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1일 재개봉
프랑스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이 12간지를 넘어 황금개띠해에 재개봉 된다. 여성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감독은 여성 이상의 섬세한 감각과 감성으로 꿈에 관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꿈의 해석’(Traumbedeutung)의 영화 버전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의 작품답게 일상과 꿈, 시제를 자유롭게 오가며 만화적 상상력을 곳곳에 뿌린다.
영화적 상상은 멕시코 출신으로 어머니의 권유로 파리에서 달력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몽상가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옆집 여자 스테파니(샤를로뜨 갱스부르) 사이의 로맨스를 코믹하게 다룬다. 스테판에게 예술이 아니라 풀칠을 하게 된 자그만 달력회사 일은 시련이다. 스테판이 옆집으로 이사 온 스테파니를 좋아하게 되면서 꿈에 스테파니가 자주 등장한다.
스테판은 꿈속에서 '스테판 TV'를 운영하며 현실적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드럼이나 피아노도 연주한다. 영화는 주변의 감정을 요리 솥에 집어넣는 요리장면을 보여주면서 사랑, 우정을 애기하지만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판타지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암으로 타계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애기하면서 든든한 후원자로서 가족의 소중함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스테판이 파리에 도착해서부터 일상, 직장생활과 연애감정들이 영화에 담기면서 꿈과 현실이 뒤엉키고, 비정상 코미디가 난무한다. 스테판의 일상은 회사에서 강아지, 꽃, 누드 같은 그림 대신 비행기 폭발, 대지진 같은 세계적 재앙을 달력에 넣자고 주장하거나 1초 타임머신, 독심술 기계, 달리는 말 같은 발명품을 만들어 스테파니에게 선물하는 괴짜 이웃이다.
스테파니도 순진무구한 스테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스테판은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욕구, 스트레스, 스테파니에 대한 짝사랑이 과도해지면서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진다. 스테판의 무모한 언행에 스테파니는 결별을 선언한다. 스테판처럼 현실에서 꿈을 보기 시작하는 스테파니는 스테판을 인정하고 닮아가려고 한다. 영화는 비정상 조합을 완성한다.
미셸 공드리는 극영화 <휴먼 네이처>(2001)로 데뷔, <이터널 선샤인>(2005)으로 아카데미영화제 각본상 수상, <수면의 과학>(2006)으로 존재감을 부각시켜 왔다. 이후 <그린 호넷>(2011), <거대한 여행>(2011), <더 위 앤드 더 아이>(2012),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노암 촘스키와의 대화>(2013), <문 인디고>(2013), <마이크롭 앤 가솔린>(2015) 같은 다양한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의 독창적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생중계하는 남자이다.
한국에서 프랑스 영화의 흥행 전성시대는 르네 클레망( 태양은 가득히, 1960),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태양은 외로워, 1962), 루키노 비스콘티(로코와 그의 형제들, 1960) 등 명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영화배우 아랑드롱(Alain Delon)이 주연으로 활약했을 때이다. 프랑스 최고의 흥행영화 <아스테릭스>(1999)가 한국 흥행에서 참패했다.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구성, 대사, 전개방식은 한국 코미디의 자극적, 직설적, 인격무시적 작품과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수면의 과학>은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공드리 감독의 감각적 동화 판타지의 만개를 보여준다. 스테판의 활동 공간은 감독의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보았던 곳과 닮아있다. 캐스팅은 놀랍다. 남자 주인공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국민 배우, 여자 주인공은 이후 제62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샤를로뜨 갱스부르 이다. 자신만의 빛깔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은 연출과 안목은 이제 정답을 제시한다.
쟝 미쉘 베르나르(Jean Michel Bernard)의 영화음악이 감독의 상상력을 뒷받침한다. 제60회 칸영화제 UCMF 영화 음악상을 받았고, <수면의 과학>은 제39회 시체스영화제 관객상, 공드리 감독은 제19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예술공헌상을 수상했다. 공드리 감독은 ‘bullet time’ 기법으로 스테판을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고, 스테판은 타임머신을 만들어 소통과 사랑의 영속성을 이야기 한다.
자두색 슈트를 입은 괴짜 스테판의 상상력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스테파니 사이를 파고드는 ‘셀로판 수도꼭지’, ‘동굴 타자기’, ‘궤양 소울’, ‘카드 타워’, ‘나의 이웃’, ‘마틴 욕조’, ‘주말 스키’, ‘황금빛 망아지 소년’, ‘꿈을 좇아서’, ‘추적’, ‘스테파니의 우울’은 온갖 상념과 추억을 버무려 끓인 '꿈 스프'를 방송하는 스테판 TV를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아카펠라와 샹송의 ‘당신이 나를 구해준다면’은 장애적 상황을 극복하는 치료제가 된다.
<수면의 과학>의 꿈속 장면들은 실사 촬영 이전에 촬영되었다. 망설임으로 마무리가 부족한 스테파니에게 바다로 나가는 배를 완성하라고 다그치는 스테판, 모형 미니애츄어 배가 완성되면 두 사람은 말을 타고 하늘을 날고 항해도 한다. 감독은 사랑과 소통의 결핍을 채울 상상력으로 ‘커진 손’을 내세우고 지진, 대폭발을 욕망을 분출하는 상징으로 쓴다.
스테판의 생각같이 현실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상상력, 이제 컴퓨터 시대는 가상공간을 만들어주고 있고, 그 공간에서 우리는 희로애락을 겪으며, 그 세계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스테판처럼 적정을 모르는 미셀 공드리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 너무 앞서간 영상철학자, 시시껄렁한 장난기 많은 영화로만 알았던 그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글: 장석용
영화평론가. 시인. 유현목, 김호선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 회장, 대종상/부산국제영화제/예술실험영화/다양성영화/청소년영화제/이태리 황금금배상/다카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으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거쳐 서경대 대학원에서 문예비평론을 강의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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