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선사한 거인신이다. 그는 인간이 생식生食을 하는 게 못내 불쌍해 태양신 아폴로의 마차에서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주었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엄격히 구분해 마땅한데 프로메테우스가 신성한 법을 어긴 것이었다. 어느 날 올림푸스 산을 산책하던 신들의 왕 제우스는 지상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고 프로메테우스에게 벌을 내렸다. 우선 그를 코카서스 산에 결박해놓은 다음 독수리가 와서 간을 파먹게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느끼고 고통도 받기에 독수리가 간을 파먹을 정도면 끔찍한 고통을 받으리라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영생을 누리는 신이기에 다음날이면 간이 또 생겼고 상처도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고 나면 프로메테우스의 눈에 자신의 간을 먹기 위해 저 멀리서 기운차게 날아오는 독수리가 다시금 보였을 것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리들리 스콧 감독, 공상과학, 미국, 123분, 2012년)에서 보여주는 신화적 상상력도 결코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에 뒤지지 않는다. 몇몇 과학자들이 오래된 동굴 벽화에서 우주의 메시지를 읽어낸다. 이들은 메시지를 인류를 창조한 존재로부터 온 초대장으로 여겼고, 영생을 누리려는 거대 기업의 회장이 날려 보내는 우주선 프로메테우스 호에 동승한다. 메시지의 좌표를 쫓아 거창한 우주여행을 한 끝에 도착한 행성에서 그들은 미지의 생명체와 만나지만 이미 우주괴물에게 공격을 당한 후였다. 우주괴물과 싸움을 벌이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주인공 엘리자베스(누미 파라스: <밀레니엄 3부작2009>)와 인조인간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 <데인저러스 메소드2011>)은 인류 창조의 존재를 찾는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리들리 스콧은 <글레디에이터2000>나 <킹덤 오브 헤븐2005> 같은 역사물을 만들어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필자가 기억하는 한 그는 원래 공상과학 영화의 기수였다. 미래영화의 교과서로 꼽히는 <블레이드 러너1982>나 우주괴물 영화의 신개념을 개척한 <에일리언1979>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프로메테우스>의 별명이 바로 ‘<에일리언>의 시작’이라 들었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보고나니 우주괴물의 생태 묘사를 넘어 ‘인류 기원에 대해 실제로 감독이 의문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메테우스 호에 탑승한 과학자 중 한명이 데이빗에게 물어본다. “누군가 인간을 창조했다면 과연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인조인간 데이빗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창조할 수 있으니까!” 사실 데이빗의 대답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철학자와 종교학자는 일반적으로 형이상학 차원에서 초월적 가치를 추구한다. 르네 데카르트(1596-1650)의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차원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명제다. 하지만 근대 이후 합리주의와 과학주의가 등장하면서 데카르트 식의 명제는 도전을 받아왔다. 오귀스트 콩트(1798-1857)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차원에 도달하지 않은 명제는 아직 완성에 다다른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 데카르트 식의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 이후 형이상학과 과학실증주의는 시대를 오가며 수많은 분야에서 충돌을 일으켜왔다.
철학자와 종교학자는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세상만사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선의 획득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식의 다짐은 과학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의 눈에만 선과 악이 띌 뿐 실제 세상은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독버섯’은 인간에게 해로워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지 당사자인 버섯의 생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불명예이다. 하물며 우주의 기원이나 인류의 탄생을 인간의 두뇌로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고통에 시달리던 프로메테우스를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에서 구해준 인물은 헤라클레스다. 프로메테우스는 감사의 표시로 헤라클레스에게 귀중한 정보 한 가지를 알려준다. 천체를 짊어진 아틀라스 신의 꾐에 절대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기 역시 신이면서 같은 신을 농락한 셈이다. 그처럼 과학자의 눈에 신은 그저 놀림감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다음 편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과연 어떤 세계를 보여줄지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