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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피>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김곡/김선 감독 - 박유희

박유희(영화평론가)


<방독피>는 알레고리와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다. 그래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레고리와 상징을 이루는 에피소드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영화는 혼란스러우면서도 몰입을 유발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영화는 한 어린 소녀가 방독면을 쓴 사내에 의해 엄마가 살해된 광경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한 소녀와 세 남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은 서울시장에 출마한 신자유당 기호1번 주상근(조영진), 자신을 슈퍼맨이라 생각하는 주차단속원 김보식(박지환),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미군병사 패트릭, 그리고 늑대 환상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여고생(장리우)이다.

때는 방독면을 쓴 연쇄살인마 때문에 민심이 흉흉한 ‘현재’, 서울에서는 시장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그런데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주상근 의원에게 “뽑히면 죽는다.”는 협박편지가 날아온다. 주상근은 공포에 떨며 처첩의 집과 목사의 집을 오간다. 미군 병사 패트릭은 방독면 사내에게 난자당해 죽은 연인을 못 잊어 슬픔과 증오에 차있다. 그는 여경과 함께 연인의 집과 무덤에 다닌다. 주차단속반 김보식은 방독면 사내를 잡아 세상을 구하고자 밤낮으로 무술을 연마하며 뛰어다닌다. 한편 여고생은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며 도착적 성욕에 사로잡히고 세상의 종말을 꿈꾼다. 그러나 담당 의사조차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면서 그녀는 점점 더 치유되기 힘들어져 간다.
결국 주상근이 시장에 당선되자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서울 시내에 독가스를 살포하고, 김보식은 자신만이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사내는 방독면을 쓴다. 그리고 패트릭은 방독면을 쓴 채 독가스에 중독된 시민들을 찌르고 다님으로써 연인을 난자한 진범이 바로 자신임을 스스로 폭로한다. 이와 같이 ‘방독면을 쓴 세 사내’가 지닌 각각의 상징을 통해 이 영화는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한 폭력을 유형적으로 고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발은 여고생의 행동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그녀는 운전수의 목을 물어뜯고 뛰쳐나감으로써 가해자가 되는데, 이는 그녀가  ‘아버지’로 상징되는 폭력적 질서에 지속적으로 강간당해왔으며, 그러는 동안 그녀 역시 폭력에 깊이 감염되었음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여고생’은 다름 아닌 ‘우리’이고, 그래서 ‘방독면’이 아닌 ‘방독피’라는 제목은 여고생의 감염이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말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오프닝에 나온 어린 소녀가 다시 버스에서 살해된 엄마와 방독면 사내를 목격하고 버스에서 내리려 하지만, 결국 내리지 못한 채 버스가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는 세 방독면 사내가 설치는 가운데 황당하면서도 참담하게 펼쳐지던 서울의 묵시록적인 종말의 이미지와 겹치며 우리의 현재를 아프게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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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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