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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준 감독의 『왕초와 용가리, Hide Behind the Sun, 80분』

이창준 감독의 왕초와 용가리, Hide Behind the Sun, 80

다름과 차이를 명제로 한 뒷골목 담론

 

영화 제목 자체는 만화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그런 일시적 환상을 깨고 사회학 담론의 깊숙한 부분을 서서히 파고든다. 거친 입담, 낯 선 행동, 비정상적 삶 등 모든 것이 비뚤어진 품행 제로의 양태들이 문명사회의 한켠에서 벌어지고 있다. 조금만 나가면 고층빌딩 숲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지만 계절과 예의를 잊은 듯한 그들의 복장과 움직임은 울분의 극단이다.

 

이창준의 안동네를 보는 시선, “안동네는 마치 낡은 포구의 선술집 같다. 허망한 바다를 돌고 돌아, 부서질 듯한 쪽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연민의 술 단지를 찬양하는. 나는 내 영화가 그 선술집의 철거 과정을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차분하게 울분을 토로하는 안동네 사람들에게 술 사발을 들이 밀 듯,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들이 되어가며 삼 년을 같이했다.

 

이창준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타임스퀘어의 위용을 넘어 영등포 뒷골목의 후미진 쪽방촌 안동네를 정조준 한다. 지린내 풍기는 골목에는 무질서가 정상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안에 왕초 상현(46)과 험악한 인상과 판이한 순진무구의 용가리 정선(42)이 살고 있다. 세상에 절여지고, 절대 고독을 넘어 그들이 정착한 곳이다. 그들에게 이 곳은 마음의 고향이다.

 

정제된 카메라는 거침을 잠재우고,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대입항으로 설정하고 냉정하게 중립을 유지한다. 일상의 대화는 열정 같은 욕이다. 대화에서 욕이 빠지면 구성원이 못 될 정도로 욕은 일상화 되어있다. 반복되는 상현의 아침 거리청소는 자신을 다스리는 예불 같은 엄숙한 시간이다. 이 영화는 문명의 치부를 들춰 보이면서 진솔한 희망을 이야기 한다.

 

일당의 삶, 일회용품 같은 체념이 일상화된 사람들, 만화적 캐릭터들을 따라 가다보면 생기는 궁금증,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아들과 아빠, 소중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사연을 잠재우고 밤이슬처럼 스며든 그들에게 영등포역 6번 출구, 고가다리 밑 쪽방촌1.2평 남짓의 작은방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기막힌 현실은 TV속의 느낌과는 판이하다.

 

사실감을 얻기 위해 영화 왕초와 용가리팀은 총 541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시내 5대 쪽방촌의 하나인 영등포 쪽방촌에서 약 3년여의 제작기간을 투자했다. 동네 사람들은 불문율로 규칙과 약속을 지키며 질서를 유지하고 있음이 파악되었다. 나름대로 추억과 낭만, 그 때 그 시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자본과 계급제도가 심화되지 않았던 서민들의 풍경이다.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핵심 등장인물들에 대한 언급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상현; 스무 살에 부산에서 상경해 역 주변에서 노점, 일용직 잡부, 트럭 기사 등의 일을 하는 안동네 생활 20년차 이다. 이혼 후 고향의 노모에게 맡겨둔 여덟 살짜리 아들과의 재결합을 꿈꾸고 있다. 정선; 열여섯에 광주에서 상경, 조폭 생활을 청산한 뒤 줄곧 영등포 인근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지냈다. 못생긴 샤페이 견()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게 꿈이다.

 

복수(62); 안동네 40년 거주의 흥부자, 안동네 사람들의 아버지이자 터줏대감이라 불리며, 사연을 실은 그의 노래 가락은 한 잔의 술과 음악만 있으면 가능하다. 안동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신적 지주이다. 진태(47); 영등포의 한 NGO에 취직한 후, 이미지를 변신하며 시선을 끄는 반전 캐릭터이다. 맡은 일은 뭐든 척척 해내는 만능 브레인으로써, 막다른 길목에서 한줄기 희망을 확인한 긍정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탄생을 가능케 한 3, 장편 다큐멘터리 데뷔작을 선보인 이창준 감독; 1998년 데뷔해 KBS 수요기획 김중만의 사진, 세상을 향해 외치다등 다수의 방송 다큐멘터리를 연출, EBS 방송대상 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해왔다. 김정훈 독립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SBS 스페셜 스키점프 국가대표 하늘을 나는 꿈등을 연출한 독립 다큐 PD이다. 한경수 독립 다큐 PD; 춘희막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실력을 인정받은 노련한 제작자이다.

 

이창준은 공동체나 집단의 운명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갈등과 타협, 때론 협잡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란 것에 적응 못하는 평생 철들 줄 모르는 들에 관심이 있다. 그는 절묘한 고립무원의 아이러니의 공간, 가식적 종교단체와 봉사단체들의 의도된 선행을 지켜보며 적지에 홀로 남겨진 게릴라처럼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성찰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놀라운 원시적 생명력’, 감독은 복수를 인생의 어떤 시점들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설정한다. 용가리는 철없고 객기로 충만했던 의 청춘, 왕초는 끝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지금의 ’, 복수는 모든 욕망과 노력의 허망함을 깨닫고 만인 만물과 화해할 수 있는 ’. 정선을 젊은 날의 아련한 순정으로 바라본다.

 

안동네의 우울을 아는지 황명수의 음악은 품격을 지닌다. 화창한 봄 날, 상현과 그의 아내 미진의 여의도 벚꽃 구경을 끝으로 영화는 종료된다. 허물어질 운명의 안동네, 감독의 상상, “상현은 철거 딱지를 손에 쥐었고, 복수는 망가진 기타를 튕기며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이 우리를 얼마나 현혹하는가?” 이것이 영화에서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이다.

 

장석용(영화평론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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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장석용

등록일201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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