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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일 감독의 <콘돌은 날아간다> : 김시무(영화평론가)

전수일 감독의 <콘돌은 날아간다> :

어느 지방 사제(司祭)의 일탈

전수일 감독의 야심작 <콘돌은 날아간다>(El Condor Pasa, 2012)는 한 사제(司祭)의 성적 욕망과 일탈, 그리고 그로인한 파탄(破綻)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인 작품이다. 미리 전제하지만 이 영화는 구원과 용서를 다룬 상투적인 종교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파격적 노출을 내세운 선정(煽情)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박신부(조재현)는 매일 성당에 나와서 허드렛일을 돕는 여중생 연미(유연미)를 마치 친딸처럼 보살펴 준다. 연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여행가이드로 일하는 언니가 집을 비우는 경우가 잦아서 성당을 집처럼, 신부님을 보호자처럼 따른다. 박신부는 그런 연미에게 언제부터인가 성경책을 베끼는 작업을 맡기고 있는데, 이유인즉 하나님을 위해 선을 행하고 잡생각을 없애는데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연미는 방과 후 성당에 들러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정성스레 노트에 옮겨 적는 것이 숙제처럼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신부는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성당을 비우게 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성경책을 베끼고 귀가하던 연미가 괴한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에 따르면, 성폭행을 당하는 도중 질식사했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이제부터 본격화될 파격적인 이야기의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미의 언니 수현(배정화)이 미사중인 성당으로 찾아와서 박신부를 책망하는 장면에서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박신부도 역시 용의선상에 오르고, 그를 바라보는 성도들의 시선도 예전 같지가 않다. 자신의 장기간 부재중에 발생한 동생의 변고(變故)에 수현은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식음을 전폐하고 아예 씻는 행위조차 거부한다. 이를테면 언니는 목욕을 위해 샤워기를 틀어 놓은 채 깊은 상심에 빠지는데, 이 대목에서 감독은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헤어노출을 과감하게 시도한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전개될 파격적 장면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예고편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러한 적나라(赤裸裸)한 육체의 노출이 갖는 당위론적 타당성이 있느냐하는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극적 맥락에서 볼 때 과연 꼭 필요한 장면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선정성 여부를 떠나서 이 영화의 존재의미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더 해보자.

 

 

한편 자신의 외출 중에 연미를 잃었다는 자책감에 박신부도 역시 마음이 편치 못하다. 영화에서 보게 되겠지만, 수현의 죄책(罪責)과 박신부의 자책(自責)이 맞물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박신부가 평소 연미를 끔찍이 아꼈다는 확신을 가진 수현은 박신부와 함께 동생의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새때들의 서식지인 을숙도에서 유골을 뿌린 두 사람은 그날 밤 여관방에서 마치 의례(儀禮)를 치르듯이 성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육체적 탐닉은 무려 3일 동안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전수일 감독이 섹스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기존의 한국영화에서는 헤어노출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 배우들의 상반신 위주로 앵글을 잡거나 하반신을 찍을 때도 사타구니 부분을 최대한 피하면서 카메라를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훑어나가는 방식으로 처리하여 짧게 편집을 함으로써 성애장면의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켰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야릇한 성적 판타지를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 전수일 감독은 정공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두 배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한 몸이 되는 과정을 카메라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카메라는 고정된 하나의 위치에서 정사장면 전체를 롱쇼트(long-shot)와 긴 테이크(lengthy take)로 포착하고 있음으로 해서 관객이 숨을 공간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와 똑같은 위치에서 두 사람의 정사장면을 장시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결코 편치가 않은 것이다. 요컨대 전수일 감독은 카메라의 위치변동을 통한 공간의 분할(分割)과 그로인한 봉합(縫合)을 의도적으로 배재함으로써 관객이 은밀하게 섹스장면을 훔쳐볼 때 생기는 관음증적 쾌락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적 판타지가 생길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의식은 어떤가? 이 영화에서 사실 중요한 것은 박신부가 연미를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냐는 것이다. 박신부가 주님의 목자(牧者)로서 어린 양 연미를 진심으로 보살피려고 했던 것인가? 아니면, 성경책 필사를 핑계로 이른바 영계(어린 소녀)를 자신 곁에 붙잡아 두려 했던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도입부 곳곳에서 후자 쪽의 혐의를 읽어낼 수 있다. 예컨대 박신부는 연미와 사진을 찍는다면서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양손으로 감싸 안는 포즈를 취하는데, 이는 엄밀하게 보자면, 직장 내 상사에 의한 성추행의 행태와 유사한 것이다. 또한 박신부는 불우한 이웃 혹은 아프리카 난민에게 보내는 헌옷 정리 장면에서 하고많은 옷가지들 중에서 유독 핑크(PINK)라는 로고가 선명한 핑크색 반바지를 그녀에게 골라 주는데, 이는 모종의 흑심을 나타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감독의 전작 중 하나가 <핑크>(2011)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터이다.

어쨌든 박신부에게 연미는 그냥 성당을 찾아온 어린 양이 아니라 독신(獨身)을 서약하고 독신(篤信)을 지켜야할 사제에게 시험으로 주어진 ‘욕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미는 박신부에게 일종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다만 성직자의 윤리 때문에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박신부가 그토록 아끼던 연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 물론 박신부는 아니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후에 그는 연미의 대체물인 수현을 육체적으로 범함으로써 결국 독신(瀆神)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는 수현의 유혹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라캉처럼 말하면, 박신부는 연미와의 상징적 관계에서 벗어나 수현이라는 실재와 대면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오는데, 그는 다름 아닌 성당에서 보조로 일하는 도마라는 학생이었다. 도마는 평소 박신부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자신이 좋아했던 여학생이 바로 연미였기 때문이다. 도마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자신이 한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를 생각하면서 매일 자위행위를 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사실 이는 돌이켜 보면, 고해라기보다는 박신부에 대한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연미는 두 사람 모두에게 욕망의 대상이었으니까 말이다. 유치장을 찾은 박신부는 분노를 억누르고 도마에게 용서한다고 말하지만, 도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박신부의 손아귀에서 연미를 구해내려다 생긴 우발적 살인이었다는 그의 실토는 박신부는 물론이고 수현에게도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결국 용서를 구해야할 사람은 도마가 아니라 자신임을 깨달은 박신부는 독신(獨愼)을 위해 페루(Peru)로 떠난다. 쿠스코 대성당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과연 박신부는 이곳에서 속죄(贖罪)함을 받을 수 있을까? 연미가 살해를 당한 골목과 흡사한 그곳의 한 뒷골목에서 박신부가 마주친 인형을 파는 소녀의 시선은 불길하기만 하다.

 

 

영화의 제목인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는 유명한 페루의 민요로 나중에 사이먼과 가펑클(Simon & Garfunkel)에 의해 영어버전으로 불림으로써 세계인의 애창곡이 됐다. 영혼(靈魂)이 콘도르가 되어 안데스 산맥 너머 창공으로 비상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 극의 주제의식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고 여겨진다. 유채꽃을 닮은 노란색 꽃들이 만발한 페루의 한 산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에필로그는 전작들에서 특정한 지역성(locality)에 관심을 가져온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이를테면 전작인 <영도다리>(I Came from Busan, 2009)에서는 부산의 명물인 영도다리를 주된 배경으로 삼아서 그 지역에 사는 한 미혼모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이번 영화 <콘돌은 날아간다>도 역시 전작과 모종의 연관성을 맺고 있다. 국제여객선 선착장에서 근무 중이던 수현이 멀리 있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면서 깊은 회한(悔恨)에 휩싸이는데, 비록 감독은 깊이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이 장면도 역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영화의 주인공을 맡아 열연한 배우들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자. 그 동안 악역 전문배우로 이미지를 굳혀왔던 조재현은 이번 작품에서는 사제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지만, 내적으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일탈에 빠져드는 비운의 신부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는 바로 수현 역을 맡은 배정화다. 동생을 잃고 상실의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신부와의 정사를 통해서 자신을 처벌(處罰) 혹은 구원(救援)하게 되는 수현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배정화는 촬영기간 내내 침통한 감정을 유지해야했고, 나아가 체중감량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날씬했던 체형이 더욱 가냘 퍼지고 얼굴마저 핼쑥해지면서 식음을 전폐한 유족(遺族)의 모습을 리얼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촬영이 끝나고 반년 정도가 지나서야 극중 캐릭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몰입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신 노출의 정사장면에서도 그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대선배를 리드해 나간다. 연기란 바로 이런 것임을 그녀는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모텔 벽면에 걸려 있었던 대형 액자 속 그림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의 복제품인데, 배정화의 나신(裸身)과 비너스의 그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전체의 장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독은 그러한 미장센을 통해서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의도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새로운 여배우의 탄생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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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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