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10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아인슈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상대성 원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 아인슈타인은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하면서 애인과 영화를 보는 5분과 끓는 물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5분을 비교해보라는 대답을 했다.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시간을 구분해보라는 뜻이었겠는데, 그처럼 시간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용승 감독은 <10분>(극영화, 한국, 2013년, 93분)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상대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려 한다.
주인공 호찬(백종환)은 방송사 PD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콘텐츠센터’에 인턴 사원으로 입사한다. 한국콘텐츠센터는 곧 지방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진 공공기관이다. 호찬은 직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종환의 입지를 봐주는 노조지부장(정희태)과 종환의 인사권자인 부장(김종구)이 있고 적당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선배들에 동료 인턴 사원도 한 명 있다. 사람도 다르고 직위도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정규직 한 자리가 생겼고 성실하게 일한 호찬에게 정규직으로 채용할 테니 지원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방송국 PD를 꿈꾸던 호찬에게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엄청난 숫자의 대학 졸업자에 비해 취직자리를 제한되어 있어 취업준비생 대부분이 일단 인턴사원 직을 택한다. 그렇게 불안하게 첫걸음을 내디딘 사회초년생들의 앞날은 당연히 순탄할 리 없다.
영화 <10분>은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악마적인 사무실 환경, 언제나 굴욕적인 대접을 받는 비정규직, 복사기 수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곳, 그리고 온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독한 조건, 거기에서 호찬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정규직이 되는 것뿐이다. 호찬의 꿈을 실현시켜줄 방송국 PD까지의 길은 요원하고 말이다.
<10분>이 갖는 강점은 비단 호찬의 개인사가 아니라 시각을 확대시켜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다. 호찬에게 주어진 두 번째 선택의 시간인 10분 동안 그는 회의실 통 유리창을 통해 지진 대비 안전훈련을 하는 사무실 직원들을 바라본다. 훈련에 임하느라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부장과 노조지부장. 그들은 어제까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며 사무실을 호령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아니었다. 마치 선線 운동을 하는 개미들의 행진을 위쪽의 입체공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객관적인 시각을 회복시켜주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종의 아수라장일 뿐이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한 영화들 속에서 <10분>은 보석 같은 작품이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고발은 언제나 우리를 정신 차리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호찬에게 주어진 10분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진 시간일까? 수수께끼로 남겨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