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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실수> 창 루휘조우 감독 - 강유정

강유정(영화평론가)

루휘조우 감독의 <아름다운 실수>는 한 구의 시체와 함께 시작된다. 때는 문화혁명기, 사람들은 욕망이나 욕구도 무엇인가 더 큰 강령에 의해 지배받고 단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성적 욕망은 단죄의 대상이 된다. 재미 중국 작가 하진의 소설에 종종 표현되어 있듯, 생존과 관계없는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이나 욕망은 모두 반동적 행위로 비난받는다.

이런 세상에서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소녀를 훔쳐 보는 것 혹은 과부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나누는 것은 비난과 질타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아버지에게 혼난 아들이 모주석의 사진을 보며 잘못을 비는 이상하고도 도착적 광경은 ??아름다운 실수??가 놓인 시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발단은 영화이다. 소년은 영화를 보고 싶지만 영화 볼 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함께 놀고 싶은 동네 아이들은 영화를 보지 않는 아이는 끼워주지도 않겠다며 어름짱을 놓는다. 아이는 영화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사소하면서도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그 거래는 바로 자신만이 몰래 혼자 들여다보는 작은 구멍 하나를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소년은 장의사 할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그 댓가로 구멍을 내어 준다. 흥미롭게도 그 구멍은 “모택동”이라는 이름의 “동”자에 뚫려 있다. 모택동의 이름 너머로 소년은 소녀의 벗은 몸을 본다. 그리고 할아버지 역시 그 이름의 구멍 너머로 목욕하는 소녀의 몸을 훔쳐 본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윤리적이라 볼 수는 없지만 함부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소년과 장의사 할아버지와의 비밀만 지켜진다면야 성장의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통과의례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개인의 기억과 추억이란 윤리적인 것으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수치스러운 기억일수록 그 오욕은 끈질기게 기억의 뇌수에 자리 잡는다. 문제는 이 개인의 공간이 모택동의 이름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장의사 할아버지가 구멍을 넘보는 장면을 목격한 동네 아주머니는 모주석의 이름으로 그를 단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의 습관대로 노인에게 명패를 걸고 대로에 세워둔 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그런데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심화된다. 아주머니는 노인을 비난했지만 동네 남자들은 처녀 아이를 창녀다루듯 한다. 나도 한 번 소녀의 엉덩이를 봤으면 좋겠다는 남자들의 언어는 그녀를 괴롭힌다. 사건은 명패처럼 그녀를 따라다니고 마침내 첫사랑으로 커가던 청년과의 관계에도 파열을 불러온다. 사람들은 선정적이며 굴욕적인 언어로 그녀를 능멸한다.

흥미로운 사건 중 하나는 노인을 고발했던 아주머니가 당 간부와 혼외정사를 하다가 들켜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동네 골목대장을 하던 그녀의 아들도, 동네의 소문을 주도하던 여자도 이번엔 그들이 비난의 당사자가 되고 만다. 이렇게 욕망이 금지당하던 시절 소년에게는 만화경과 영화, 구멍 너머의 쌍둥이 누나가 환상이자 탈주의 대상이 된다.
욕망을 단속한다는 것은 인간의 꿈을 그리고 문화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답답했던 시절을 그리고 있지만 그 시절에 대한 루휘조우의 시선은 사뭇 냉정하면서도 낭만적이다. 결국, 순결한 영혼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소녀가 세상을 떠난 이 아름다운 실수는 비단 문화혁명기의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든 그 가슴 속엔 비수와 같은 상처로 기억될 “실수”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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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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