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상처 그 쓸쓸함에 대해 |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란 단편영화를 아시는지. 너무도 앳되고 청순한 소녀가 한없는 설렘의 문턱에서 짝사랑하는 청년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그 무한처럼 긴 찰나를 서정적인 감수성으로 베어낸 감독이 있다. 지난 10년간 ‘낙원’(2005), ‘바람의 노래’(2009) 등 20여 편을 연출한 단편영화계의 스타 김종관 감독. 그가 올가을에 장편을 선보인다. ‘조금만 더 가까이’. 제목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5쌍의 연인이 엇갈린 사랑의 인연에 마음을 다치고, 쓸쓸하게 기억의 붕대로 상처를 덮는다.
하나, 로테르담에서 폴란드 남자 그루지엑이 공중전화로 안나를 찾아 헤맨다. 한국의 어느 카페에 전화가 연결되고 남자는 얼굴도 모르는 한국 여자에게 안나 찾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둘, 세연의 새로운 사랑은 하필 게이인 영수다. 그럼에도 세연은 영수와 과감하게 사랑을 나눈다. 여자와 서툰 섹스를 한 영수는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셋, 비 내리는 가을, 은희는 현오를 아직 놓아줄 수가 없다. 현오 때문에 연애불구가 됐다는 은희. 두 사람은 차마 서로의 엇갈린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다. 넷, 다른 사랑이 있다는 영수의 고백에 파트너 운철은 집을 나가려 하지만, 결국 영수에게 다시 한 번 마음을 돌이킬 것을 간청한다. 다섯, 가수 혜영은 같이 노래 부르는 주영의 속물적이고 직설적인 남자 이야기에 헛웃음만 나오지만, 왠지 그에게서 눈을 떼기 힘들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랑의 풍경에 관한 영화다. 여러 개의 단편을 늘어놓고 이어붙인 풋풋함 안에는 감독의 개성과 인장이 뚜렷하다. 5쌍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은 커플들은 오밀조밀한 모자이크처럼 헤어지고, 만나고, 설레고, 시작하고, 도망 다닌다. 그 감수성. 농밀하면서도 은밀하게 마음을 들키는 커플 사이의 짜릿한 노출의 순간을 감독은 느릿하고 설겅거리게, 때론 부드럽고 섬세하게 노래와 눈빛과 호흡과 음악의 서정으로 갈무리한다.
그러나 한국의 이와이 순지(영화 ‘러브레터’의 감독으로 섬세하고 맑은 서정적인 영상으로 유명하다)라는 별명이 부담스러웠을까. 그는 이전의 단편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을 가했다. 대사는 한껏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며, 심지어 베드신도 있다. 특히 게이로 알려진 영수와 그를 연모하는 세연의 첫 경험을 감독은 놀랍게도 예술영화에나 쓰는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관조적인 베드신’ 연출을 감행했다.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 캐스팅해 스타가 된 정유미도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너 때문에 연애불구’가 됐다며 옛 연인에게 매달리며 징징댄다. 정유미가 분한 은희와 윤계상이 분한 현오의 이별담은 분명 이 영화의 백미다. 새 애인이 생긴 현오에게 은희는 귀찮고 껄끄러운 존재지만, 구두에 붙은 젖은 낙엽처럼 현오는 은희를 쉽사리 떼어내지 못한다.
변화무쌍한 계절의 분위기는 사랑의 진행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곧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지만 다가갔다 멀어지는 이 사랑의 줄다리기에서 어떤 정답도 있을 수 없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이 봄, 사랑이 다가오는 시절의 설렘에 붕 떴다면,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는 사랑이 달아나는 계절, 가을의 쓸쓸함이 암연하게 배어나온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가까이. 감독의 사랑의 몸짓은 한없는 점근선의 노력과 현재 진행형의 서사를 포함하고 있다. 아직은 ‘연인’ 또는 ‘둘’이라는 폐쇄적인 세계에 머물고 있지만. 폴라로이드를 사랑하던 서정 시인은 연애를 통해 점점 세상을 알아가는 듯하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단편들에서 쌓아놓았던 승수,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사랑의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가려는 김 감독의 진정성은 여전히 부드럽게 맑고, 눈물겹게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