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서곡숙] <세 번째 살인> ― 진실과 믿음의 교차로에서 서성이며

12월 14일 개봉
 
1. <세 번째 살인>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문
 
한 마디로 법정영화 전성시대이다. 법정영화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많다.  <JFK>(1991), <어 퓨 굿맨>(1992), <일급살인>(1995), <데드맨 워킹>(1995), <에린 브로코비치>(2000), <부러진 화살>(2011), <변호인>(2013) 등. 최근에도 법정영화 <의뢰인>(2011), <변호인>(2013), <소수의견>(2013), <성난 변호사>(2014), <로렐>(2015), <더 홀 트루스>(2015), <히어로2>(2015), <재심>(2016), <신은 죽지 않았다>(2016), <침묵>(2017) 등이 개봉하였다. 그리고 법정영화는 아니지만 <7번방의 선물>(2013), <암살>(2015), <석조저택 살인사건>(2017). 이런 영화들은 법정영화는 아니지만 후반부에 법정장면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독립된 장르가 아니지만 하위장르의 하나로 재판 과정을 다루는 법정영화가 2010년대에 많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최근에 법정영화 외의 영화에서도 법을 통한 해결 구조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2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일본, 2017)이 어쩌면 이러한 의문을 답을 해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쉘 위 댄스>(1996), <실락원>(1997), <게이샤의 추억>(2005) 등으로 유명한 일본 국민배우 야큐쇼 코지가 살인범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재판에서의 승리만을 추구하는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살인범으로 사형이 확정된 미스미(야큐쇼 코지)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법정영화가 주는 명쾌함보다는 의문을 던져서 관객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수많은 의문이 남는다. 왜 미스미는 두 번의 살인을 한 것인가? 미스미는 두 번의 살인을 했는데 세 번째 살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선량해 보이는 미스미가 연쇄살인자로 설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정영화의 네 축인 피고인, 검사, 변호사, 판사가 이 영화에서 각각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가? 승리지상주의자인 시게모리가 변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두 번째 살인 장면, 유리창과 손의 이미지 등은 어떤 의미인가? 왜 일본 국민배우를 살인자로 설정해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러한 의문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있어서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의문이 풀리거나 아니면 이 글을 읽는 독자라도 이러한 의문을 풀어주기를 바라는 (영화평론가로서는 다소 무책임한) 마음이다.
 
  
 
 
2. 인물의 이중성과 희생물의 세 가지 조건
 
<세 번째 살인>은 미스미의 두 번째 살인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네 개의 사건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엉키고 있다. 첫째, 미스미의 첫 번째 살인 사건으로 미스미가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야쿠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둘째, 미스미가 일하는 공장 사장인 사키에가 딸을 어린 시절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셋째, 공장의 식품 원산지 위조 사건으로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 사키에의 아내가 미스미에게 돈을 주어 입막음을 하고자 한다. 넷째, 이 영화의 핵심 사건으로 미스미가 공장 사장을 살해한 사건이다. 
 
미스미는 첫 번째와 네 번째 사건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두 번째 사건과 세 번째 사건의 구원자 내지는 해결사이다. 반면에 사키에는 네 번째 사건의 희생자이면서 두 번째 사건과 세 번째 사건의 가해자이다. 각각 다른 사건에서 희생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뒤바뀌고 전도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희생자는 이전 사건의 가해자이고, 살인자는 이전 사건 희생자의 구원자가 되고, 증인은 이전 사건의 피해자이고, 희생자의 유족은 이전 사건 가해자의 동조자이다. 이처럼 한 인물이 여러 사건에 걸쳐 가해자, 피해자 등의 여러 역할을 맡게 되면서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중적 면모를 드러내게 되어서 그 인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주요 인물들이 가해자, 희생자, 구원자 등의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는데, 왜 하필이면 미스미만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희생물의 세 가지 조건은 내부자이면서 외부자이고 범죄자이어야 한다. 희생물은 내부 구성원으로 공동체 내부의 위험과 죄를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내부자이어야 하고,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어야 하고, 고립되어 있어서 개인적 원한이나 복수의 위험이 없는 외부자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가해자로 등장하는 공장 사장과 미스미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공장 사장 사키에는 미스미의 두 번째 살인 사건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식품 원산지를 속여 파는 양심불량의 기업인이고 어린 딸을 수년 간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희생자인 공장 사장의 과거 가해자로서의 행적이 밝혀질수록 이런 희생자를 죽인 미스미의 죄가 점점 가벼워지며 그의 죄는 살인이 아니라 처벌의 의미로 바뀌게 된다. 즉 사키에의 죄와 미스미의 죄는 반비례의 관계가 되고 사키에는 희생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에 부합하게 된다. 사키에는 내부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폭력의 위기를 안고 가기에 적합하고, 딸을 성폭행하여 처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원한에 가득한 미망인 아내가 있어 복수의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세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반면에 미스미는 희생물의 세 가지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우선 그는 일본 식품 공장의 직원으로서 공동체 내부에 소속되어 있다. 다음으로 그는 이전에 살인을 저질렀고 출소한 후 또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살인죄로 교도소에서 장기간 복역해서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였고 하나뿐인 딸은 살인자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겨 인연을 끊었다는 점에서 사적인 복수의 위험이 없는 외부자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스미가 인물들 중에서 가장 희생물로 적합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그것을 용납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인들에게 날씨와 안부를 묻는 친절한 태도, 자신과는 아무 원한 관계가 없지만 주민들을 괴롭힌 야쿠자를 살해한 점, 아버지에게 수년 간 성폭행당한 소녀의 살의를 느끼고 대신 소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점, 소녀의 성폭행 증언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여 사형을 당하는 점 등 인간적인 면모를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희생물을 바치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3. 문제해결 구조와 두 개의 세계
 
<세 번째 살인>은 재판 과정은 마치 미스미가 문제를 내면 시게모리가 해결하는 문제해결 구조로 짜여 있다. 첫째, 미스미는 도박자금이 필요해서 금고의 돈을 훔쳤으며 사전에 계획해서 살인을 저질러 사형이 확정된다. 이에 시게모리는 금전보다는 원한이 살인 동기로 더 적합하기 때문에 급여와 해고 문제로 인한 원한 관계로 인한 살인이고 강도는 그 후에 저질렀다는 것으로 감형 받는 전략을 세운다. 둘째, 미스미가 주간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서 살해된 사키에의 부인이 보험금을 노리고 미스미에게 살인을 청탁했다고 말한다. 이에 시게모리는 미스미와 부인을 공동정범으로 설정하고 부인을 주범으로 몰아 감형을 받는다는 전략을 세운다. 셋째, 성폭행을 당한 메구미로 인해 미스미가 살해했고 메구미가 관련 증언을 하기로 약속하지만, 미스미는 자신이 살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원하는 대로 변론을 하지만, 예상대로 진술을 번복하고 반성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패소한다. 승리에 집착하면 의뢰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의뢰인의 의견을 존중하게 되면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게모리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승리에 집착하는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제시하는 어려운 문제를 매번 해결하지만 마지막 문제는 결국 의뢰인 미스미의 의견을 존중하여 해결하지 않는다.
 
<세 번째 살인>에서 재판의 네 축을 맡고 있는 피고인, 검사, 변호사, 판사가 각각 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 혼란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죄를 마주하느냐 피하느냐. 시게모리가 사건의 진실에는 신경쓰지 않고 미스미의 감형에만 신경쓸 때, 미스미의 의견을 존중하여 살인하지 않았다고 변론할 때, “너 같은 변호사가 범인이 죄를 마주하는 걸 피하게 해”라며 검사가 변호사인 시게모리를 비판한다. 
 
둘째, 정상참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30년 전 미스미의 첫 번째 강도살인 재판에서 판사를 맡았던 시게모리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힘든 미스미의 사정을 정상참작하여 온정적 판결을 내렸지만 미스미가 다시 두 번째 강도살인을 저지르자 후회한다. 온정적 판결이 피고인의 과거에 의거하여 현재를 판단하는 것이라면, 재범으로 인해 온정적 판결을 후회하는 것은 피고인의 미래에 의거하여 현재를 판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둘다 현재에서 벗어나 있다. 
 
셋째,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 전반부에서 변호사 시게모리는 미스미 사건에서 사전 계획이 아니라는 증거, 살인청탁·내연관계 여부를 혼동시키는 문자 등이 나오지만 무시한다. 그는 사건의 승리에만 집중하여 사건을 승리에 유리하게 이용하고 사건의 진실이나 의뢰인에 대한 믿음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진실이냐 거짓이냐. 시게모리는 전반부에는 사건의 승리에만 관심을 가지다가, 중반부부터 미스미를 둘러싼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서서히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후반부에 와서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여기에서 진실이란 무엇인가? 시게모리의 상상 속에서 미스미가 메구미를 위해서 살인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에서 바로 살인 동기의 진실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게모리는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가 진행됨에 따라 입장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가장 갈등과 변화가 큰 인물이다. 
 
다섯째, 믿느냐 믿지 않으냐. 시게모리의 진실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미스미는 자신을 믿느냐라는 질문으로 대답한다. 미스미가 진실을 묻는 변호사에게 믿느냐라고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스미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미스미는 자신의 살인 동기로 도박으로 인한 강도살인, 살인청탁으로 인한 살인, 내연관계로 인한 살인, 메구미의 복수를 위한 살인, 살인 무죄 등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번복한다. 
 
하지만 미스미의 행동은 믿을 수 있다. 미스미의 첫 번째 강도살인은 주민을 괴롭히는 야쿠자를 살인한 것이고, 두 번째 강도살인은 딸을 성폭행하는 공장사장을 살인한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번복한 것은 딸을 성폭행하는 남편을 모른척한 메구미 엄마를 벌하고, 메구미를 보호하고, 시게모리의 연민을 멈추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행동은 자신과 교감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해자를 대신 살해하고 처벌도 대신 받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고 믿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어떤 사람의 마음도 담을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담을 수 없는 “텅빈 그릇”이다. 
 
이렇듯 법정영화의 네 축을 담당하는 이들은 각각 다른 욕망과 갈등을 갖고 있다. 피고인, 검사, 변호사, 판사는 각각 승리/패배, 직면/회피, 과거/미래, 진실/거짓, 믿음/불신이라는 자신들의 두 개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재판의 방청객이자 (증언하지 않은) 증인인 메구미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어요”라며 재판의 주체들을 모두 비판한다. 피고인은 거짓을 진술하고, 검사는 죄만 들여다보고, 판사는 사람만 들여다보고, 변호사는 승리에 대한 관심을 갖거나 의뢰인을 존중하는 등의 이유로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4. 교감, 동화, 동일시를 드러내는 미장센
 
<세 번째 살인>에서 유리창, 손, 살인 장면, 눈싸움 장면, 새, 십자가 등의 미장센 혹은 이미지가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반복은 세 종류, 즉 교감과 동화, 현실/상상의 혼재, 은유와 상징의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스타일적 기법은 바로 유리창 오버랩 장면을 통한 교감과 동화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Talk to Her)>(스페인, 2002)의 교도소 면회 장면에서 유리창 오버랩을 통해 베니뇨와 마르코의 교감과 동화를 표현한 바 있다. <세 번째 살인>은 <그녀에게>를 능가하는 풍성한 유리창 오버랩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부에서 교도소 면회실에서의 유리창 장면은 피고인 미스미와 변호사 시게모리 사이의 단절을 표현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미스미의 정면 얼굴, 측면에서 볼 때 유리창으로 양분되는 피고인과 변호인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시게모리를 비롯한 변호사들의 정면 얼굴 등 객관적인 관찰자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의 단절과 거리감을 표현한다. 재판에서의 승리에 집착하는 시게모리에게 미스미는 이미 사형이 확정된 상태에서 뒤늦게 수습해야 하는 귀찮은 의뢰인일 따름이다. 시게모리에게 미스미는 유리창 너머에 있는 존재이고 유리창에 의해 양분되는 존재일 따름이다. 
 
중반부에서 교도소 면회실에서의 유리창 장면은 미스미와 시게모리 사이의 교감을 표현한다. 월세를 빨리 내는 등의 미스미의 행동으로 처음부터 체포될 계획이었음을 눈치챈 시게모리에게 미스미는 월세는 즐거움이라고 답변한다. 그리고는 시게모리에게 손바닥을 마주 대면 체온이 전해진다며 유리창에 손바닥을 갖다대는 미스미를 바스트숏으로 보여준다. 미스미의 말에 당황해하면서 머뭇거리는 시게모리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그러자 미스미는 대화보다 더 좋다며 손바닥을 갖다대는 미스미의 얼굴을 다시 바스트숏으로 보여준 후, 시게모리가 마지못해 손바닥을 갖다대는 장면에서 시게모리의 얼굴 바스트숏(뒤)과 함께 손 클로즈업(앞)이 강조된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손바닥을 마주한 모습을 측면에서 보여준다. 이때 미스미가 시게모리에게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는) 그의 14살 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게모리가 미스미에게 교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유리창 장면은 두 사람의 단절에서 교감으로 나아가는 매체가 된다. 
 
중반부 뒷부분에서 교도소 면회실에서의 유리창 장면은 미스미와 시게모리 사이의 동화를 표현한다. 며칠 전 시게모리가 “인간의지 상관없이 생사가 결정된다”는 말을 동료 변호사에게 했는데, 미스미가 자신의 부모와 아내가 부당하게 죽었다며 “부당하게 생사가 결정되어 죽는다”며 시게모리와 똑같은 말을 해서 시게모리를 놀라게 만든다. 이때부터 유리창에서의 오버랩이 시작된다. 미스미의 얼굴을 중앙에 배치시키고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시게모리의 얼굴이 미스미의 오른쪽에 배치된다. 반대로 시게모리의 얼굴을 중앙에 배치할 때는 왼쪽으로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미스미의 얼굴이 시게모리의 왼쪽에 배치된다. 이전에 유리창을 통해 갈라져 있는 두 사람은 유리창 오버랩을 통해 함께 나란히 있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동화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표현하는 미장센이다. 
 
후반부부터 유리창 장면에서 단절, 교감, 동화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우선, 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린 메구미의 살해 의지를 교감하고 미스미가 사키에를 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게모리가 진실에 대해 묻는다. 이에 미스미가 자신은 살인하지 않았다며 자신을 믿느냐고 질문한다. 다음으로, 시게모리는 메구미에게 증언을 시키지 않으려는 미스미의 의도를 읽고는 의뢰인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지금 부정하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답변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미스미가 자신을 믿는지 안 믿는지를 묻자, 시게모리가 믿는다고 답변하자 미스미가 눈물을 흘린다. 
 
첫 번째는 유리창(=미스미)을 바라보는 시게모리의 측면 얼굴 바스트숏과 마찬가지로 유리창(=시게모리)을 바라보는 미스미의 측면 얼굴 바스트숏을 교대로 보여준다. 두 번째는 시게모리의 뒷머리를 왼쪽으로 배치하고 미스미의 얼굴을 정면 중앙에 배치하고, 다음에는 반대로 미스미의 뒷머리를 오른쪽으로 배치하고 시게모리의 얼굴을 정면 중앙에 배치하는데 미스미가 시게모리의 얼굴 위에 손바닥을 갖다댄다. 세 번째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유리창을 마주보고 손바닥을 갖다대고 있는 두 사람을 측면으로 보여준다. 네 번째는 시게모리의 뒷모습 클로즈업(앞), 유리창에 비친 시게모리의 정면 얼굴 바스트숏(중간), 미스미의 우는 얼굴 바스트숏(뒤)을 한 장면에 담음으로써 인물의 행위와 반응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장면은 미스미와 시게모리 사이에서 단절에서 교감으로, 그리고 교감에서 동화로 나아가는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후반부 결말 부분 마지막 교도소 면회 장면에서는 동일시를 표현한다. 시게모리가 미스미에게 당신이 범행을 부인하여 메구미가 힘든 증언을 하지 않았다고 감동에 겨워 말하며 다가선다. 그러자 미스미는 자신이 단지 살인자일 뿐이라고 차갑고 잔인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에 시게모리가 (다른 사람의 살의를 실천할 뿐인) “텅빈 그릇”이냐고 반문하며 뒤로 물러선다. 
 
처음에는 유리창을 맞대고 앉아 있는 미스미와 시게모리를 측면에서 바스트숏으로 동시에 보여준다. 다음에는 시게모리의 뒷모습을 걸친 미스미의 얼굴 클로즈업을 보여주고, 마찬가지로 미스미의 뒷모습을 걸친 시게모리의 얼굴 클로즈업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유리 너머에 보이는 미스미의 정면 얼굴 클로즈업 위에 유리창에 비치는 시게모리의 얼굴이 완전히 겹쳐진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겹쳐져 있는 두 사람의 얼굴 클로즈업 상태에서 시게모리의 얼굴이 뒤로 물러나면서 두 사람은 해체된다. 이 장면은 시게모리와 미스미 사이의 동화, 동일시, 해체의 과정으로 변하는 모습을 유리창 오버랩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교도소 면회실의 유리창 장면에서의 오버랩과 미장센을 통해 시게모리와 미스미 사이의 관계의 변화, 즉 단절, 교감, 동화, 동일시, 해체로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5. 이미지, 시선, 버즈아이뷰숏을 통한 유대의 표현
 
<세 번째 살인>에서는 유리창 오버랩 장면 외에도 손의 이미지가 시게모리와 미스미 사이의 교감을 표현한다. 이때 손의 이미지는 새(카나리아), 십자가 등의 이미지와 함께 연결된다. 이 영화에서 손은 살인의 손, 구원의 손, 교감의 손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면서, 십자가의 처벌과 희생의 의미와 함께 미스미의 딸과 시게모리의 딸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메구미를 상징하는 카나리아의 상징과 은유와 합해지면서 복합적인 의미를 생성한다. 
 
첫째, 미스미가 사키에를 스패너로 내리쳐 죽일 때의 손은 살인의 손으로 표현된다. 둘째, 교도소에서 화상을 입은 미스미의 손은 희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셋째, 메구미와 모닥불 장면에서 미스미의 손은 유대와 연민을 나타낸다. 넷째, 시게모리가 카나리아에 대해 물을 때 미스미의 불끈 쥔 주먹은 도망친 한 마리의 카나리아(=메구미)에 대한 보호를 나타낸다. 이때 미스미 창문 밑에 있는 새 무덤의 십자가는 사키에를 불태워 만들어진 십자가 자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섯째, 시게모리가 미스미의 딸을 언급할 때 미스미는 자신을 “죽어 마땅한 녀석”이라고 비하할 때 미스미가 주먹을 불끈 쥐자 시게모리도 따라 주먹을 쥐는 장면에서는 교감을 표현한다. 여섯째, (상상의) 카나리아 한 마리를 놓아주는 미스미의 손은 자신이 보호하고 메구미의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카나리아 한 마리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놔준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손으로 카나리아를 날려보내며 (상상 속의) 카나리아가 날아가는 모습을 쳐다보자 시게모리도 따라서 같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쳐다본다. 일곱째, 택시 장면에서 허공 속에서 움직이는 시게모리의 손은 그의 고뇌를 드러낸다. 
 
<세 번째 살인>에서는 반복되는 장면을 통해 미스미, 메구미, 시게모리 사이의 유대를 표현하고 있다. 우선, 살인 장면의 반복은 미스미와 메구미의 유대를 표현한다. 첫 장면에서 스패너로 내려치는 분노에 찬 미스미의 바스트숏, 희생자의 피가 묻은 미스미 얼굴 클로즈업, 희생자를 불태우는 미스미의 익스트림롱숏 장면이 처음에 나온다. 이 장면은 나중에 (시게모리의 상상 속에서) 미스미와 메구미가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미스미와 메구미가 얼굴의 피를 손으로 닦는 장면이 똑같이 반복된다. 결말 부분에서 재판을 마치는 나오는 장면에서 시게모리도 (마치 피라도 묻은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미스미와 메구미처럼) 손으로 닦는다. 다음으로, 눈싸움 장면의 반복은 미스미, 메구미, 시게모리의 유대를 표현한다. 처음에는 미스미와 메구미의 눈싸움 장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다. 나중에 이 장면은 (시게모리의 상상 속에서) 미스미, 메구미, 시게모리가 함께 눈싸움을 하다가 눈 위에 드러눕는 장면으로 재현된다. 
 
이밖에도 <세 번째 살인>은 미장센을 통해서도 미스미, 메구미, 시게모리 사이의 유대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시게모리와 메구미의 대화 장면에서 시선과 미장센을 통해 유대를 표현하고 있다. 시게모리가 미스미와 메구미의 관계를 묻자, 메구미가 고개를 들어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올려다보자 시게모리도 따라 올려다본다. 이때 메구미가 중앙에 배치되고 시게모리를 왼쪽 구석에 배치되어 시게모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메구미를 따라 시게모리가 올려다보면서 시게모리의 얼굴이 비로소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다음으로, 재판 장면에서 메구미와 시게모리의 유대를 표현하고 있다. 시게모리의 앞모습이 오른쪽에 배치되고, 메구미의 머리 뒷모습이 클로즈업으로 중앙에 배치된다. 다음 장면에서 반대로 시게모리의 뒷모습이 왼쪽 구석에 배치되고 메구미의 얼굴 클로즈업이 중앙에 배치된다. 행위숏과 반응숏 모두 메구미가 중앙에 배치됨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유대에서 메구미의 존재가 점점 커져감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판 장면에서는 메구미, 미스미, 시게모리의 유대를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 메구미의 클로즈업을 보여주다가, 다음에 메구미의 뒷모습 클로즈업(앞), 미스미의 얼굴 바스트숏(중간), 시게모리의 모습 롱숏(뒤)을 한 장면에 담아낸다. 반대로, 검사와 사무장이 귓속말을 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손과 귀가 화면의 위쪽과 중앙을 차지하고 아래에 있는 작은 여백의 공간에 시게모리의 얼굴이 배치되어 소외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미장센에서 반복되는 이미지의 점층법을 통해 현실과 상상의 혼재 속에서 미스미, 메구미, 시게모리의 유대를 표현하고 있다. 전반부에는 미스미와 메구미의 유대를 표현하고, 중반부에는 시게모리와 메구미의 유대를 표현하고, 후반부에는 미스미, 메구미, 시게모리의 유대를 표현하는 등 유대감의 확산을 점층법을 보여주고 있다. 메구미는 다리가 불편하고 아버지 사키에에게 수년간 성폭행을 당해 아버지에게 살의를 느낀 인물이다. 이런 메구미는 루모이에 살고 있으면서 살인자 아버지가 부끄러워 인연을 끊은 다리가 불편한 미스미의 딸 메구미와 연결된다. 또한 메구미는 별거 가정에서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도둑질 등 범죄를 저질러 아버지를 불러내는 시게모리의 딸 유카와 연결된다. 메구미는 미스미의 딸이자 시게모리의 딸로 은유된다. 
 
<세 번째 살인>은 시선을 통해서도 미스미, 메구미, 시게모리의 관계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시게모리의 객관적이고 관찰자적 시선으로 멀리 떨여져서 미스미를 쳐다본다. 다음에는 메구미가 나뭇잎을 올려다볼 때와 미스미가 (상상의) 카나리아를 놓아줄 때 그 시선을 시게모리도 따라간다. 마지막으로 시게모리는 주관적이고 동화된 시선으로 미스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마주본다. 그래서 이런 시선은 단절, 교감, 동화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세 번째 살인>에서 버즈아이뷰숏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게모리가 살인 현장에서 불탄 십자가 자국을 보는 장면에서의 버즈아이뷰숏은 객관적 관찰자 시점을 보여주는 반면에, 시게모리가 미스미, 메구미와 눈 위에 드러누워 있는 장면의 버즈아이뷰숏은 세 사람 사이의 교감과 유대를 표현한다. 재판 장면에서 내려다보는 버즈아이뷰숏은 전지전능한 시선을 표현하는 반면, 마지막 장면에 주택가 골목 교차로에 서성이는 시게모리를 내려다보는 버즈아이뷰숏은 고뇌하고 방황하는 존재의 나약함을 표현하고 있다. 
 
  
 
  
 
  
 
  
 
 
6. <세 번째 살인>의 이중독해와 법정영화의 대중성
 
<세 번째 살인>은 진실과 믿음의 교차로에서 서성이는 시게모리를 보여주는 열린 결말로 끝을 낸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의 몫으로 남겨 놓아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이다. 미스미의 두 번의 강도살인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사형수 미스미에게 행해지는 세 번째 살인에 대해 “누가 심판하는가?”라는 메구미의 말로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일본 국민 배우 야큐쇼 코지를 살인자로 캐스팅해서 이러한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우리는 그를 보면서 이전 영화들에서의 그의 선량하고도 진중한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그가 살인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가 살인범이라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출발하지만, 계속해서 그가 살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 혹은 그가 살인을 했더라도 피치못할 (인간적인)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영화를 보게 됨으로써 저절로 이중적 독해가 행해진다. 
 
2010년대 들어서 법정영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들에서 원한에 찬 인물이 살인자를 죽이려고 할 때, 살인자를 개인적인 복수로 처리하지 말고 공적인 법의 심판에 맡기자는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사적인 폭력은 원한으로 계속되는 복수의 위험이 있는 반면에, 공적인 폭력은 만장일치적 합의로 행해져 원한을 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위험이 없다. 한편 법정영화에서 법으로 죄를 심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법이라는 공적이고 합의가 도출된 폭력이 아니라 사적 복수나 원한에 의거한 살인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경각심과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묻지마 살인과 무차별 테러 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의 반영이 아닐까? 살인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스릴러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층을 끌어들이고, 법정에서의 검사, 변호사, 판사 간의 논리 공방을 좋아하는 지적인 관객층을 유입한다는 점에서 장르혼합적인 법정영화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듯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세 번째 살인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4,052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