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상 감독상 | 봉준호 <설국열차>
영화연출의 새 지평을 연 월드디렉터
명석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 기민한 손의 재주
정 중헌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2013년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뽑는 영평상은 봉준호 감독이 총지휘한 <설국열차>에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이 영화 개봉 후 뜨거운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영평의 눈은 정확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새로웠고 봉 감독은 분명 영화연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신뢰할 수 있는 영화인이다. 여기서 신뢰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질과 역량, 그리고 결과까지를 포함하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봉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에서 엉뚱한 재미를 던지더니 <살인의 추억>에서는 웰메이드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괴기영화는 안 된다는 징크스를 <괴물>에서 깨더니 <마더>에서는 사람 냄새를 짙게 풍겼다. 네 편의 공통점은 이야기(스토리텔링)를 만들 줄 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미(엔터테인먼트)를 살리는 재능이 더해져, 그는 작금에 이르러 3천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그런 흥행 뒤에는 치밀한 계획, 철저한 준비과정과 현장답사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영화감독은 전천후여야 하는데 봉준호 감독은 명석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 명민한 손의 재주와 기민한 발품으로 뛰어난 영화 만들기의 장인(匠人)이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장인의 전천후 상상력, 열정, 감각, 끈기와 집념의 결실이다.
프랑스 만화가 원작이라고 하지만 이야기가 기발했고, 기후 재난의 미래에 현대사회의 단면을 용해시킨 발상이 독특했으며, 열차 칸칸의 디자인이 신기하고 멋졌다. 여기에 전쟁의 압축판 같은 계급투쟁이 펼쳐지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만약 이 영화가 한국에서만 제작됐다면 평범한 SF나 판타지가 되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와 함께 만든 <설국열차>는 블록버스터급이다. 스토리 구축에서부터 캐스팅, 디자인, 소품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후반 작업에 블록버스터에 맞는 인재와 제작비를 끌어들여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오락영화, 그러나 상상을 펼치면서 보는 ‘기발한 영상 퍼레이드’를 만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계의 장인이며 명실공히 세계와 소통하는 글로벌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