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주연상 | 엄지원 <소원>
배우보다 극중인물이 앞서 보이는
연기로의 체화(體化)
배 장수 (영화평론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이른바 ‘매직 이프’(Magic If)는 사실주의 연기론의 근간으로 손꼽는다. 어떤 유형의 배우든 극중 인물을 그려내기 위한 연기의 출발~도착점은 매직 이프의 성과에 달려 있다. 배우 엄지원은 영화 <소원>(감독 이준익, 제작 필름모멘텀)에서 '매직 이프'의 현시를 도드라지게 보여줬다.
‘만약에 (내가) 그 인물이라면,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소원>의 아줌마 미희는 미혼의 여배우가 풀어내기에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둘째를 임신한 지 5개월째인 몸으로 등굣길에 성폭행을 당한 아홉 살 난 딸을 온 마음으로 부둥켜 품는 아줌마. 미혼의 여배우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육체적 연기를 통해 자기화와 정당화를 꾀하는 게 쉽지 않은 인물이다. 엄지원이 2년 전에 출연을 고사했던 것도 그에 따른다.
사실 배우는 엄연히 배우일 뿐 오롯이 극중 인물이 될 수 없다. 연기는 배우와 등장인물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연기의 성패는 그 간격을 어느 정도 메우느냐에 달려 있다.
엄지원은 운명처럼 다시 찾아온 미희를 기꺼이 받아들여 최고의 연기로 펼쳐냈다. 미희의 평범한 일상과 참혹한 또 하나의 일상을, 미희의 내적 진실과 외적 형상을 엄지원의 그것으로 진정성 있게 구축해 냈다. 화면 속 미희의 정신적•육체적 존재감을 스크린 바깥의 살아 있는 아줌마로 구현해 냈다.
엄지원은 이를 위해 몸과 마음의 의지와 정서를 불살랐다. 임신 5개월째인 아줌마로 보이도록 체중을 6㎏이나 불리고, 동네에서 조그만 문구•슈퍼를 하는 아낙처럼 펑퍼짐한 치마와 셔츠를 둘렀고, 촬영 당시 분장을 하지 않고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진정성이 배어있는, 연기를 하는 게 보이지 않는, 엄지원보다 미희가 더 보이는 인물로 체화시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함께한 설경구와 아역배우 이레, 그리고 김해숙•김상호•라미란 등의 열연과 이준익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에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