개 비난한 밀드레드가 자신의 자살 이후 받을 정신적 고통을 염려하여 그녀를 격려하는 편지와 광고비를 남긴다. 웰비는 무리한 광고 문구를 부탁하는 밀드레드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로 인해 딕슨에게 폭행을 당하지만 딕슨 또한 용서해 준다. 월러비 서장과 웰비는 약자 보호와 용서로 선량한 자의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의 원한과 복수를 두드러지게 만든다.
5. 원한, 가책, 복수의 쓰리 빌보드
<쓰리 빌보드>에서 세 개의 광고판은 밀드레드의 의뢰에 의해 붉고 선명한 원한을 담게 되고, 밀드레드의 전남편의 방화로 인해 불타 검게 변하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붉은 광고판으로 복귀된다. 세 개의 광고판이 겹쳐서 불에 타는 모습은 반복을 통한 강조를 보여주며, 밀드레드가 첫 번째 광고판과 두 번째 광고판으로 갈 때 익스트림롱숏으로 통해 그 거리감을 강조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광고판을 등지며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은 수미상관식 구성을 통해 비교와 대조를 보여준다. 이렇듯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광고판, 밀드레드 집에서 보이는 광고판,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고판 등 영화 내내 광고판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통해 광고판의 의미도 다채롭게 변모함으로써 인물들의 원한, 가책, 복수 등 심경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쓰리 빌보드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