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고 자라난 할리우드 키드…추억과 성장담 고스란히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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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챘겠지만, 이 이야기들 안에는 ‘E.T’ ‘X-파일’ ‘구니스’ ‘캐빈은 열두 살’ ‘스탠 바이 미’ ‘배드 테이스트’까지 영상물의 이미지들이 혼합되어 있다.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E.T’가 떠오르지만 여섯 명의 아이들이 스펙터클한 모험을 한다는 점에서는 ‘구니스’와 더 닮아 있고, 끝까지 몸을 숨기는 외계인에 대한 접근법은 에이브람스 감독이 제작했던 ‘클로버 필드’의 흔적이 엿보인다. 말하자면, ‘슈퍼 에이트’에는 20세기를 영화와 함께 성장한 사람의 추억들이 모조리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슈퍼 에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197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1979년이기에 이제야 사람들은 워크맨을 듣기 시작했고, 8㎜ 카메라로 소중한 추억을 담는 데 열중했다. 2000년대처럼 휴대전화로 소식을 알리거나 전화를 하다 갑자기 동영상을 촬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무전기로 소통하고, 소문은 더디게 전달된다. 그 느린 속도감 가운데 외계인에 대한 목격설과 음모론이 공존할 수 있다. 느리게 바뀌었던 세상에 대한 향수, ‘슈퍼 에이트’에는 이 미국식 복고의 감정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8㎜ 영화에 대한 애착이 가장 눈에 띄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끼리 서로를 구하거나 외계인을 목격하고 도와주는 설정은 이미 스티븐 스필버그가 80년대에 성취한 바라고 할 수 있다. ‘슈퍼 에이트’에서 일궈 낸 독특한 가치라면 그것은 바로 영화에 의해, 영화를 위해 성장한 내추럴 본 할리우드 키드를 그려냈다는 데에 있다.
자신들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소년들의 열정은 장난 수준을 넘어선다. 몰래 무선으로 접선해 철로변 폐가에서 촬영하는 모습은 첫사랑에 미쳐 밤마실을 다니는 청년의 열정과 다를 바 없다. 어설프지만 특수분장과 효과, 조명 등이 분리된 그들만의 스태프 시스템도 그렇다. 영화 촬영 중 마침 열차가 지나간다는 데에 흥분한 아이들이 그 장면을 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사실상 진짜 영화 현장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찍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욕심을 내는 꼬마 감독의 캐릭터에도 감독 놀이 이상의 꿈과 열정이 담겨 있다.
본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상영되는 그들의 작품 ‘사건’은 그래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필름 누아르, 조지 로메로의 좀비물에 대한 절대적 숭앙은 거친 편집과 카메라 워크 사이에 그대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슈퍼 에이트’ 전편에는 대중 영화의 꿈을 키워 주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한 오마주가 자리 잡고 있다. 동화책이 아니라 영상물을 보며 꿈과 희망, 첫사랑을 일궜던 할리우드 키드의 추억과 성장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문자로 이루어진 문화계를 구텐베르그 갤럭시라고 부른다면 달 위를 지나는 자전거의 이미지로 재현된 우주 이미지는 스필버그 갤럭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공포를 아이들의 우정으로 해석해낸 스필버그 갤럭시는 아직껏 유효한 듯싶다. 어쩌면 관객은 3D의 화려한 시각체험이 아니라 감독의 고유한 우주 활용법을 만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J J 에이브람스는 스필버그의 아날로그 갤럭시를 새로운 디지털 기술로 번역해낸 가장 충실한 제자라고 할 수 있다.
영화•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