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컨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더불어 1863년 11월 19일에 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잘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링컨>(Lincoln,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극영화/역사물, 미국, 2012년, 150분)의 첫 장면에서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병사들의 입을 통해 재연된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관록의 감독의 제시한 시작 장면이다.
영화에서 설득과 연설과 대화의 달인들을 만나보았다. 모두들 자신을 위해, 또한 자신이 속한 정파와 나라를 위해 스스로 세운 막강한 이론으로 무장된 이들이다. 그들은 국회에서, 협상 테이블에서, 내각회의에서, 비밀 모임에서 그리고 가족 모임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국방방관 슈어드(데이빗 스트라탄), 공화당 보수 계파의 수장(토미 리 존스), 남부 연합 부통령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링컨을 질투하고 이용하고 제동을 걸고 협상을 시도한다. 그러나 모든 상황의 끝엔 다수결의 원칙이 버티고 있다. 노예 해방을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헌법 수정안 13조를 통과시켜야 했고, 그를 위해서는 하원 2/3의 찬성이 있어야 했다. 링컨은 기꺼이 뒷거래를 택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다. 그들은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어느 한 인물도 어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감독의 역량은 실로 놀라워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 기막힌 사실감을 부여했다. 방청석에 앉은 매수꾼들과 링컨의 아내 메리 토드(셀리 필드)와 작전 지시를 내리는 계파의 수장과 표결에 압력을 주려 등장한 흑인 방청객과 전신으로 실시간 소식을 전해 받는 전방의 군인들까지 국회의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긴박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카메라가 족히 수십대는 동원되었을 법 했다. 정치영화의 전범을 발견한 훌륭한 장면이었다. 150년 전 실제 표결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아마 영화에서 느끼는 정도의 긴장감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비록 대통령 링컨을 다루는 인물영화이기는 하지만 일생을 둘러보는 전기傳記 성격을 띠진 않는다. 그보다는 노예 해방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수정안 13조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만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이것이 오히려 링컨(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인물됨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척도로 작동한다. 하원을 통과한 수정안 13조는 공화당 대표 타데우스(토미 리 존스) 표현을 빌면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조치가 부패로 통과되었고 미국에서 최고로 순수한 남자(링컨)가 지원한 덕분이었다.”
표결을 하루 앞두고 정무회의에서 모든 각료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수정안 13조를 하원에서 도저히 통과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 때 링컨은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논리를 편다. “헌법조항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게 미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지금 속박 받은 수백만 명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수백만 명까지 말입니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주어진 권한이 막대합니다. 나가서 표를 확보하시오.” 이 장면에서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눈은 마치 역사의 인물 링컨이 그랬던 것처럼 강렬한 빛을 쏟아냈다.
링컨이라고 하면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즐겼던 여유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링컨의 이미지를 백퍼센트 수정해 대단히 진지한 인물로 그려냈다. 또한 순수한 영혼과 타협을 모르는 정직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맘에 새겨왔는데 영화의 링컨은 목표를 위해 갖가지 속임수에 능한 교활한 인간으로 묘사되었다. 정치 지도자는 그래야 한다고 감독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감독의 의도는 영화를 통해 충분히 살아났다. 이제까지 아카데미 주연상을 네 번 탄 유일한 배우는 캐서린 햅번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링컨>으로 세 번째 주연상을 받았는데 이 기세라면 캐서린 햅번의 기록에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
우리나라에도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새 대통령에게 붙여진 수식어도 다양해, 최초의 여성 대통령, 최초의 부녀 대통령, 최초의 독신 대통령 등등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식어는 대통령의 신상을 서술한 것일 뿐 그 자체로 대통령의 역량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대통령이라고 하면 역시 훌륭한 통치력을 갖추어야 한다.
<링컨>은 때맞춰 잘 개봉했다. 대통령도 이 영화를 꼭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