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8일 개봉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문득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 날의 날씨, 그 날의 감정, 그리고 그 날의 냄새. 하지만 가끔 그 날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의 얼굴과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날의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나, 그날의 내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일을 겪었지만, 두 사람의 기억과 감정은 묘하게 다르다. 어쩌면 그리워지는 기억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 더 큰 쓸쓸함 속에 갇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떠나지 못하고 상실을 극복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더라도, 상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의 <고스트 스토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라진 후, 남겨진 사람을 프레임에 가둔 이야기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남자 C(케이시 애플렉)는 병원 침대에서 자신의 몸을 덮었던 시트를 그대로 뒤집어 쓴 채 일어나 유령이 된다. 어린 시절 동화 속 이미지로 각인된 두 개의 눈구멍이 뚫린, 우스꽝스러운 형상이다. 유령이 된 C는 늘어진 시트를 질질 끌면서, 걷고 또 걸어 사랑하는 여자 M(루니 마라)과 함께 지내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M이 상실을 극복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본다. 얼핏 데미 무어의 <사랑과 영혼>이 떠오르겠지만, 기대는 금세 무너진다.
영화는 상실을 견디는 여인을 보살피는 유령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이라는 추억에 갇힌 유령이 쓸쓸함과 고독을 견디며 묵묵히 살아가는, 혹은 그렇게 살아지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후, 상실을 극복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기대하겠지만, 결국 남겨져 오롯한 고독을 견디는 인물은 남겨진 여인이 아니라, 죽은 남자라는 설정은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지만 청량할 만큼 신선하다. 로워리 감독은 아무런 특수 효과 없이, 시트를 뒤집어 쓴 유령의 실루엣만으로 유령의 감정을 담아낸다. 조명과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흰 천의 색감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낡아가는 천의 디테일한 변화는 오롯이 유령의 시간을, 유령과 함께 하는 상실의 시간을 관객들이 함께 견디고 감내하게 만든다.
1.37:1의 화면비율에 일부러 크롭을 준 화면비는 반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트 스토리>를 캠코더로 기록한 C의 홈 무비를 보는 것처럼 만든다. 그렇게 인위적이고 조금은 답답한 화면비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어쩌면, C라는 인물의 주관적인 프레임에 갇힌 캠코더의 기록처럼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로워리 감독의 <고스트 스토리>는 친절하지 않고 주관적이다. 이해할 듯하면 비틀고, 공감하려는 순간에 냉큼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렇다고 날카롭게 생채기를 내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줄곧 유령의 입장에서 겪는 쓸쓸한 시간에 집중한다.
C가 살아있을 때, M은 ‘이사를 갈 때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메모를 남겨둔다. 혹시 돌아온다면 나를 반겨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M은 상실의 쓸쓸함을 극복하고 결국 기둥의 갈라진 틈새에 쪽지 한 장을 적어둔 채 집을 떠난다. M이 떠난 이후, C는 기둥 사이의 쪽지를 꺼내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가 않다. M이 사라진 후, 공간에 갇힌 유령의 이야기는 고단하다. C는 집안을 떠돌며 새롭게 이사 온 가족을 지켜보고, 언젠가 돌아올지 모를 M을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의 대상, 혹은 목적도 희미해진다. 끝없는 내일과 미래가 끝나지도 않고 그의 앞에 펼쳐진다. 어느새 그가 기다리는 것이 M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러다 다시 과거였을지도 모른 미래가, 미래였을지도 모르는 과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불안함과 지난한 삶은 그렇게 눅진거리며 관객들의 마음을 흐리게 만든다.
영화의 중반부가 지나면 M의 집은 또 누군가의 파티장이 되는데, 여기 등장하는 한 남자는 영생과 소멸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를 펼친다.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 추억, 우정 등 가치를 지닌 것들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말한다. 로워리 감독이 <고스트 스토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친절하게 말로 펼쳐진다. 이런 설명으로 <고스트 스토리>는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영화가 되지만 이미 이미지와 상황으로 충분히 설명했고(케이시 에플랙은 천을 뒤집어쓰고 실루엣만으로 연기를 하지만 작은 고갯짓,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풍부한 감정을 드러낸다.), 관객들도 이해하고 있을 내용이라 사족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명제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굳이 꺼내어, 판타지 로맨스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냉정한 감정으로 그려진 <고스트 스토리>가 내밀하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축약하는 장면이니 대사를 유의해서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되풀이 되는 유령의 삶이 윤회로 이어질 때, 유령의 인생에 아무런 희망도 없을 거란 인식은 좌절감을 안긴다. 그 절대적인 고독, 공포 없는 유령이야기지만, <고스트 스토리>가 주는 가장 뚜렷하고도 확고한 공포이기도 하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M이 남겨둔 쪽지의 메시지는 관객들이 유령과 함께 풀어가야 할 마지막 퍼즐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이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재미를 위해 그 결말을 공유하지는 않겠지만, ‘남겨진 쪽지’는 <고스트 스토리>가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로워리 감독은 이 쪽지가 맥거핀(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관객을 의문에 빠트리거나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사건, 상황, 인물, 소품이지만 별 의미 없는 속임수인 경우가 많다.)인지 철학적 사유를 위한 장치인지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쪽지가 열리고 화면이 닫히며 ‘훵’하니 올라가는 자막을 지켜보며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스트 스토리>는 기억과 소멸에 관한 이야기이다. 천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맨발임이 분명한 M의 발은 땅의 서늘함을 그대로 딛고 서 있다. 묵묵히,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M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누군가의 기억처럼 점프 컷처럼 구성된다. 우리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의 한 마디에, 우연히 듣게 된 노랫말에 우리의 기억은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의 기억은 편집이 화려한 영화처럼 역동적이지만, 기억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전혀 맥락이 없는 화면처럼 보인다. 오늘의 내가 있는 이유는, 잠들기 전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심드렁하게 바라보자면 <고스트 스토리>는 누군가에게는 맥락이 없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진 후’에도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마음에 품고 들여다보면, 추억처럼 보이거나 기억처럼 보이는 화면에 홀리게 될 것이다. 물론 루니 마라가 7분이 넘는 시간 동안 파이를 퍼 먹는 롱 테이크 장면을 묵도해야 하고, 감당해야 한다. 약간의 고비를 넘기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인이 극복해야 하는 슬픔보다, 미래 없는 미래 속에 갇혀, 오직 기억에만 매달려 추억을 반추해야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유령의 쓸쓸한 길에 동행할 수 있다.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기억은 편린이 되어 뿌려진다. 그리고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 상대방의 따뜻한 심장이 아니라, 계속 되짚어가야 하는 나의 기억이라는 사실에 공허한 구멍이 뚫린다. 각자의 기억이 달라 명쾌한 처방이 없는 상실의 아픔, 어쩌면 우리는 교차점 없는 길 위에서 각자의 생존법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고스트 스토리 - 포토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2017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