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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버드맨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 영화 버드맨 -

 

                                                                             박태식(영화평론)

영화를 보든 연극을 보든 TV 드라마를 보든 우리 눈에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배우들이다. 그들의 얼굴과 몸, 표정과 몸짓, 대사와 감정표현 등등이 작품의 수준을 좌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밀양2006>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이신애(전도연)가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전화를 받는 장면이 있다. 신애는 마침 동네 어머니들과 노래방에 들러 즐기고 오던 길이라 기분이 약간 들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유괴범의 전화를 받고 평온한 상태에서 한순간에 무너진다. 불과 일 분도 안 되는 동안 급작스레 일어나는 극적인 감정변화를 표현하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과연 이런 연기를 유이나 수지처럼, 이른바 요즘 대세라는 여배우들이 소화해낼 수 있을까?

사실 <밀양>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대단했다. 그녀에겐 매우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는데, 먼저 밀양에 들어온 외지인으로서 현지사람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서울 사람 냄새를 좀 풍겨야 하는 세련된 여성상이 있고, 갑작스런 아들의 유괴와 죽음 앞에서 충격과 설움을 표현해야 하는 젊은 어머니, 열성적으로 교회에 다니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골수 기독교인, 유괴범을 만난 후에 찾아온 갈등을 무모하게 드러내는 반쯤 정신이 나간 여인, 그리고 모든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인간 이신애까지. 그렇게 주인공의 연기가 뛰어나면 관객은 영화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영화의 수준을 좌우한다. 거기에 더하여 영화가 묵직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카메라 움직임도 뛰어나고 각본의 짜임새와 감독의 연출까지 뛰어나다면 어떨까? 당연히 평단의 주목을 받고 영화제에서도 큰 상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이제 소개하려는 영화 <버드맨>(Birdman,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극영화/코미디, 미국, 2014, 119)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작품이다. 흥행여부에 상관없이 반드시 한 번 보아야 할 영화라는 뜻이다.

 

버드맨

주인공 리건(마이클 키튼)은 할리우드에서 <버드맨>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을 맡아 한 때 잘 나갔던 배우다. <버드맨>은 슈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아이언맨 등등 초능력 영웅이 활약하는 모험영화의 하나였다. 주인공이 옷만 바꿔 입으면 자유자재로 물건을 이동시킬 수 있고 스스로 공중을 날아 악의 세력을 척결할 수 있으니, 통쾌한 활극의 범주에 속한다. 그렇게 영화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리건은 나이가 들자 더 이상 버드맨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고 할리우드에서도 어느덧 추억의 배우로 분류되는 상황이었다. 심기일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리건은 온 재산과 경력을 털어 넣어 브로드웨이의 연극무대에 도전한다. 물론 자신이 주연과 연출까지 도맡는다. 유명한 극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하나?’가 리건이 택한 작품이다. 연극 개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리건은 혼란에 빠진다. 공연을 앞둔 긴장감도 긴장감이었지만 그의 주변 인물들이 문제였다. 리건의 잔심부름이나 하고 마약에 절어 세상과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한 딸 샘(엠마 톰슨), 훌륭한 연기력을 가졌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성격 때문에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만드는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갑자기 리건의 아이를 가졌다면서 그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 배우 로라(안드레아 라이즈보로), 경력을 쌓으려 최선을 다하는 신인 배우 레슬리(나오미 왓츠), 연극 성공을 위해 불철주야 머리를 짜내는 홍보담당 제이크(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이혼했지만 여전히 리건 주위를 돌며 아내 노릇을 하는 실비아(에이미 라이언), 그리고 글 한 편으로 연극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타임지 평론가 테비타(린제이 던칸) 등등이다.

관객들은 주변 인물들이 실을 리건 자신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들이 구체적인 사건보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니 자아 분열이 올 수밖에! 강박관념, 의식과 무의식, 자기혐오와 자기과시, 과거와 현실을 구별 못하는 착시 현상. 거기에 버드맨의 환청과 환영은 리건을 파멸의 길로 몰아나간다. 주연배우 마이클 키튼에게 주어진 연기 부담의 정도를 이렇게 가늠해볼 수 있다.

 

이냐리투 감독

<버드맨>이 아카데미에서 받은 작품상과 감독상은 감독의 연출력에 주어진 최고의 평가다. 이냐리투 감독은 정말 영화를 잘 만들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이 영화를 보면 쑥- 하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장담한다.

우선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마치 하나의 카메라로 2시간 내내 주인공을 쫓아다니며 영화를 찍은 느낌이 든다. 흔히 롱테이크라 부르는 기법을 변칙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본디 롱테이크란 카메라를 오랫동안 고정시켜놓고 배우들이 앵글 안에서 연기하도록 만드는 게 원칙인데, 그에 대한 역발상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을 한 장면 안에 넣도록 카메라가 쉴 틈 없이 움직인다. 그러니 긴장감이 유지될 수밖에! 이렇게 충격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최근에 본 적이 없다.

다음으로 화려한 대사들을 꼽을 수 있다. 어떻게 이리 기막힌 언어들을 구사할 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영화 속 많은 인물들이 곳곳에서 부딪치는데 그 때마다 고급스러운 언어와 저질 언어를 섞어 가며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다. 의표를 찌르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대사들이 이 영화의 수준을 한껏 높여놓는다.

샘과 마이크와 야외 발코니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자칫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장소에 샘이 앉아있다.

 

난 무대에선 두렵지 않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마이크)

만일 (무대 밖에서도) 두렵지 않다면 저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우선 네 머리에서 눈을 꺼낸 후에...”(마이크)

아이 좋아라!”()

내 머리에 집어넣은 다음 주위를 둘러보겠어. 내가 네 나이 때 그랬던 것처럼”(마이크)

 

세상을 포기한 듯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마이크는 필요한 충고를 한 것이다. 샘의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신도 그 시절로 얼마나 돌아가고 싶은지, 그러니 젊음을 아끼고 가치 있는 일을 해보라고. 비록 대사는 섬뜩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압축된 지혜는 두고두고 되새길만한 것이었다.

영화는 무대 위와 무대 뒤와 극장 밖을 모두 배경장소로 사용한다. 덕분에 우리는 브로드웨이 연극, 아니 나아가 모든 연극의 적나라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리건은 다음 장면까지 잠시 쉬는 동안 무대에서 내려와, 분주한 무대 뒤를 지나 극장 밖에로 나와 담배를 한 대 꺼내 문다. 그 때 우연히 외부로 통하는 문이 닫히고 속옷 차림의 리건은 어쩔 수 없이 크게 거리를 돌아 극장 정문으로 들어간다. 브로드웨이 거리의 군중은 갑자기 나타난 왕년의 버드맨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리건은 객석을 통과해 겨우 무대로 올라간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한 자신의 인생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감독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문제의식도 볼만한 것이었다. 오직 볼거리와 상업성에 치중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선 오래전에 진실이 실종했고 고급스러운 대중문화를 말살한다. 또한 연극계에도 이런 식의 부정적인 경향이 있어 흥행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평론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존심의 사나이 리건이 아부하는 꼴이란! 하기는 평론가들 중에는 지식을 과시하며 대가인 척하는 속물들이 있기는 하다. 영화 초반부에 리건과 언론사가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런 속물 평론가가 등장한다. 또한 현대 소통수단의 첨병인 SNS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영화에서 동시에 드러난다. 그리고 수치심을 모르는 언론의 속성까지 보여주어 <버드맨>은 오늘날 대중예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역할까지 단단히 감당한다. 감독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남우주연상

요즘 젊은 세대는 잘 모르는 일이겠지만 과거에는 영화배우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거의 없었다. 그래서 연극배우들 중에 상당수가 영화에 진출했는데, 젊은 독자들에게는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김승호, 황정순, 주선태, 최남현, 백성희, 김동원, 장민호 등등을 대표적인 배우들로 꼽을 수 있다. 이 분들은 일제 강점기에 극단 신협을 만들어 연극을 시작했고 해방 후 60년대 한국영화 붐이 일어나면서 대거 영화계로 유입되었다. 그만큼 전문 연기자 숫자가 부족했기에 벌어졌던 현상이다. 그 이면에는 생계를 이어나가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만큼 공연예술 분야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화로 자신의 활동영역을 옮긴 연극배우들에게는 연극이 자신의 고향인 까닭에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이른바 회귀본능이 작동한다. 하지만 이미 영화계 속성에 젖어있어 새로운 계기와 용기가 필요하다. 리건은 영화 <버드맨>의 성공으로 벌어들였던 돈을 탕진했고 더 이상 영화계에서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작동했다. 그러나 연극이라고 어디 쉽겠는가? 앞에서 주변 인물들 하나하나가 그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한다고 말한 이유다. 리건의 분열된 주체인 버드맨은 리건의 귀에 대고 언제나 속삭인다. 다시 나에게 돌아오라고, 비록 허구지만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게 최선이라고. 리건은 계속 버드맨의 유혹을 거부했지만 결국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분열의 순간이 찾아온다.

리건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은 실제로 1989년에 만들어진 원조 <배트맨>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인생 역정이 <버드맨>과 같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들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하다. 마이클 키튼이 1951년생이니까 이제 60대 중반이고, 그를 흥행배우로 만든 영화 <비틀쥬스1988>로부터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버드맨>은 그가 아직 펄펄 살아 움직이는 현역임을 알려주는 영화다. 복합적인 상황에 맞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느라 몹시 애를 먹었겠지만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남우주연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영화 <버드맨>이 개봉되고 나서 한국의 언론들을 하나같이 불안한 흥행을 예고했다. 이제까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영화 치고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버드맨>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영화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급 영화들이 판을 치는 우리나라에서 <버드맨>이 성공을 거두는 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진짜 영화다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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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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