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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 조선의 명운이 걸린 사십 칠 일간의 항전기

현대영화사에서 만나기 힘든 정통사극, 『남한산성』은 이전 사극영화들이 저질러온 역사에 대한 희화, 민족비하, 반란, 치정, 음모로 범벅된 오류들을 바로잡으며 사극영화를 품격을 보여준다. 지우고 싶은 역사의 치욕적 장소 중의 하나, 감독이 김 훈 소설의 명성을 업고 선택한 상징적 장소는 조선조의 남한산성이다. 화두는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민족의 향방’이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의 진수를 보는 듯한 전쟁 드라마는 병자호란(1636년 음력 12월∼1937년 1월)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왕(인조, 박해일), 주화파 최명길(이조판서, 이병헌), 척화파  김상헌(예조판서, 김윤석)을 주축으로 병사들과 민초들(대표인물: 수어사 이시백(박희순), 대장장이 서날쇠(고수), 조선 천민 출신인 청의 역관 정명수(조우진))의 애환을 세묘해 들어간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눈, 얼음, 두툼한 겨울옷은 전투에 버금가는 엄동설한을 강조하는 비주얼이다. 한성과 남한산성을 이어주는 삼전도(송파)의 뱃사공의 뒷모습에서 시작된 핏빛 서사는 상(上, 인조)이 당 태종의 신하가 되어 환궁하는 뒷모습으로 끝난다. 긴 호흡으로 시작한 영화는 시종 엄숙한 제의(제의) 같은 일관된 톤으로 미학적 상위의 견고한 틀을 유지한다. 
 
  

감독은 삼백 팔십년 전의 과거를 오늘이라는 바둑판 위에 올려놓고 진퇴양난의 상황을 조망한다. 군주의 무능함은 지리멸렬의 현실을 낳고, 그 피해와 고통은 바로 민초들의 비극으로 직결된다는 교훈을 일깨운다. 영화는 매파와 비둘기파 중 어느 한 편을 일방적으로 편 들지 않고 각 파의 명분과 철학을 살리면서 무서운 균형을 이룬다. 판단은 관객 몫으로 남겨 둔다.   
     
병자호란은 조선이 후금을 오랑캐로 적대시하다가 당한 난(亂)이다. 1636년 12월,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조선을 침략한다. 양력 1월부터 3월은 본격적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비둘기파의 주장대로 삼전도 나루터에서 조선왕의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머리를 세 번 땅에 찧고 아홉 벌 절하는 만주족 인사법) 항복으로 매듭 된다. 

감독의 시선은 ‘아둔한 민족이여, 나라의 운명은 어찌될거나?’로써 현 시대적 상황과 과거역사가 절묘하게 맞물린다. 미국(트럼프)과 중국(시진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던 한국, 박근혜(광해군)가 폐위되고, 집권한 문재인 군주 앞에 사드 문제로 고립무원이 된 ‘한국산성’에 사드 배치파와 반대파가 싸운다. 국익은 점감(漸減)되고, 어느 쪽에 머리를 조아려야 평화가 올까? 

정치권은 그늘진 국민들의 고통과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소모성 정쟁을 일삼는다. 나라를 붕괴시키는 것은 신념이 다른 두 충신의 논쟁에서 보듯 전쟁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이다. 영화가 소재로 삼은 치욕사는 무수한 사회적 담론을 생산한다. 열 한 개의 시퀀스로 촘촘히 짠 영화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유교적 명분과 실리적 외교를 충돌시킨다. 

 
  
 
갓 아래 풍경, ‘나라’와 ‘백성’을 염두에 둔 두 신하의 뜨거운 가슴(김상헌)과 냉철한 이지(최명길)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 기준대로 벌어지는 갈등과 설전(舌戰)은 전투 신을 방불케 하는 최상위 내면 연기의 압권이다. 꽉 들어찬 신하들과 왕을 보여주는 콤팩트한 풀 쇼트. 그 심리적 틈새와 극한 상황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파고든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디스다이모니아의 절대적 구성 요소는 이병헌과 김윤석의 연기이다. 갓살을 사이로 비치는 고뇌의 흔적, 깊은 고민의 결단으로 빚은 대사들은 검무의 동선을 탄다. 이성과 감성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들뜸을 가라앉히고, 절제와 생략으로 몰입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면서, 철학과 사상이 다른 두 충신을 연기해내는 연기자의 연기는 출중하다.    

 
  
 
가을의 미토스에 걸린  <남한산성>은 조선 16대 왕 인조가 항복함으로써 종결된다. 황동혁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하여 역사인식, 심리적 연구, 기교적 측면에서 월등한 우위를 보여준다. 영화를 다루는 감각과 조형은 형식적 수단 외에도 고난도 심리와 감정을 조절하는 능숙함을 보여준다. <남한산성>이 사극영화의 새로운 전통을 써내려가는 교본이 되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남한산성


글: 장석용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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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5,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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