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젠킨스 각본, 감독의 『문라이트, Moonlight, 111분』
한 흑인 소년의 성장과정을 통해 본 흑인의 삶
『문라이트』는 터렐 앨빈 매크레이니(Tarell Alvin McCraney)의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마이애미 블루, 넓은 화각으로 잡히는 거리 풍경, 마약상들과 마약 중독자들의 삶이 포착되고, 뛰어난 화질을 보강해주는 니컬러스 브리틀의 음악이 영화를 감싼다.
원색의 장엄을 탈색시키며 잔가지처럼 뻗어나는 사건들은 오브제가 된 마이애미의 풍광을 낭만의 뒤편으로 제친다. 샤이론의 성장에 따라 하나씩 이름을 바꿔가는 풀 스코어들은 화려한 변주를 하고 제임스 렉스톤의 촬영은 다양한 색상과 질감으로 『문라이트』를 격정의 와이드스크린으로 이동시킨다. 압축된 영상시 속에 침화된 고통의 파편들이 하나씩 들어와 박힌다.
미묘하고 위험한 상황 한가운데에 놓인 어린 샤이론(알렉스 히버트)이 등치 큰 아이들을 피해 버려진 모텔로 숨으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닫힌 널판을 뜯고 아버지처럼 구원자로 다가오는 마약상 후안(마허샬라 알리)은 소년을 애인 테레사(자넬 모네) 집으로 데려가서 식사를 대접하고 집으로 데려다 주는 호의를 베푼다. 집단 따돌림은 학교 안밖에서 수시로 자행된다.
며칠 뒤 리틀(샤이론의 소년기 별명)의 어머니 폴라(나오미 해리스)는 마약에 취해 아들에게 호모(fagot)라고 막말을 퍼 붙는다. 리틀에게 후안은 미국에서 흑인으로서의 삶의 종착지와 리틀의 미래 성장과정을 헤아리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후안에게 리틀은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자 거울이다. 후안은 리틀을 아들 이상으로 생각하게 되고 끝없는 연민을 보인다.
후안의 보살핌은 바닷가에서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치기까지에 이른다. 드넓고 자유로운 바다에서 후안의 팔에 안겨있는 리틀은 미소로 미루어 포옹의 아름다움(수동성)을 느낀다. 동성애의 이면적 상징으로도 비춰진다. Alexa 235로 촬영된 바다는 코발트 톤의 블루를 신비감으로 이끌며 부드럽게 바다를 유영하는 흑인 소년 리틀의 꿈이 실현될 것 같은 희망을 준다.
후안은 깡마른 리틀에게 ‘어디를 가더라도 흑인은 있다’면서 ‘모든 흑인은 별’임을 주지시키며 바르게 살아가라고 우정 어린 조언을 한다. 존중하는 아버지와 스승 같은 어른이 어머니에게 마약을 파는 것과 성정체성 문제를 질문하면서 리틀의 소년기는 끝난다. 리틀에게 이상적 부모형은 후안과 테레사였다. 구체적 씬은 없었어도 소년기의 끝에 후안도 사망 처리된다.
마약중독자인 편모슬하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소년 리틀, 아이러니한 도시명 리버티 시(Liberty City)에서 왕따로 학교폭력의 희생자가로 살아가는 청소년으로서 거친 미국 사회를 부대끼며 살아가는 샤이론, 출감 이후 블랙이란 마약상으로서 성인이 되어서도 굴레적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3부로 구성된 영화는 인권과 자유국가의 구조적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십대의 샤이론(애쉬튼 샌더스)의 치명적 우울은 지속된다. 깡패나 다름없는 동급생 틈에서 샤이론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학교생활 지속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를 노리면서 괴롭혀온 아이들은 신체조건 때문에 입은 청바지 조차 비웃으며 조롱한다. 그는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에게도 학대당하며 철저히 소외된다. 샤이론은 공격적이고 사나운 아이들을 늘 피해 다닌다.
도망은 불가능하다. 두목 테럴(패트릭 데실)은 샤이론의 단짝 케빈을 시켜 과묵하고 수줍음 많은 샤이론을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구타하도록 시킨다. 어느 늦은 밤 케빈은 해변에서 게이 성향을 같이 느꼈던 친구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케빈도 샤이론처럼 소년(제이든 파이너), 청소년(저렐 제롬), 성인(안드레 홀랜드)으로 인물이 바뀐다. 다음 날, 화가 난 샤이론이 교실에서 의자로 테럴의 머리를 내려치면서 보복하지만 경찰에 체포되면서 청년기는 끝난다.
실화를 연상시키는 영화는 백만 명 씩 사라지는 흑인의 조기사망과 투옥의 굴레가 색다른 사람들의 삶을 형성하는 흑인, 멕시코계 사람들의 남성성과 게이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감독은 가급적 기교를 피하고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파생되는지를 정적으로 접근한다. 거칠고 투박한 스토리 전개는 흑인 게이의 성정체성과 고통스런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청록색과 붉은 빛이 섞인 성인 샤이론(트래반트 로즈)의 진한 어두운 색 이미지는 거칠고 위협적인 샤이론(별명 블랙)으로 묘사된다. 그는 재활 센터의 통제하에 있는 어머니가 있는 아틀란타에서 본 적 없는 인자한 아버지 모습의 후안처럼 마약상으로 일한다. 금테를 두른 이빨의 블랙, 새 별명은 나약한 과거의 자신의 존재를 잊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영화는 흑인 게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미국사회에서 소모품으로 취급받으며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사랑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던 학대받는 흑인 어린이들을 소중하게 부각시킨다. 이미 성인으로 무디어진 기회 박탈의 남성들도 유연성과 부드러운 감정, 모두를 위한 힘든 재생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감독은 놀라운 창의력으로 침착하게 흑인들의 분노를 대변한다.
야간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 블랙은 이 거리의 깡패가 자신이 젊었을 때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음을 알게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싶어 하지만 리틀은 핑계를 대고 무시한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는 어머니의 전화가 아닌 출소한 뒤 마이애미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 케빈의 오랫만의 전화였다. 케빈이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우정을 떠올린 것이다.
블랙은 그 전화로 못난 자신을 증오하는 모든 것과 단 한번 즐겼던 사랑을 떠올린다. 블랙은 고뇌에 찬 결단으로 평생 헤어져 있던 어머니를 찾아 화해하고, 가석방 상태이지만 차를 몰고 요리사 겸 서빙을 하는 케빈의 작은 식당에 당도한다. 옛 동창을 알아 본 뒤, 케빈은 스페셜 쿠바 요리를 정성을 다해 요리하고, 술을 못하는 블랙에게 몇 병의 포도주를 강권한다.
케빈은 머무를 곳 없는 블랙을 자기 아파트로 데려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대화; 케빈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으며, 지금은 이혼상태이지만 전 아내와 친하게 지낸다고 말한다. 블랙은 늘 그래왔듯 화법이 서투르기 때문에 왜 왔는지 말하지 않는다. 영화적 설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실패, 외로움, 완전 고립이라는 주제는 관객들의 상상에 달려있다.
케빈은 벌이는 일 마다 실패했고,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다고 실토한다. 샤이론도 사랑에 관한 가장 슬픈 고백, 해변에서 케빈과의 관계 이래, 타인과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감독은 두 남자의 그날 밤 성관계 여부를 추축으로 맡긴다. 케빈의 집에서 두 사람은 유별나게 다정한 모습이다. 케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다소 위협적인 블랙, 영화는 종료된다.
모든 연기자는 많은 대사를 가슴에 삼키고 유기적인 심리 연기로 연결된다. 뜻밖의 눈물, 차분한 거품 욕조, 물위에 뜨는 법을 도와주는 모습, 기습 키스, 사랑을 담아 파슬리를 뿌리는 특별 요리 장면 등 디테일도 인상 깊다. 영화의 이미지가 우아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무례이다. 젠킨스는 고통스럽고 추한 일상을 삶의 회복을 도구로 전환시킨다.
배리 젠킨스는 흑인 게이 남성들을 냉정하게 탐색해왔다. 감독의 결론, 결국 샤이론 같은 흑인들은 어떤 형태로건 주정부의 감시 하에 죽거나 살고 있다. 샤이론이 수동적인 모습을 탈피하여 후안을 닮아가는 모습조차 동정심이 일게끔 만든다. 샤이론의 주변 환경은 참혹했지만, 세심하게 영화를 살펴보면 이 세상에는 사랑받는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문라이트』는 감독, 주요 배역과 스탭들 대부분이 흑인이다. 공평하게 분할된 3부작은 직선적 표현을 사용, 닫힌 현실과 싸우고 있는 흑인 게이 남성을 옹호하고 흑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불합리를 들추어낸다. 연출, 연기, 영상, 음악의 두드러진 탁월성을 보이고 있는 『문라이트』에서 감독은 분노의 해결책으로 냉정함을 잃지 않고 진득하게 자신의 논리를 피력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한 메시지 전달은 성공적이다.
제74회 골든그로브 최우수작품상, 제51회 전미비평가협회 4개부분상 수상 등 152개의 경이적인 부문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션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까지 총 8개 부문 후보작으로 지명되어 있다. 흑인과 소수민족 주연의 영화에 인색했던 영화제의 결과에 관심이 쏠려 있다.
장석용/Seokyong Chang(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사진제공: 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