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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고산자-장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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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지리학자 고산자의 인생역정
장석용(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강우석 감독은 <고산자, 대동여지도, The Map Against the World>를 포함하여 영화 스물세 편을 연출했다. 고산자는 옛 산의 아들이라는 뜻의 김정호의 호이다. 역사적 인물과 그 업적을 바탕으로 영화화하는 작업은 영화가 역사적 상상력, 계몽적 요소, 교훈적 의미 외에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영화적 묘미, 즉 오락성이 없으면 흥행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구체적 인물이 명시된 상업영화 흥행영화 50위 이내 순위를 살펴보면 2016년 10월 22일 기준; <덕혜옹주>(7위, 5,597,182 관객동원), <동주>(19위, 1,169,335 관객동원), <헤어화>(28위, 485,695 관객동원), 2015년; <사도>(5위, 6,246,849 관객동원), <도리화가>(45위, 317,505 관객동원), 2014년; <명량>(1위,17,613,682 관객동원), 2013년; <관상>(9,134,581 관객동원)이 3위를 차지했다.

김정호(金正浩)의 생애는 불확실하지만 조선 후기인 1804년 출생하여 1866년에 타계로 추정된다. 목판본의 『대동여지도』 22첩(帖)은 1861년에 편찬·간행되었으며, 1864년에 재간한 22첩은 병풍식 전국 지도첩이다. 22첩은 나라 전체를 남북 120리 22층으로 나누고 동서 80리 간격으로 19판(版)으로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권의 책으로 접어서 엮었다.

‘새 세상을 여는 눈’의 역할을 한 ‘대동여지도’는 1첩 한 면의 남북 길이가 약 30㎝이기 때문에 22첩을 모두 연결하면 세로 약 6.6m, 가로 4.0m가 된다. 조선의 산맥과 강줄기 하나까지 그려 넣은 정확성을 갖춘 초대형 조선전도는 휴대성이 높고, 목판 인쇄 방식으로 손쉽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지도가 필요한 백성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9월 7일 개봉하여 손익분기점 320만 명에 훨씬 못 미친 이 영화는 100만 명 정도의 관객으로 종영될 것 같다. 대동여지도의 존재와는 달리 지도학자인 김정호의 구체적인 삶은 역사에 별로 기록되지 않아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박범신과 강우석의 창의력을 빌어 만인을 위한 대동여지도를 완성해낸 김정호의 이야기가 역사상 처음으로 스크린에 그려졌다.

강우석의 초기 연출작들은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1988)을 포함하여 30대 미만의 부부나 청소년들 문제를 문학적 감성으로 다룬 것들이다. 미스터리물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로 크게 방향 전환을 하는가 싶더니 위험 부담이 컸는지 선회, <미스터 맘마>(1992), <투캅스>(1993), <마누라 죽이기>(1994)와 같은 달콤한 영화들을 8년간 만들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그는 공격적 스타일로 <공공의 적>(2002), <실미도>(2003), <공공의 적 2>(2005), <한반도>(2006), <강철중: 공공의 적 1-1>(2008), <이끼>(2010), <공공의 적 2013>(2012), <전설의 주먹>(2013), <두 포졸>(2014)같은 완성도 높은 액션 범죄물을 해마다 생산해 내면서 자신에게도 마초적 본성이 있음을 과시하기에 이르렀다.

스물다섯 편의 영화를 진두지휘한 제작자로서 강우석은 흥행이 아닌 사회 배려물 영화를 생각해낸다. 청각장애 야구부 ‘충주성심학교’ 임시 코치직을 스토리를 다룬 야구 드라마 <글러브>(2011), 지도 장인 고산자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 <고산자, 대동여지도>로 그 동안의 영화흥행에 대한 거룩한 보답을 한 셈이다. 흥행에로 몰입하는 요즈음 감독 세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박범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고산자, 대동여지도>, 지도가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시대의 김정호(차승원)는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두 발로 전국 팔도를 누빈다. 그는 잘못된 지도로 부친의 목숨을 빼앗긴 상처가 있다.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마지막 명작이자 고지도의 대명사인 대동여지도의 완성과 목판 제작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흥행에 관계없이 그의 영화가 요즈음 트렌드에 못 미치고, 영화가 관광엽서 같다는 핀잔을 받았어도 그는 영화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철종, 순조 조인 당시 안동 김씨 문중과 대립각을 세우던 흥선대원군(유준상)은 대동여지도를 손에 넣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다. 양 측의 집요한 지도 쟁탈전에서도 김정호는 지도를 지키고, 백성들에게 조선의 전도를 공개했다.

더 이상 잘못된 지도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일을 없애고자 했던 의인(義人) 김정호는 1834년에 지리지 ‘동여도지’와 전국지도 ‘청구도’를, 1850년대에는 지리지 ‘여도비지’와 지도 ‘동여도’를 편찬했다. 1861년 목판본 ‘대동여지도’를 완성, 1864년 ‘대동여지도’를 교정하여 재 발간했으며 이 외에도 한양지도 ‘수선전도’, 세계지도 ‘여지전도’ 등 다양한 지도를 제작했다.

영화적 허구, 딸 순실(남지현)을 열여섯이 될 때까지 돌보지 못하고 외로운 길을 걸었던 김정호, 실제 그는 공교한 재주에 지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일찍이 ‘지구도’를 제작했고, 능란하게 그림을 그리고 새겨 인쇄해 세상에 펴냈다. 감독은 당시 시대상과 정확한 대동여지도 만드는 데 장인 정신을 발휘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던 김정호의 행적과 정신을 따스하게 묘사한다.

강우석의 첫 번째 사극, 김정호의 여정에 따라 사계절의 변화가 담긴 최남단 마라도부터 철쭉이 만개한 합천 황매산, 강원도 양양, 일몰 아름다운 여수 여자만, 울진 왕피천, 얼어붙은 북한강 그리고 최북단 백두산 천지까지 총 9개월간 106,240km의 대장정에 걸친 조국의 풍광은 관객으로서 보기에 즐거웠고 느린 호흡으로 맛 볼 수 있는 감동이었다.

영화는 김정호의 애민정신 속에 웃음과 해학을 담았다. 영화는 이분법적인 적대관계의 형성을 배제하고 긴장관계의 조성을 피했다. 이 점이 게임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였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의 차승원의 연기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익살스런 이미지와 연결되었고, 힘든 연기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강우석 감독은 느리게 가는 것, 돌아가는 것, 동정을 택한 탓에 수지타산 맞추기에 실패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대목은 목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김정호의 지도에 대한 꿈과 열정이 두드러진 점, 목판 제작을 돕는 조각장이 ‘바우’역의 김인권의 개성 연기와 55인조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조영욱의 섬세하고 웅장한 음악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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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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