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김지운
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밀정> 합평회
날 짜 : 2016년 8월 25일
참석자 : 송아름, 윤성은, 이수향
송아름 : 오늘은 밀정에 관한 합평회를 간단하게 진행하겠습니다.
밀정을 보면서, 제목도 그렇고 전개도 가장 중심에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인물이었는데, 영화가 길게 느껴졌을 만큼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가령 인물들이 상당히 도구적이라고 할 만큼 많이 봐왔던 지정된 역할들이고, 그 흐름 자체도 익숙해서 좀 아쉬웠습니다. 특히 여기에서 밀정이라고 했을 때, 의열단원이었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총독부에 들어가게 되는 이정출(송강호)의 상황이 있었을 텐데, 김우진(공유)이라는 인물과도 그렇고 사실 상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접근을 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정출이나 김우진이 좀더 긴장을 가지고 서로의 관계로 섞여 들어가는 방식이 조금 더 치밀했어야하지 않나 라는 느낌이 들고요. 나중에 정채선(이병헌)하고 셋이 만날 때에도 ‘우리니까 다 알지’ 라고 가는 방식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방식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진행을 하다보니 하시모토(엄태구)의 역할이 살아나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절대 악인이라는 또 하나의 도구로 남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어색한 부분들도 생기고. 이정출의 연기에 있어서도 ‘하시모토가 왜 모를까’ 할 정도로 어색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건 연기의 문제라기보다 인물의 설정이 미약하기 때문에 좀 튀어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술과 화면들은 ‘좋다’라는 느낌을 주었는데, 인물에 몰입이 안돼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윤성은 : 송아름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들의 부족함은 있었지만, 저는 반대로 스타일적인 측면에 점수를 많이 주고 싶어요. 어차피 우리가 김지운 감독에게 기대하는 측면이 내러티브의 다선적인 부분 보다는 미장센과 본인만의 미학적인 연출이 아닌가 싶구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이전까지 그가 해왔던 작품들의 연출미학을 다 써먹은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장면마다의 스타일이 아주 완벽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들을 너무 페스티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김지운 감독 얘기를 할 때 마다 나오지만,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써 그 시대의 분위기와 국민들의 의식/좌절감을 토대로 해서, 나름대로 장면 장면의 연출들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첫 장면부터 카메라 촬영이나 편집이 너무나 새로워서 그때부터 빨려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물론 새로운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가 가득한 작품일 것 같다는 인상을 첫 장면에서 받았기에 끝까지 그런 부분에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송아름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많이 절제되었기에,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기 힘들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사에 <대부>와 같은 영화를 남기려고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이수향 : 저도 이 영화를 재밌게 봤구요. 김지운 감독이 가장 잘 만들었던 <달콤한 인생>과 같은 장르로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스파이 영화로 묶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보기엔 장면이나 인물 구성이 느와르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느와르는 김지운 감독이 좋아하고 잘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윤성은 선생님이 말씀처럼 여러 가지 관습적인 특징들을 조합하는 김지운 감독의 페스티쉬적인 능력이 잘 살아날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타이틀 크래딧이 뜨기 전까지의 장면처리였어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도 보여줬던 쇼트의 빠르고도 효율적인 분배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해준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명암의 사용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대부>같은 영화에도 앞에서 행동하는 조직원들이 아닌 어둠 속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던 모습이 명암이나 분위기로 드러나는데, 영화에서도 이 지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화면이 디졸브 된다던가 하는 편집들도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올드한 느낌이 아닌 클래식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인물들도 의열단이라고 해서 의욕만 넘치는 가난한 외양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살리는 등 배경이나 미술에도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김지운 영화는 스타일리시합니다. 최근의 영화들 중에서는 박찬욱의 <아가씨> 정도를 제외하곤, 화면 구성, 촬영, 편집 등에서 영화적인 효과들을 살리려고 고심한 예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아름 선생님의 말처럼 왜 인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느냐면, 인물들이 김지운 감독이 만든 세련된 세계 안에서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각 캐릭터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을 썼을 때, 45도 각도로 보고 그쪽으로 그늘이 생긴다던지, 김우진이 감옥에 갇혔을 때 벽에 빛을 한줄기 내려줘서 김우진에게로 패닝하게 한다든가 하는 그런 지점들이 캐릭터화보다는 장르적인 컨벤션 안에서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그림’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죠. 전체적으로 스타일에 힘을 많이 준 영화다 보니까 스파이물이 보여주는 추격전, 긴장, 재미가 생각보다는 별로 없어요. 감독의 목적은 첩보전의 긴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화면의 구도, 색감, 무게감 등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각 잡고 세련되고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웃음). 이 영화의 괴리는 여기서 오는 것 같아요. 느와르는 사실 범죄영화의 모습을 띄고 있고, 역사적인 정의나 사명과는 관련이 없어요. 어두운 뒷골목의 으슥한 곳에서 벌어지는 탐욕과 돈의 문제가 핵심인 장르물인데, 우리에게 일제강점기는 역사적 당위나 민족주의적 의식이 소거되면서 관람하기는 어려운 시기잖아요. 그런 면이 미묘하게 영화를 덜걱거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장르적인 관습들이 역사의식에 부딪친다고 할까요? 최동훈 감독의 <암살>도 민족주의적 의식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부분 때문에 다소 밋밋해진 부분이 있었죠. 김지운 감독은 다소 감상적인 그런 지점들은 제거하려고 했고 어느 정도는 이뤘지만, 역사적인 부분을 완전히 소거해 버릴 수 없었던 것이 이 영화가 미묘하게 어그러지는 지점 같아요.
송아름 : 이수향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사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인물이 살아나지 않는 것이 역사의식이 범죄영화에 투영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사실 친일파이고 단원인 이정출이라는 캐릭터는 역사의식과 상관없이 갈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욕망 그 자체에 대한 묘사가 좀 더 치밀했다면 하는 거죠. 이정출은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고, 그 욕망의 배경에 놓이는 것이 민족이나 역사인 것이지 민족이나 역사가 중심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이 영화도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이 부분이 잘 살아나지 않다 보니 마지막에 이정출이 다시 의열단원이 되고, 처음 자신의 동지가 죽어가며 남긴 발가락을 다시 일본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이 상당히 촌스러워 보인다는 거죠. 이정출은 의열단원이었다가 총독부에서 훈장을 받을 정도로 어쨌든 노력을 해왔던 인물인 거고, 그러니까 하시모토의 존재를 상당히 경계하거든요. 자신이 밀려날지 모른다, 죽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처음에는 분명히 보이는데, 이런 고뇌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정출이라는 인물이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스타일이 좋고 조명이나 여러 가지가 상당히 감각적이라는 인상은 분명히 있었지만, 막상 그 효과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은 계속 남았습니다. 제 눈에 확 들어왔던 슬로우가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이정출이 어떤 결심을 하고 기차로 들어가는 장면이고 하나는 연계순(한지민)이 역에서 붙잡혀 일본군에게 끌려들어가는 장면이었는데요. 앞의 슬로우가 이정출의 고뇌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슬로우는 다소 감정적으로 간단 말이죠. 영화 사이에 그런 중지 자체가 상당히 인상적이지만, 김우진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슬로우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상당히 피상적인 캐릭터로 그치게 만들거든요.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상당히 유려한 화면들이 과연 영화 자체에서 어떻게 의미화되는가를 보면 저는 의문이 남거든요. 제가 내러티브와 스타일을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저는 이 영화가 완전히 이미지 과잉의 스타일리쉬한 영화로만 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차피 느와르는 스타일이니까. 그렇게 갈거라면 훨씬 더 어둡고, 인물들의 관계를 복잡하게 할 것 없이 심어놓은 것만 가지고 완전 이미지 과잉으로 갈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뭐 식민지 시대를 그린다고 해서 섹시하게 빠지는 영화가 못나올 때도 지났고, 사실 스파이 서사라는 게 역사적 질곡이 없으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스타일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사실 저는 이런 걸 좀 더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 영화에서는 스타일과 서사가 미묘하게 어긋난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윤성은 : 비슷한 시기를 다룬 작품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좋았어요. 이 작품 하나만 좋은 것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성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가씨>는 의열단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박찬욱 감독 본인도 ‘이 시기의 영화가 꼭 역사의식과 결부되어야 하나’ 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고, 이 지점에 대해 비판한 사람들도 있지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암살>이 굉장히 오락적이라면, 이 작품은 우리의 시각적인 측면에서의 미학성과 스타일로 승부를 하려는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들이 나와야겠지만 대한민국을 대표 하는 감독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관객들도 이 작품과 이전작품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까 스타일적인 효과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는데 당연히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다고 봤어요.
일례로 한 외국평론가가 ‘한국 영화는 색보정을 다 똑같은데서 하냐, 어쩌면 톤이 다 똑같다’(웃음) 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저도 동일하게 느꼈었거든요. 이 영화도 보면 비정한 시대를 그리면서 처음엔 굉장히 따뜻한 톤으로 그려냅니다. 다른 영화들에서도 많이 봤었던 옐로우/레드가 강조된 톤이 의도된 것인가 아니면 정말 회사 탓인가(웃음). 생각했었는데 뒷부분에서는 색감이 달라지는데 이것은 감독이 앞뒤의 분위기에 차별점을 두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에는 왜 그대로 따뜻한 분위기로, 옛 시대를 추억하는 듯한 톤을 사용했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아무래도 이정출이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그렇게 나쁜 인물이 아니라 변절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의 인간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님들과 송아름 선생님이 지적한 부분이 ‘몰입이 안되었다. 왜 감정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라는 부분인데 이 지점을 무마시키고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깔아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수향 : 경청할 만한 의견들이네요. 제가 더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이냐 하는 것입니다. 밖으로 홍보되기에는 김우진(공유) 같은데, 사실은 이정출(송강호)인 걸로 보이죠. 영화의 뒤로 갈수록 ‘강호형이 연기를 발휘할 여지를 줘야 하는데’(웃음)라는 감독의 고심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았어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주인공은 그냥 이병헌 아닌가싶네요.(웃음) 특별출연한 이병헌이 분한 ‘정채산’이라는 의열단 단장의 묘사가 <대부>의 느낌과 상당 부분 유사해서, 이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면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나와야 할 정도라고 보입니다(웃음). 명령을 내리고 고뇌하는 스토리 구조의 제일 심급에 위치한 자가 정채산이죠. 이정출보다 혹은 김우진보다도 ‘저항’의 측면에서는 윤리적으로나 지위로도 더 높은 위치이자 강력한 신념의 존재이면서도, 다양한 인간적인 채취를 가지고 있는 박제되지 않은 대부의 이미지. 눈물도 흘리고 술도 마시면서 진지한 이야기도 하고, 진심으로 다가가지만, 모두를 통제하는 완전무결한 사람. 어둠속에서 쓱 나타날 때의 이병헌의 목소리와 각진 얼굴에서 주는 신뢰감 같은 것이 빛나서 이 영화가 진짜 주인공은 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김우진도, 연계순도 죽은 자리에서 끝내 살아남아 새로운 임무를 명령 내리는 존재이구요. 결국 영화의 시작은 정채산을 잡으려고 하는 거였고, 끝내 못 잡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송강호가 열차 안에 들어가는 부분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주인공에게만 집중되고 주변이 천천히 움직이며 잔상이 남는 방식의 촬영이었어요. 왕가위 이후로 잘 못봤던 거 같은데, 뜬끔 없이 앞뒤맥락도 없고 그 이후로도 그 전으로도 그렇게 쓰지 않는데 딱 이 장면에서만 그 기법을 쓴거예요. 전체 맥락에서 엄청 중요한 장면도 아닌데 감독이 왜 썼는지 궁금해서 감독에게 묻고 싶네요(웃음).
이 영화에서 고평하고 싶은 부분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우리나라의 대형영화들과는 다르게 기존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사회파 영화인척 하는 영화들이 홍수를 이뤄 대중영화들의 새공식이 되고 있거든요. 보통 이런 영화들은 안정적인 조연의 웃음으로 분위기를 풀어놓고 중반부에서 눈물을 빼놓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에 비하면 냉담한 감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물론 인물들의 감정이 드러나면서 불타오르면서 그 성격 변화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합니다.)
또 라미란, 유해진, 오달수, 이경영, 송영창과 같은 천만조연들이 나오지 않는데, 이건 생각보다 굉장한 용기에요.(웃음) 제작사의 압박도 있었을 텐데, 이런 식으로 완성을 한 것이. 아- 워너브라더스라 가능했나요?(웃음) 의열단 중에 오달수 같이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도 없고 코믹을 담당하는 에피소드도 없죠. 그런 점이 이 영화의 특이점인 것 같아요. 웃음기를 넣어 즐겁게 가는 대신 시종일관 각을 잡고 진지하게 가죠. 그래서 전체적인 색깔로 보면 김지운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특히 화면이 예쁘게 잘 나온 영화 같아요. 물로 흥행여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웃음)
마지막으로 배우들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송강호 배우의 팬이기에 송강호를 주목해서 봤어요. 처음엔 냉정한 느낌으로 나오고 중간에 성격변화를 일으키고 친숙한 인물이 되었다가, 갑자기 저항의 편 핵심에 서는 엄청난 변화과정을 겪는데, 이것이 서사화되는 과정은 썩 부드럽지 않았지만 연기로 이 지점을 살려보려는 배우의 고군분투가 돋보였어요. 사실 법정 눈물장면도 좀 느닷없는 느낌이었는데, 그 중의적인 의미를 배우가 연기로 극복해 보려는 게 돋보였습니다. 엄태구 배우는 목소리와 이미지가 강한데 충분히 매력이 어필 된 것 같아요. 향후 작품이 기대됩니다.
송아름 : 저도 간단하게 한 가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는 대체로 인물의 감정을 잘 보여주지 않으려했던 것 같거든요. 몇 초만 더 가면 인물의 감정이 좀 더 드러날 텐데, 가령 연계순을 인두로 지지고 나서 이정출이 화장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많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는 지점에서 시간적 여유없이 자르고 넘어가요. 이 부분들을 보면 이 영화가 상당히 냉정하게, 또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가고 싶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꽤나 환영할만한 부분이고. 그런데 전반적으로는 우정 또는 동지애라고 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당시를 그릴 때 예상 가능한 그런 일반적인 감정이 섞여 들어가면서 냉정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편집과 약간 어긋났다고 생각합니다.
윤성은 : 저는 모르겠어요. 앞에 30분까지 굉장히 긴장을 놓지 못하고 봤고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궁금했는데, 오히려 이정출과 술마시는 장면에서 약간 숨통이 트였어요. 재미있는 생각도 들었고, 쟤(의열단 중 한명)는 음주운전인데 마셔도 되나(웃음). 기차안에서 왔다갔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하는 특유의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무겁게 만들지도 않는, 그런 연기를 보면서 송강호라는 배우를 다시 인정할 수 밖에 없었어요. 기차라는 공간도 <설국열차>냐 <부산행>이냐(웃음). 잘못하면 두 사람의 만남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분위기를 잘 잡아내줘서 굉장히 재밌게 기차 씬을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액션이 강조된 영화가 아니고 스펙터클한 장면이 강조된 영화가 아니기에, 송강호의 내적인 갈등과 양쪽에서 버림받는 입장이 중요한데요, 단순히 시대적인 배경, 맥락을 제외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괴감 같은 감정들이 관객들에게 와닿을 수 있는 지점이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하는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수향 : 방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정출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싸우는 당위를 설명하는 인물이 아닌, 양쪽에서 다 버림 받을 수 있다는 스파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숙명과 같은 공포감을 좀 더 보여줬다면 어땠을까요? 개인의 안위를 위한 욕망에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표현해주었다면 서사적으로는 더 납득이 되었을 텐데 영화적으로는 더 촌스러웠을 수도 있겠네요. 감정을 지속적으로 끊어주는 것이 김지운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역사의식이나 인물들의 대의와는 조금 엇나가서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의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의 합평회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