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다, 고로 존재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생활한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자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무심결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들은 엄마의 시선을 의식하고, 엄마는 다른 엄마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시선을 의식하고, 학교에서는 선생의 시선을 의식한다. 이는 상사나 선생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사장이나 회장이나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의식한다. 바야흐로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는 세계, 인류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서로를 보는’ 세계도 함께 탄생했을지 모른다.
본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본다는 말에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해 객관성이 주어지는 듯 보이지만, 어떤 사물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판단이 개입될 때 보는 것만큼 주관적인 것도 없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볼 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본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하기 싫은 일도 하고 도맡아 처리해야 하고, 지키기 힘든(싫은), 약속을 꾸역꾸역 지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일종의 감시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런 감시관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면? 진짜 자유가 주어질까?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봐가며 암묵적인 약속, 서로가 지키고 있는 희미한 경계에 대해 확인한다. 그리고 눈 먼 자들의 도시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가 바로 그 희미한 법의 경계, 감시관들이 부재한 세상에 대한 묘사다.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세계, 법과 규칙과 경계가 희미해진 곳에서 인간이 보여주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잘 그려내고 있다. 눈은 하나의 감시관이다. 동시에 법이며 명령, 약속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여기에 있다. 남의 시선만 의식하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남의 시선이 없을 때 발생하는 문제 또한 생각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과연 우리는 서로의 시선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본다는 것의 의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련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무너진 세계, 허물어진 경계
한 순간이었다. 한 남자의 눈이 멀었던 것이. 차 안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일본 남자의 곁에 길을 걷던 몇몇의 사람이 다가왔고, 순식간에 눈뜬장님이 되고만 그를 도왔다.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그를 돕던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일명 ‘유별남’은 일본 남자를 그의 집까지 태워주기로 약속하고 운전석에 오른다. 그렇게 도착한 집 앞,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별남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의 차를 탈취하기 위해 유별남은 유별나게도 친절히 돕는 척 행색을 했던 것이다. 유별남은 그의 차를 타고 도망가 버리고, 길 위에 버려진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고아마냥 갑자기 사라져 버린 세계를 더듬거린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시작된 눈의 실명은 마치 전염병 퍼지듯이 퍼져나갔다. 그의 아내로부터 시작해 그를 진료했던 의사, 더욱이 그의 차량을 탈취해 갔던 유별남까지. 그가 시력을 잃고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병을 옮겨 받듯, 시력을 잃었다. 우리가 햇빛을 눈뜨고 볼 수 없듯이 그들의 눈에는 마치 하나의 강렬한 태양 같은 것이 박혀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빛에 휩싸인 눈, 그러니까 어둠에 휩싸였던 기존의 실명과는 다른, 병이었다.
이 병은, 병을 가진 사람과 접촉하기만 해도 순식간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을 봐주던 안과의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사는 이 병이 무서운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고, 이 사실을 당국에 알렸다. 그리고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하나 둘 격리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의사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따라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전염이 심한 병이라면 자신 또한 언젠가는 시력을 잃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눈이 보이지 않는 남편을 혼자 보낼 수 없었던 것, 여기서부터 그녀의 비극은 시작된다. 그녀는 병을 가진 이들과 아무리 접촉해도 시력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 또한 시력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더불어 강렬한 빛으로 무너진 세계를 하나 둘 목도할 뿐이었다.
차라리 눈감으면 편할 것을, 그녀는 눈이 보이는 그날까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도왔다. 마치 헌신의 상징 나이팅게일처럼, 솔선수범하여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화장실을 알려주고 음식을 나눠주고 여러 일들을 도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녀는 더 이상 그 많은 사람들을 손 쓸 수 없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 그곳은 모든 경계가 허물어졌고 모든 법과 규율, 규칙이 붕괴한다. 방과 떨어진 화장실은 쓸모가 없었고,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씻고 꾸미는 일은 사치였다. 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음식을 먹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의 전부였다.
국가는 전염병자들을 격리했고 차단해 버렸으며, 볼 수 있는 사람들과 세계에서 완전히 차단해 버린다. 이곳은 경계가 없는 자들의 모임. 경계를 잃고 버려진 자들의 인간 말소 쓰레기장이었다. 보이는 자들과 보이지 않는 자들의 분리,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은 점점 더 빨리 퍼져갔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어나는 사람들은 식욕, 성욕, 배설욕과 같은 욕구들을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실행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행해지는 일들, 그들이 발 딛는 그곳이 화장실이었고, 그들과 손닿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섹스파트너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는 제 때의 음식뿐이었다. 모든 규칙과 규범, 인간으로서의 윤리나 도덕은 실종된다.
수용소에서 최소한의 윤리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뿐. 그러나 그것도 허울뿐인 말이다. 음식을 먹기 위해 달려들고 아무 곳에나 똥 오줌을 갈기는 사람들, 손이 닿는 사람마다 섹스를 하고 성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은 중요치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일에만 집중할 뿐, 의사 남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물신양면 돕는 아내를 뒤로하고,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남편, 이들의 형상은 인간-짐승이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단 한 사람, 그녀가 있다. 차라리 눈감으면 편할 것을. 본다는 것이 끔찍한 재앙이 되어버린 이때,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 그 끝을 알 수 없는 세계가 그녀 앞으로 점점 더 닥쳐오고 있다.
장님 왕
수감소 인원이 불어나고 방에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면서, 여러 개의 방에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대한 왕이 입성하셨다! 그 왕은 누구인가? 바로 장님 중의 장님,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은 자였다. 그는 전염병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감소에 들어와 버렸다. 수감소로 버려진 인생, 그러나 그런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보이는 세계에서 한없이 약자였던 그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완전한 강자로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무능력이 오늘의 능력으로 바뀐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둠에 익숙한 자를 이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일련의 ‘감’을 가지고 수용소 생활을 했고, 그 누구보다 그곳 생활에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딱딱딱” 그의 지팡이는 사람들의 유일한 눈의 역할을 하면서 음식을 찾고, 방을 찾고, 물건을 찾는다. 그가 익힌 수용소에서의 생활감은 일종의 권력이 되었고, 그의 지팡이는 왕의 규가 되었다. 그의 경쾌한 발걸음이 들릴 때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욕망을 더 빨리, 더 많이 처리해 줄 적격의 왕을 만났노라 생각했던 것, 그렇게 모인 몇몇의 사람들이 어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과거의 법과 규칙, 도덕과 윤리가 깨진 세계에 권력이라는 힘이 작동하자 수용소는 보이던 세계와 같이 왕과 노예의 세계로 다시 구분되어 버린다. 어둠의 왕국에서 실행한 첫 번째 미션은 바로 음식 탈취였다. 부가 막강한 권력의 상징이 되듯 수용소의 밥줄을 끊어버리는 것이 최고의 권력 쟁취였다. 수용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님과 그 일당의 행태에 대해 반발했으나 최고의 무기, 총을 가진 그들의 힘 앞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도 볼 수 없는 자가 쏘는 총이 뭐가 그리 무서울까 생각하겠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의 무자비성 앞에 사람들은 온 무릎을 꿇고 만다. 모두들 살기위해 어둠의 왕에게 복종했다.
두 번째 미션은 진귀한 물건들 모으기였다. 시계, 목걸이를 비롯해 사람들이 챙겨온 온갖 물건들이 음식의 값으로 매겨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귀중품에 대해, 그 가치에 대해 생각을 하고는 잠시 갈등했지만 이내 물건을 내놓았다. 배를 곯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치품이 중요치 않을뿐더러 앞도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사치품이란 쓸모없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방이고 주머니, 온 방을 뒤져 자신이 챙겨온 모든 물건들을 꺼내 놓는다. 어둠의 왕은 그것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냄새를 맡아가면서 물건들의 값을 음식으로 매긴다.
그리고 어둠의 왕국의 마지막 미션이 떨어졌다. 각 방의 여자들과 음식을 바꾸는 것, 여자들과 한 밤을 보내고 그 대가로 여자들이 묵었던 방에 음식을 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돈과 섹스와 권력,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수용소에서 진행된다. 각 방의 여자들은 고민에 빠졌고, 남자들은 자신의 여자를 잃는 것에 괴로워했다. 먹기 위해 사는 삶, 살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엄마를 딸을 누나를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누군가는 찬성했고, 누군가는 절망했으며 결국에는 몇몇의 여자들이 자신들이 가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거기에는 의사의 아내도 포함되었다.
앞이 보이는 그녀는 왜 그렇게 무모한 일을 선택했을까.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몸을 팔아 음식을 충당하려는 여자들을 홀로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끝까지 윤리적이었다. 수용소에 갇힌 그녀의 규칙은 단 하나였다. 자신이 앞을 볼 수 있다는 비밀을 발설하지 말 것, 다만 조용히 남을 도울 것. 그것만이 그녀가 수용소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녀 혼자 탈출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전염병을 가진 이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하기에 충분했고, 그녀가 본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임에 분명했다. 혹여 믿는다 해도 그녀를 이용하려는 이들로 넘쳐날 뿐, 그녀가 살 수 있는 길은 음식과 재물을 탈취한 악한들에게 자신의 몸을 바치는 일 뿐이었다.
그래서 일이 터졌다. 같은 방 여자가 어둠의 왕국의 사람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는 것을 아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그 누구도 보지 않는다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벌거벗은 여자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폭력을 당하다가 숨을 거둔 여자, 조용하지만 악랄하게 이루어진 살인 앞에 아내는 처음으로 분노했다. 그리고 자신의 비밀이자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았던 금기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둠의 왕국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가 자신이 숨겨놓은 가위를 살인자에게 휘둘렀던 것이다. 살인자의 목덜미가 가위로 끊어졌고 여전히 돈(사치품)과 권력(음식)과 섹스(여자)를 추구하는 어둠의 왕국과 그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둠의 왕국은 다시금 힘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가지고 협박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고, 여러 방의 여자들을 물건 다루듯 약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여자(앞을 보는 것처럼 여겨지는 여자)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더불어 위험한 무기를 숨기고 있다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장님 왕은 분노했다. 한 세계의 법과 규율과 제도와 명령을 뒤흔드는 반란자를 찾기 위해 장님 왕은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장님은 결국 장님이었다. 장님 왕은 자신의 발밑에서 타는 불을 발견하지 못했다. 권력의 끝에 반란이 있다는 사실은 그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음식과 사치품들이 노략 당할까 문 앞에 총을 차고 앉아 보초를 서기 바빴을 뿐, 자신의 목숨은 지키지 못했다. 결국 견고하게 세워진 것만 같았던 어둠의 왕국에 불이 난다. 감이 뛰어난 장님도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불은 어찌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불이 나자 수용소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장님과 몇몇의 사람들은 뜨거운 불속을 걸어 다니며 살기위해 더듬거렸고, 어둠의 왕국은 화려한 불꽃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탈출, 또 다른 고립
그렇게 아내와 몇몇의 사람들은 수용소를 탈출했다. 탈출한 줄 알았다. 수용소를 지키고 있던 군대도 떠난 지 오래였다. 어떠한 물자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곳, 버림받은 사람들의 최후 종착지를 아내와 몇몇의 사람들이 뛰쳐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나 싶었다. 그러나 수용소 밖은 거대한 수용소에 다름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조리 시력을 잃었고, 온 세계를 더듬거리고 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시체를 뜯어 먹으며 사는 들짐승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거리에는 오로지 죽은 자와 산 자의 시체들이 온 거리를 쏘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사회의 법과 규율, 윤리와 도덕이 모두 무너진 세계는 처참했다. 사람들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끔찍한 살인이 수용소 뿐 아니라, 그 밖에도 일어난다는 것, 그것이 아내의 눈에 비친 광경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규칙과 규범, 법과 체계가 깨진 세계는 자유가 아니라 그야말로 처참 그 자체였다. 경계가 허물어진 곳에는 혼돈이 가득할 뿐이었다. 짐승-인간들은 허다한 몰골을 하고 거리를 배회하고 쏘다녔고, 사냥감을 찾기 위해 자신의 온 감각을 곤두세웠다.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종교, 예술이 온 세계를 뒤덮었던 과거의 모습을 뒤로 하고, 빌딩이고, 박물관이고 교회에 온통 인간-짐승들이 들끓었다. 그들은 바스락 거리는 소리, 음식 냄새를 쫓아 오로지 배를 불리는 것, 물을 마시는 것, 그렇게 하루 더 버티는 것에 치중한다. 앞이 훤히 보이는 아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내는 자신을 의지하는 몇몇의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 발 딛지 않은 그곳에 가야만 했다. 그렇게 마트를 돌았을까. 마트 지하 창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하는 창고에는 그 누구도 침입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열쇠를 찾았고, 고생 끝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마트 안을 서성거리는 사람을 뚫고 남편이 있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는 것이 문제였다. 음식을 찾는 것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조그만 부스럭 소리에도 달려들었고, 음식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그들은 그야말로 한 마리 짐승들이었다. 감각이 최고조로 발달한 짐승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 아내의 곁으로 몰려드는 짐승의 무리들, 무리는 아내를 덮쳤고 가까스로 조금의 양식을 챙겨들고 갈 수 있었다. 끝내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둘이 살던 그 집으로.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인 그곳으로 말이다.
얼마만의 집이었던가. 그들은 처음으로 사람다운 생활을 누렸다.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그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집 밖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물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간으로서의 질서와 윤리, 도덕이 작동되는 곳, 그곳이 생애 최고의 파라다이스였던 것이다. 남편과 둘이 살던 공간이 몇몇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버린 그 순간에도 아내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는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였다. 그녀는 모든 상황에 앞장섰고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진다. 마지막 남은 커피를 일본 남자에게 건넸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력을 잃었던 첫 사람, 일본남자가 조금씩 시력을 되찾는다. 갑자기 시력을 잃었던 그 때처럼 갑자기 시력이 돌아왔다. 희미한 경계가 하나 둘 뚜렷해졌고, 사물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일순간 재앙을 몰고 왔던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의 징표가 되었다. 시력이 순식간에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 사람들은 기뻐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시력을 찾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잃었던 시력을 찾을 수 있을까?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내, 그녀의 눈에 강렬한 빛이 내리 쬔다. 그녀의 운명은? 웃음도 울음도 아닌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그녀는 과연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단지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글: 이 호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한국문인 인장박물관> 학예실장.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