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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합평회

씨네톡 <하이힐>참석자: 박태식, 정재형, 민병선, 이대연, 성진수, 윤성은, 이수향

씨네톡 <하이힐>

 

민병선: 하이힐을 보면서 아, 이 난해함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그 생각은…….

 

이대연: 난해한 건가요? 난감한 건가요?(웃음)

 

민병선: 그러니까 이런 소재와 이런 이야기를 시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높은 박수를.. 이게 아마 오래 생각했을 거 같아요. 이게. 지금이니까 제작이 가능할 거기 때문에 들어갔지. 제가 보기엔 옛날부터 좀 이런 류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구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경주같은 건 대중적인 요소를 좀 배제할 수도……, 극화시키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장진 감독은 그럴 순 없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대중적으로 갈 거냐에 대한 고민과 어떤 지점. 그리고 영화가 혼자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상업적 요소를 끌어오다 보니까 제가 보기에 이렇게., 괴상한 영화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구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장진 감독은 연극계의 스티븐 스필버그잖아요. 연극계에서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는 분인데, 영화 대본이 나와도 보통 굉장히 대본이 재밌고 잘 쓴다라는 말을 엄청나게 많이 듣는 사람이거든요. 대본을 너무 재밌게 잘 쓴다. 그런데 영화만 나오면 흥행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장진 감독이 이번 하이힐도 아마 설정적으로는 이런 조폭과 맞서 싸우는 거친 형사가 내면에 여성이 있다라고 하는 데는 아마 투자자가 아, 되게 재밌겠다. 많은 재밌는 에피소드 요소가 있겠다라고 생각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아까 말했듯이 상업적 요소가 들어오면서 영화의 진정성이 도대체 뭐냐, 뭘 얘기하려고 했던 거냐에 대해서 (감독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게 문제가 됐던 거 같은데, 정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 꼴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성성이 들어가는 부분을 깊게 들어가야 된다고 보거든요. 깊게 들어갔어야 했는데 감독이 깊게 못 들어가니까 그 나머지를 뭐 조폭으로 채워버리는 거죠. 조폭 형사 이야기로 채우고 결국은 그 이야기로 가버리니까 그 마지막 엔딩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정말 잘 만들 수 있는, 수작이 될 수 있는 좋은 에필로그라고도 생각 되거든요. 결국은 이러이러해서 그 여성이 될 수 없는 한 남자의. 감추고 살아야하는 남자의 그런…… 그 지점은 참 좋은데, 그걸 왜 조폭이야기로 이렇게 돌리고 돌렸는지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조폭 이야기만 좀 뺐으면, 혹은 형사가 아니라 차라리 그냥 아예 조폭이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여튼 뭐 그랬던 거 같아요. 아쉬웠던 영화인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엔. 또 대중적인 부분도 얻지 못하고. 그런데 아마 그…… 젠더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갔을 때 소년들의 사랑이야기도……, 그건 동성애가 아닌가요?(웃음) 그러니까 트랜스젠더의 여성적 욕망은, 사랑할 수야 있죠. 그런데 사랑하는데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도, 스스로 갖고 있는 여성성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잖아요. 그게 결국 군대 가서도 고민하고 커서도 고민하고.. 계속 고민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니라 남남 간의 사랑으로 타깃을 잡아버리니까 논점이 흔들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성애인가 트렌스젠더인가? 이런 식으로.

옛날 연극 할 때 트렌스젠더 공연장에서 같이 있어봤는데 홍대 같은 데에서도 트렌스젠더들 새벽에 많이 지나다니면 항상 묻는 말이 싸움 붙으면 여자처럼 싸울까, 남자처럼 싸울까? 여성처럼 하고 있지만 만약에 나랑 어깨가 부딪혔어. 그래서 싸움이 났는데 남자처럼 싸울까, 여자처럼 싸울까? 그런데 저는 이 사람이 정말 트렌스젠더라면 여성처럼 싸워야한다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남자처럼 싸우는 사람들은, 제가 볼 땐 복장도착자거든요. 그런데 차승원은 저렇게 조폭 수십 명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게 영화적 장치로 가능하지 현실적으로 과연 이게…… 그러니까 진정성에 문제가 생긴다라고 봤어요.

 

박태식: 싸움을 걸어보세요.(웃음)

 

 

 

민병선: 제가 이태원에서 일 할 때 이쪽에 관심이 있어서 가봤어요. 그런데 저런 분들만 나오는 거야. 영화 속에서 차승원이 따귀 때리는 우락부락한 트렌스젠더 있잖아요. 더 남자 같은.(웃음) 진짜 이태원 젠더바에 다 그러신 분들만 있는 거예요. 너무 무섭더라고. 어떻게 얘기를 못해봤어요. 그래서 술만 먹다가 나왔어요. 그래서 좀 이 영화가 이런 쪽으로 깊게 들어가야 하지 않나-그 분들 내면에…… 결혼을 했지만 오피스텔을 구해가지고 거기에다 여자 옷을 다 놓거든요. 그래서 이태원에 그들이 만나는 디데이가 있어요. 그래서 그 날 새벽에 나가면 이런 분들이 막 옷 입고 나오거든요. 그게 너무 신기해가지고 몇 번 구경했는데. 조금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수향: 저는 약간 생각이 좀 다른데, 저는 괜찮게 봤어요, 이 영화를. 확실히 저도 민선생님 말씀에 동의하는 것은-영화가 굉장히 적당히 융합을 한 영화인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극단적으로 불편할 정도의 트랜스젠더를 들고 있진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보려고 했을 때는 차승원이 트랜스젠더 복장을 한 것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좀 거부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막상 가서 영화를 보니까 그런 부분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진 않았구나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다지 거부감이 많이 생기지도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하나는 느와르적인, 한국형 느와르적인 장점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나온 <우는 남자>라는 영화랑 비교해 볼 수 있을 텐데, 우는 남자라는 영화가 저는 굉장히 잘 못 만든 영화라 생각.. 잘 못 만든 영화라 생각하는데 그거랑 비교해 봤을 때 이 작품은 굉장히 수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는 남자>는 제목에서부터 우는 남자고 굉장히 킬러 본인이 갖고 있는 고뇌나 그가 우는 남자일 수밖에 없는 그런 걸 강조하려고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굉장히 무슨 살짝 얹는 식으로 해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굉장히 개연성이 떨어지면서 저 사람이 왜 저렇게 까지 하느냐가 잘 설명이 안되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자면 이 사람도 분명히 그런 분노와 그런 공격성과 그런 하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내적인 동기가 있다라고 본다는 점에서 저는 괜찮게 봤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형 느와르적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미국영화라면 총을 막 난사하겠죠. 그런데 그런 장면 보다는 그 현장에 있는 걸로 싸우잖아요. 우산이면 우산. 꽃게다리면 꽃게다리. 재떨이, 젓가락 이런 걸 무차별적으로 이용해서 치는 차승원을 보면서 굉장히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싸우려면 저렇게 싸워야지 웨스턴으로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총으로 쏘는 것도 사실 되게 우리나라 상황답지 않은데 우는 남자는 굉장히 총을 많이 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한국형 느와르적인 장점 더하기 장진 특유의 개그 코드가 있어요. 그 코드가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가 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이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지점을 조금씩 줄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장진의 개그코드가 저랑 잘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사실 많이 웃었어요. 그 특유의. 가령 부하들을 막 때리면서 송영창이 하지 말라니까! 쟤 총 안쏜다니까! 하면서 때리는 장면이라든가, 그 다음에 금고를 형한테 내가 사줬는데 베란다에 내놓는 인간이 어디 있냐, 그리고 저렇게 했더니 금고에 안 넣어놨었다고……. 이런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방 치우라고, 차승원 집에 침입해가지고 이것저것 막 뒤진 후에 부하들한테 방 좀 깨끗이 정리해주라 하니까 걔네도 얌전히 앉아가지고 요구르트 같은 거 마셔가면서 방 하나씩 정리하잖아요. 그런 장면들이 전 굉장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만약 퀴어적인 코드가 없었다면 정말 그렇고 그런 느와르적인 영화와 똑같았을 것 같은데 퀴어적인 코드가 있어서 굉장히 특이한 영화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퀴어적인 요소를 왜 넣냐고 생각해 봤을 때는 그 인물의 심리에 대한 핍진성 그 하나때문인 것 같아요. 저렇게 슬프고 외롭고 고독하고 세상에 친구하나 없을 것 같은 그런 남자를 그리려면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 하나 죽고…… 이정도로는 해결 안 되지 않았을까. 정말 자신의 본모습을 남한테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그리고자 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 퀴어적인 요소는 두 명으로 얘기가 되는데, 첫 번째는 차승원이죠. 차승원은 아까 민선생님 얘기하시는데 동의합니다. 고등학교 때의 남자 친구랑 좋아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사실 이걸 동성애적 코드로 보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드는 게, 그러니까 결국 알게 됐죠. 자기를 여자라고 생각을 한다는 걸. 그러면 여자로서 남자를 좋아한 것이기 때문에 그걸 동성애 코드로 몰고가면 조금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구요.,자기 자체, 자아 정체성을 찾는 사람인데-자기는 정말 사랑을 하고 싶은 여자인 거예요. 사랑을 하고 싶은 여자라는 자기의 정체성. 그리고 그게 결국에는 지금 이렇게 나이가 들도록 해결되지 못했죠. 또 하나는 자기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도달되지 못하고 그 선배가 죽어버렸죠. 그런 상황. 이런 상황이 그 고등학교때는 징그러 우리 병에 걸린 거야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그렇게 넘어갔지만 그게 그정도로 끝나지 못하고 자기 정체성이 해결되지 못하니까 이렇게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있으면서도 굉장히 고통을, 끊임없이 남겨진자의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이 자신의 괴로움을 굉장히 육체를 소진해 가면서 밖에 해결하지 못하는. 나중에 그 트랜스젠더 되려고 교회에서 만난 선배하고-너도 해방됐냐. 나도 해방됐다. 뭐 이런 얘기 하잖아요. 그 여자가 설명해주죠. 너는 네 안에 있는-그 년이라고 표현하죠-그 여자를 죽이기 위해서 계속 더 남성다운 삶으로 갔지. 하지만 결국 해결되지 못했잖아. 라고 얘기를 하는 그 장면이 저는 되게 인상적이었었는데, 결국 그 퀴어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차승원의 삶은 실패로 끝나죠. 마지막 결론을 보면. 그것이 상징하는 게 놓여진 하이 힐이라든가 티켓이라든가. 여전히 들고 있는 새끼손가락이라든가, 이런 걸로 정리가 된다고 봅니다. 또 하나의 퀴어적인 요소로 오정세가 등장을 하는 데 저는 이것도 약간 오해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오정세가 게이같은, 그런 어떤 남성을 좋아하는-여기서 허씨 두 회장 중에서 동생. 허곤 역할을 맡은 오정세가 계속 차승원에 대해서 내가 그 사람을 좀 좋아해. 이런 식의 표현을 하죠.  하지만 결국 그 뒤에 붙는 말이 뭐냐면, 왜냐하면 그는 진짜 사내니까. 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산을 쓰고 발차기를 하는 그 모습에 정말 큰 인상을 받았다 하면서 장난스럽게 흉내고 내고 이렇게 하는데, 오정세라는 인물은 지우개 아이러니를 가장 잘 드러내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지우고 버리고 싶어하는 남성성을 동경하는 거죠. 그리고 남성성을 동경하는 대상이, 그것을 자기 스스로 거부하고 잃어버리려고 하는게 거기서 분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정이 애정을... 변모하는 것처럼 그렇게 변모하고 특히 그에게 나 말동무나 되려고 찾아왔어, 하고 얘기하고 자기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자기한테 어느 정도 힘을 싫어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약간 배신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폭발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정세의 목적은 이루어진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에 결국 윤지욱을 다시 찾아오게 해서 윤지욱의 손에 의해서 죽잖아요, 그 남성성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그래서 부하가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죽은 본인을 놓고-아잉고, 우리 회장님 가셨네. 막 얘기하면서, 진짜 남자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진짜 동경했던 측면에서 오정세는 이루어 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굉장히 느와르적인 특징이 있어서, 그래서 민선생님 얘기하시는 대로, 차라리 조폭으로 차승원을 그리면 어땠을까 하셨는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다른 게, 차승원이 가진 나쁘지 않게. 긍정적인 그 남성성의 폭발이 가능하려면, 그게 만약에 조폭이면 정말 폭발해서 나쁜 인간이 되는 거잖아요, 사람 막 죽이는 사람 되니까. 그나마 정의 편에서는 형사니까 그 사람의 고통이 그나마 수긍 할만한 그런 것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사실 이 차승원의 연기를 굉장히 좋게 봤구요. 특히 교회 신에서 선배의 트렌스젠더 얘기하면서 눈에 눈물 고이는 장면이라든가…… 이런게 과장되지 않아서 저는 좋게 본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대연: 저는, 아까도 말씀들 하셨지만, 저는 난감했는데, 왜 그랬냐면, 저는 액션영화를 좋아하는데 보고나서 좀 당황스러운 느낌들이 많았어요. 장진 감독 영화를 썩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 이런 것 종아하고,  공감했던 적이 있는데. 제가 정말 혐오스러웠던 것은, 아까 개그 코드가 좋으셨다고 하는데, 저는 여기서 나오는 개그 코드가 정말 혐오스럽거든요. 이 영화를 망친 것의 50%는 개그 코드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니 어떻게 이런 개그를 칠 수가 있지? 너무 당황스러운 거예요. 예를 들어가지고, 여자를, 트랜스젠더를 성당에서 만나가지고 해병대 몇 기냐.. 이런 개그는 정말 그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그런 수준이거든요.

 

민병선: 연극에선 빵빵 터지는데, 영화에선 안 그래.(웃음)

이대연: 코미디에서 많이 써먹었고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개그 같은 느낌들이 많이 있고, 그런 개그 코드들이 몰입하려고 하면 멀어지게 하고……. 아까 저하고 좀 반대셨는데, 그 깡패들이 와서 집을 막 뒤진 다음에 청소를 해요. 그런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웃긴 게 아니라 혐오감이 드는 거예요. 액션도 이건 뭐라고…… 액션도 저는 되게 싫었는데…… 이게 만화잖아요, 이건 액션이 아니라.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액션이지 이건…… 21세기에 쓸 수 있는 액션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특히 우산들고 싸우는 액션 같은 경우는…….

 

이수향: 그 장면은 약간 오정세의 프레임 속에서 이건 과장되게 비친 그런 느낌이었어요. 약간 그걸 노린 거 같은데. 회상하는 거잖아요.

 

이대연: 그런게 있긴 한데, 어쨌든 그건 약간 <조폭마누라1>에서의…….

 

이수향: 그걸 비교하면 안되죠…… .(웃음) 진짜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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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마지막 부분에 가서의 액션은, 마지막 부분에 가면 너무 쉽게 뚫리잖아요. 너무 쉽게 뚫리는데 너무 지쳐있어요. 그러니까 싸우는 시간도 너무 짧았고, 싸움의 난이도도 높지 않았는데, 피를 철철 흘리면서 다 지쳐있어요, 도착하니까.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고, 초반의 싸움 실력이나 액션. 오프닝 씬의 액션하고 라스트 씬의 액션을 볼 때는 이건 조금 언밸런스한 부분이 많았고-너무 만화적인 것들이 커가지고 그런 부분에서 개그 코드하고 액션 부분에서 저는 마이너스 99점을 주고싶어요.

 

이수향: 그런데 그게 장진 스타일이지 않아요?

 

이대연: 아니 근데..

 

이수향: 예전에 <킬러들의 수다> 이런 거 생각하면..

 

이대연: <박수칠 때 떠나라> 같은 걸 보면 그런 식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장진의 코미디가 유치한 코미디는 아니었거든요.

 

이수향: 장진 특유의 엇박자 코미디 같은 게 있는데. 애매한, 난감하게 웃겨야 하는 그런 느낌이 저는 있었는데..

 

이대연: 어쨌든…… 싫었어요…….(일동 웃음) 아무튼 그러니까, 아무튼 근데 99%가 싫은 이유를 얘기 했으니까, 제가 난감했던 부분이 뭐냐면 사실은 제가 뭐 젠더 문제나 이런 걸 얘기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이대연  저는 그런 걸 생각 안하고 살려구요.. 생각하니까 피곤해져서요. 농담이에요…….

이대연: 저는 그런 거를 이제 생각 안하고 살라고요, 그런 거 생각하니까 이제 피곤해져요 인생이...농담이예요, 아시죠?

 

윤성은: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서(웃음)

 

이대연: 층위가 세 개로 나눠져 있는 것 같아요. 오정세-허곤하고 깡패들하고 연결된 부분이 있고, 경찰들하고 연결된 부분이 있고, 과거 장면들이 수시로 삽입이 되잖아요. 그렇게 세 개, 트렌스젠더 무리와의 관계성이나 이미지들이 있는데, 세 개가 각가의 톤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연결이 안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스토리가 아니라 색채나 억양, 이미지들이 갑자기 툭 튀어 나오는 느낌이나, 앞에 다른 부분과 융합될 수 있는 얘기인가 이런 생각이든 것 같아요. 트레스젠더 얘기 나올 때는 화려한 조명등이 나오는데 그게 그다지 조화로워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러다가 형사나 조폭들이 나오면 이제 장진 특유의 개그 이런 것들이 나오는데, 그게 과거의 영상으로 봤을 때 흑백 비슷한 톤으로 얽히는데, 그게 요즘 용어로 말하면 케미가 잘 살 지 않는 느낌? 그리고 저는 그런 걸 왜 넣는지 잘 이해가 안됐는데 서사가 이어지는 것도 뜬금없었고 왜 그 두 사람이 성당에서 만나는지 이해가 안갔고, 왜 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러면서 결국 트렌스젠더가 받게 되는 가장 큰 문제인 시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걸 신이 가진 초월자로서 절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다보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바라보는...누구죠?

 

이수향: 수술하려고 계속 갔을 때부터 화장 계속 도와주던 그 트렌스젠더 여자.

 

이대연: 아무튼 그 시선이 너무 부담 스러웠고.

(일동 웃음)

 

정재형: 의심되는데.

 

이대연: 왜, 저기서 저 여자가 나왔을까.

 

정재형: 알겠어.

(일동웃음)

 

정재형: 뭔가 있어, 안에- 혐오증이 너무 과해 지금. 뭔가 있는 거야...(웃음)

 

이대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승원이 억양이라든가 톤이 너무 불편할 정도까지는 안 가가서... 어쨌든 그렇습니다. 좀 궁금한 것은, 왜 가지 못했을까, 돌아와야 했을까? 그건데, 천천히 더 듣기로 하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윤성은: 저는 두서없이 얘기할께요.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불쾌하지 않았구요. 참고로 저는 성당씬에서 웃었구요.(웃음) 제 코든지 장진코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끝나고 나서도 영화도 나쁘지 않다는 쪽이긴 했는데 그 이유는 일단은 이수향씨도 말했지만, 이 영화가 장르영화로서의 완성도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고 생각을 해요. 첫 번째 시퀀스를 봤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을 압도하는, 나중에야 안거지만 송영창의 회상씬 속에 나오는, 차승원의 엄청난 근육과 몸, 그리고 목욕탕에서 만났다는 게 의미가 있잖아요. 그리고 고추 보면서 맞았다 이 대사가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닌 줄 몰랐는데 나중에 가서야 알았죠. 그리고 술집에서 많은 사람들을 압도하는 액션씬...굉장히 깔끔하게, 오프닝 크래딧이 올라가기 전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보여줘서 좋았다고 생각을 하구요. 그 이후에도 중견감독답게 촬영이나 편집 등이 매끄러운 진행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그 장르에 있어서 전체적인 느와르로서의 포뮬라에서 안에 여성이 있는 남성 경찰로서의 갈등도 있었을 거고 그런 부분과 함께 변화를 주고, 또 맨 마지막에는 느와르 영화의 결말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비참하게 죽지않고, 물론 과감하게 성을 바꾸는 것은 포기한 것처럼 보였지만 조폭들도 그를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보호 받고 있었고. 그런 부분도 상당히 장르적인 관습들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자 한 흔적들이 보여서 나쁘지 않았는데, 근데 안타까웠던 점도 몇 군데 있었어요. 아까 앞에서 이대연선생님과 이수향선생님이 액션씬에 있어서의 의견이 서로 대치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저는 어쨌든 이 차승원이 이 육백만불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죽지 않는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너무나 로봇이나 기계처럼  강인한 남성이잖아요. 근데 그 안에는 여성성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 첫사랑의 여동생한테 말을 걸때, 너무나 여성적인 그 말투, 걱정하면서 그 여자애한테 말을 거는 부분이라든가 이런 데는 약간 위축되어 있는 소심한 여자의 모습 이런 모습도 보여주고 해서, 그것들을 액션씬과 여성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는 그런 씬에서 대비시키려고 노력을 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게 조금 약해서,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을 저는 조금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모든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강력한 힘이 되었을 수 있는데 그 부분이 조금 약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도 그 첫사랑에 관해서는 조금 이해가 안가요. 사실 저는 그 첫사랑이 뒤로 떨어져서 자살하는 장면이 로예감독의 여름궁전에서 나왔던 장면인데, 제가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장면을 여기서 또 이렇게 써먹나? (웃음) 뒤로 넘어가는 자살씬이 그 영화에서만 쓰인 것은 아니지만...이렇게 사용이 되니까 아무튼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지금 헷갈려 하는 게, 게이와 트렌스젠더가 다른데 그 부분에 대해서 이 감독이 분명히 이해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을 회상하고 그 잊지 못하는 첫사랑 때문에 그 여동생을 돌봐주는 그 감정선이 조금 부족해서 몰입이 안 되는 그런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결국 이 영화는 몸과 영혼에 대한 부분이잖아요, 육체와 정신은 연결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간 의학이나 철학에서 지적되어온 부분인데 그것이 분리되어 있다라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철학적 성찰들이 들어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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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수: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장진감독을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장진감독이 훨씬 더 겸손했어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첫 번째는 이 영화에서 장르들이 존재하는 불협화음들이 가장 이 영화를 망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요즘 하이브리드 장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영화의 메인 장르는 하나예요. 나머지는 서브 장르로서 존재하죠. 예를 들어 느와르라고 치면, 느와르는 굉장히 젠더적인, 남성 주인공의 서사가 있고,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는 서브 장르로 붙는 게 원래 느와르 안의 한 장르지, 느와르 안에 사랑 이야기가 붙는다고 해서 그게 혼합장르는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어떤 하나의 장르는 확실하게 가지고 가면서 그 장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서브적인 서사를 끌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세 가지 장르를 코미디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차승원의 개인적인 서사와 느와르라는 장르를, 저는 이 영화는 느와르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그냥 범죄 영화라고 보는데, 굉장히 잘못된 방식으로 섞었고, 그런 의미에서 장진이라는 감독이 자기가 가진 능력을 너무 과신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대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액션장면도 그렇고, 특히나 코미디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굉장히 실망스러웠고요. 또 한 가지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들었던 질문이, 어떤 영화가 미덕이나 한계가 있다면 과연 내가 어디까지를 받아들여야 하고, 한계를 어디까지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영화에 대해 어떻게 가치를 스스로 매겨야 하나 하는 부분이었어요. 이 영화의 미덕은 주변적인 소재를 주류의 감독과 배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해치는 한계가 있어서 그 미덕에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 핵심적인 것이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너무 과도하게 포함하고 있는 감독의 자신감 같은 것도 있고, 또 한 가지는 주변적인 이야기를 너무 소재 중심적으로 섞고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영화의 대사 중에서 아까 그 트렌스젠더 여자가 차승원한테 이런 말을 하죠. 여장을 하고 나가본 적이 있냐, 없냐, 네가 여장을 하고 나가서 많은 사람들의 그 불편한 시선을 받고 또 받아서 그 시선을 다 흡수해서 불편해지지 않아야 여자가 된다라고 하는데, 이 영화가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차승원의 상태와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가 나가서 그 불편한 관객들의 시선과 영화 속에 존재하는 또 많은 불편한 시선들을 감당하려고 하는 어떤 노력도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고 그 모든 시선들이 닿아야 되는 순간에, 너무나 익숙한 과도한 남성성을 선보이는 감성느와르라는 자신의 상업적인 정체성 안으로, 즉 액션과 피칠갑되는 화려한, 차승원이 워낙 기럭지가 길잖아요, 액션적으로는 과도하지만 아름다운 행위들로 그 불편한 시선들을 무마하는 순간이 영화 속에 너무 많은 거죠. 그러다보니까 이 영화 자체가 굉장히 비겁하다는 생각이들어요. 물론 저는 트렌스젠더라는 분들이 개인적으로 그러한 시선들을 피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하는 것을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주류 영화가 어떤 비주류적인 방식을 택했을 때는 이러한 방식은 정말 비겁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저도 이대연선생님과 마찬가지 생각이 있는데, 이 영화를 범죄영화로 만드는 오정세와 경찰의 이야기와 반대편에 차승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만약에 이게 차승원이 주인공인 이야기라면 차승원의 개인적인 사안이 범죄영화의 장르 안에 작용을 해야 해요. 근데 범죄 서사 안에 차승원의 개인적인 서사가 전혀 작용을 안 해요. 차승원이 트렌스젠더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은 하나도 없어요. 영화에서 차승원 혼자만 가슴 졸여 하지 전혀 작용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영화의 주인공이 오정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정세와 송영창의 암투가 그려지는 범죄영화에요. 그 속에서 차승원은 우연히 희생당한 한 명의 희생자일 뿐이고. 그 희생과정에서도 차승원이 가진 정체성의 문제는 어떤 역할도 안하는 이러한 영화에 차승원은 왜 굳이 트렌스젠더라는 설정을 해야 했었나 싶죠. 그래서 아까 민 선생님이 이거는 어떤 설정에도 문제가 없어보인다고 했는데, 저도 솔직히 말해서,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제가 난해하다고 말하는 지점이 그거예요. 한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차승원이라는 배우를 중심으로 과도한 남성성을 전시하는 이유. 과도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대비시키려고 하는, 그래서 초반부터 차승원의 남성성을 과도하게 보여줬던 부분을 십분 이해를 한다고 보더라도 영화 전체에서 어디를 보더라도 주인공이 가진 아픔을 영화적으로 이해해 주려는 노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 차승원의 개인적인 클로즈업과 감정의 몰입으로 이끌려고 하는 몇몇 장면들 외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났었고, 왜 이랬을까 생각하다보면 결론적으로 장진이 자기 스스로를 너무 과신했었더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이대연: 제가 보기에는 트렌스젠더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홍콩 느와르를 보다가 이 버디성을 깔아 볼까하는 의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성진수: 그렇게 저도 처음에는 생각해서 화가 났는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장진 감독을 애정하는 마음이 있다고나 할까? (웃음)

 

이대연: 만약에 이거를 제목을 하이힐이 아니라 아줌마라고 지었으면......

 

성진수: 그래서 제가 기사를 찾아보았는데, 원래 제목이 소머즈부인의 사랑이라고 지었었대요. 저는 영화랑은 전혀 안어울리긴 하지만 이 제목은 좋았어요. 뭔가 이 영화와는 다른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대연: 원빈에겐 아저씨가 있다면 차승원에겐 아줌마가 있다?

(일동 웃음)

 

정재형: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내가 지금 성진수씨 얘기를 듣다보니까 180도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 정리가 되는데, 나는 정반대로 너무 명쾌한 영화였거든요. 그건 왜 그러냐하면 지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기본적으로 이 영화를 트랜스젠더 영화라고 보고 있는 게 오해예요. 이 영화는 트렌스젠더라는 자기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평범한 한 인간의 이야기로 저는 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하나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거든요?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훌륭한 면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가지고 잇는 트렌스젠더라는 의식을 지향하지, 정말 별개의 트렌스젠더라는 그 인간을 그리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 선입관을 가지게 되면 사실 이 영화는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는 큰 범주에서는 퀴어영화죠, 왜냐, 트렌스젠더라는 주제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트렌스젠더의 생활을 그린 것이 아니라 트렌스젠더가 되고 싶어 하는 중간자적인 인간을 그리고 있어요. 그래서 차승원은 여전히 마초적인 근성과 여전히 되어있지 않은 자기 안의 남성적이고 무기적인 면, 자기가 남성적인 직업을 가져서 가장 잘 활약할 수 있는 그 부분을 이 영화에서는 거의 90%를 보여준 거죠. 그러니까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왜? 트렌스젠더가 어떻게 정리되지 않은 혼란을 보여주느냐? 사실은 아직 트렌스젠더가 되지 않았거든요. 결국은 이 영화는 바로 한 남자의 비극이라는 주제를 그린다고 봅니다.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어 하는데 되지 못하게 하는 한국사회의 관습에 대한 도전이예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굉장히 높게 평가합니다. 물론, 여러가지로 이 영화의 가치를 폄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영화가 가장 본격적으로 최초로 트렌스젠더라는 소재를 활용한 상업적인 오락영화다, 그래서 이것은 아저씨의 리메이크판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트렌스젠더판 리메이크, 그런데 그것은 수식에 불과하지 본질은 아니예요, 아저씨는 그야말로 액션의 세계에 머물다가 액션의 세계에서 끝난 거지만, 이것은 트랜스젠더를 얘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아저씨라는 상업적 코드를 차용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것은 인정해야죠, 왜? 저는 장진이 갖고 있는 욕심이라는 것은, 저는 이렇게 봅니다, 알모도바르가 되고 싶었던 거죠. 알모도바르야말로 이 영화에 비견할 수 있는, 물론 <하이힐>이라는 동명의 영화도 만들었어요. 그래서 <하이힐>이라는 제목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요? 알모도바르를 장진이 경배하는지도 몰라요, 장진이. 장진이 갖고 있는 위치라는 것은 알모도바르라는 예술영화지만 상업영화라는 멜로드라마장르를, 가장 천박한 멜로드라마를 활용해서 가장 고급적인 주제를 보여주는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거든요. 알모도바르는 장률이나 타르코프스키같이 난해하지 않아요. 대단히 대중적인 감독이죠. 그런데 그 사람의 주제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이단적이고 차원이 높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이 영화를 비교하고 싶은 것은 <내어머니의 모든 것>입니다. 정말 멜로드라마의 보편적이고 가장 천박한 상업적인 소재에다가 트렌스젠더라는 이 사회의 가장 이단적인, 아주 소수의 마이너리티만이 즐길 수 있는 그런 높은 주제를 접목시켰다는 것은 알모도바르가 이 세상에서 그런 점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다라는 것을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장진은 지금까지 소위 가장 상업적이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으로서 꾸준하게 왔지만 그래서 그의 조폭적인 액션적인 개그적인 취향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이번에 만든 영화는 그동안 만들어온 어떤 영화들보다도 가장 파격적이예요. 이것은 사실은 그동안 예술파감독이라고 불리워졌던 이러저러한 감독이 추구해 올만한 것을 파격적으로 도입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영화의 상업적인 실패가 바로 우리 한국 영화가 갖고 가는, 상업영화의 진폭이 굉장히 협소하다라고.. 아직 알모도바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객들의 세계가 있을 수 있고, 그러니까 한국의 상업영화계가 단지 소재적인 어떤 변화를 줘서 높은 주제를 시도할려고 했는데 그것 자체가 실패하는 걸 보면, 여전히 이 영화가 제시하는 높은 주제, 다시 말하면, 퀴어시네마라는 것은 상업영화에서는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그런 절망을 느끼거든요? 사실 이렇게 대중적인 차원에서-그 선례가 알모도바르죠- 이정도면 먹혀야되는데, 그것조차도 굉장히 거부감을 느껴서인지 아무튼 관객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무튼 그렇다면 저는 그런 반성을 하게 되죠. 저는 이 영화는 분명히 퀴어영화지만 주인공 인물은 대단히 모순적인 인물이예요. 다시 말하면 왜 모순이냐, 자기는 완전히 여성이 되기로 결심을 했지만, 그 순간마다 한국의 현실은 절대 여성이 되지 못하게 해요.

그러니까 태어난-부여된 정체성을 갖고 살아라 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회다라는 것은 이 영화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이 차승원의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거죠. 그래서 저는 퀴어 측면에서 이 영화가 얘기하는 것은... 자, 조폭은 가장 강력한 남성 마초를 대변하죠. 그리고 가부장사회의 질서를 상징합니다. 굉장히 권력적이고 정치적이고 집단적이죠. 제가 강조하는 것은 특히 집단성에 있어요. 차승원은 개인성을 나타냅니다. 퀴어의 주제는 바로 개인성입니다. 이것은 소수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거거든요? 이 사회가 정말 성숙하다면, 개인의 소수적인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되요. 근데 이 영화는 끊임없이 조폭싸움에 연루되는 차승원을 보여줘요.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데, 이 집단성은요, 60년대 이후로 가장 서구사회가 반성했던 파시즘의 주제입니다. 이 사회가 파시즘에 경도된다는 것을 바로 경계하는 주제로 갖고 가는데요, 거기에 정반대적인 가치로 등장하는 게 성소수자의 문제거든요? 그게 퀴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왜 차승원은 트렌스젠더가 될 수 없는가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압력인데 그게 이 영화를 읽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에서 장진이 시도하려고 했던 장진의 위치, 그다음에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상업대중오락영화에서, 제 기억 속에서는 최초의 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뭐 조금씩 조금씩 부수적으로 등장한 건 있지만 대중오락상업영화에서 이렇게 파격적인 소재를 가지고 전면에 내세워서 한 거는 최초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저는 의미를 좀 두고 싶구요. 그래서 그런지 그것에 대한 기대나 너무 앞서 간 해석, 말하자면 절대 이건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로 보고 싶지 않고, 과거에 대한 백그라운드들이 나왔다던가 이런 부분들이 있지만 그것은 차승원이 트렌스젠더가 되는 과정에 자기 성찰의 부분이죠. 그래서 결국은 트렌스젠더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죠 지금, 정확이 얘기하자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여기 신부님 계시지만, 신부님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라고 보여지거든요. 신과 인간과 그 사이에 놓여진 사제가 굉장히 갈등을 하죠.  그 갈등의 모습을 보였을때 이건 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바로 인간사제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그 사제는 굉장히 소수지만, 그러나 그 소수를 존중해줘야 되죠. 그 사람을 신이라고 이해하면 안되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차승원를 트렌스젠더적인 입장에서 이해를 한다기보다는, 트렌스젠더가 되기로 결심하고 결국은 그리고 가야된다는 당위성을 갖고 노력을 하는데 계속 그것을 방해하면 한국사회를 사실은 그렸다고 봅니다.

 

박태식: 숙연해지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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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수: 근데 어떻게 보면 영화가 큰 의미에서는 선생님 말씀하신 게 정말 맞고, 저도 그러한 얘기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이 영화 자체의 만듦새가...... 사실 저도 여기가 어떻게 메모를 했냐하면, 이거는 그냥 트랜스젠더의 문제라든지 그런 거를 떠나서, 장률 감독의 많은 영화들과 비슷하게 경계인과 같은, 장률감독에게는 경계인이라는 정체성이지만, 비슷하게 차승원도 그러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그러한 하나의 인물로 볼 수 있다고 좀 더 넓은, 이해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해석을 하려고 했을 때, 이 영화는 분명히 상업적인 카테고리 안에 장률 감독하고 굉장히 다르게 예술영화의 내레이션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상업적인 내레이션을 사용하고 있고, 상업적인 내레이션이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내레이션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내레이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주제가 분명히 말해서 그런 내레이션 안에서 작동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전형적인 서사 안에서요. 근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굉장히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지만 자기가 선택한 내레이션 안에서 그런 주제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난점인 것 같다고 봐요. 사실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실패하는 요인이, 영화가 실패하는 요인이 하나라고 볼 수 없겠지만, 이 영화가 트렌스젠더라든지 그런 불편한, 누군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재나 주인공을 등장시켜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거죠. 솔직히 말해서.

 

이대연: 제가 하고싶은 말이예요. 영화의 99%를 차지하는 액션과 개그가 재미가 없었어요.(웃음)

 

성진수: 재미가, 케미가 안 사는 거죠. 맞지가 않아요. 박성웅이 연기하는 그 인물은 솔직히 그런 액션을 하지 않고 죽어도 되잖아요. 나중에 보니까 특별출연인가로 크레딧이 올라가더라구요. 그 검사는 단순하게 야심있는 검사로만 해도 되잖아요. 주차장에서 그렇게 떼거지로 몰려드는데, 나라면 차라리 빨리 차를 타고 도망가려고 시도했을 텐데 굳이 싸우다가 맞아 죽고, 중간에 몇 가지 설정 같은 것들은 이 영화에서 좀 더 중심을 잡았으면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드라마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으로 너무나 많이 흐르다 보니까 이 영화 자체에 서로 따로따로 겉도는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듯해서 영화 안에 몰입하거나 상업적으로 영화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게 이 영화의 가장 아쉬웠던 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정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약간 반론을 얘기하려고 하는데요, 선생님께서 상업 영화에서 그런 소재를 다룬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 같은 것을 장진이라는 감독이 다룬 것에 대해서 가치가 있는 것을 평가하셨는데, 저는 똑같은 지점에 있어서 이 영화가 어떻게 보면 상업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선택한 느와르와 같은 그런 여러 가지들이 이 영화의 상업적인 미덕이 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상업적인 미덕까지 미치지 못했다라는 점, 두 번째는 그러한 선택이 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미덕을 잠식해버렸다는 점, 그런 두 가지 지점에 있어서 이 영화에 대해서 지지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재형: 근데 나는 그 뭐, 그렇게 재미없게 보진 않았어요. 근데 인제 좀 약간 그 내가 식상한 느낌을 받은 부분은 <아저씨>에 대한 부분인데 난 사실 <아저씨>를 모방하지 않았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러냐면 알모도바르 얘기를 아까 했지만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라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지 바로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모방하진 않아요. 대가들은. 그게 바로 대가와 소가의 차이죠. 그러니까 장진 감독이 그런 우를 범했다라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인 결함인데 저도 그 부분에서 <아저씨>와 비슷하게 느껴지면서 갑자기 식상한 듯한 그게 이제 영화의 품을 떨어뜨리는 것이죠.  그러니까 영화를 재밌게 만들기 위해서 장르를 모방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바로 최근 영화 예를 들면, <광해>를 모방한다든지 <7번방의 선물>을 모방한다든지 그러면 역시 똑같은 효과가 나올 거예요. 그것은 어떤 아류작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재미가 없을 수 있어요. 저도 그런 차원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이게 <아저씨>하고 비슷해지네. 이야기가. 그러니까 바로 식상한 느낌을 받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인 어떤, 이 영화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장진 감독이 하려고 했던 어떤 시도 자체를 되게 높이 평가하고 싶은 거구요. 그래서 뭐 이 정도 수준이면 저는 받아들일만하다. 인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뭐, 말씀하시죠.

 

윤성은: 저는.. 넘어갈께요.

 

정재형: 그러면 제가 좀 더 얘길 하면, 너무 인제 말을 많이 안 하려고 하는데..

 

성진수: 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또 한 가지 저도 사실 알모도바르가 정말 자주 떠올랐어요. 이런 소재에 대한 진짜 대표적인 감독이라서.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든게, 아니, 어떤 의문, 아니 질문이 하나 생긴게, 어떤 소재 내지는 어떤 이야기는 그것과 궁합이 맞는 장르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과연 그 런게 있나? 알모도바르는 꾸준히 멜로드라마를 지향하고, 그런 많은 소재들을 멜로드라마로 풀어내는데, 그게 그 이야기, 멜로드라마라는 장르 안에서 너무나 잘 녹아들고 충분히 표현이 되거든요. 저는 아까 장르적인 불협화음이 너무나 이 영화에서 문제라고 얘길 드렸는데, 이 영화가 선택한 몇 가지 장르 안에서도 분명히 풀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인물의 내적인 갈등, 뭐 이런 방황 내지는 어떤 그런 것을 다루는 장르로서는 범죄물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질문이 좀 생겼거든요.

 

정재형: 장진감독은 사실 코미디를 잘하는 감독이고, 장르로서 맞는 장르가 있다면 알모도바르가 멜로드라마라면, 장진감독은 코미디죠.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코믹한 어떤 그 코미디 장르로까진 아니지만 코믹 코드를 많이 쓴 것을 사실이예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제 사실 조폭 멜로드라마거든요. 이것도. 그러니까 남자의 사실 후회예요. 그 후회라는 것. 마지막에 멜로드라마라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나중에 후회하는 비극을 그린 거죠. 그런데 이것은 알모도바르와 같은 애정 멜로가 아니예요. 이것은 조폭멜로인데. 바로 이것이 멜로적인 성격, 이 남자의 차승원의 비극적인 뒤늦은 깨달음, 이미 때는 늦었죠. 트랜스젠더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갔어야 되는데 다시 왔다는 거죠. 그래서 그 마지막에 이 사람의 비극성을 일깨워주는 그런 어떤 거리감, 브레히트적인 거리감을, 거창하게 설명하면 미학적으로, 그 장치가 그 여자의 시선입니다. 그것이 개입하면서 이 남자가 트랜스젠더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을 관객에게 전해주는 분명한 메시지거든요. 대중상업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필요가 없어요. 그건 대단히 예술적인 기법이거든요. 메타포란 말이죠. 그 여자의 시선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요. 모티프죠. 그래서 그 여자의 시선이 무엇인가를 관객들이 생각하게 해요. 성찰하게 해요. 그것은 바로 최수환의 운명을 나타내는 거예요. 이 사람이 가혹한 한국 현실에, 그런 가부장적인 어떤,  뭐 가부장적이라기 보다는요, 이것은 굉장히 억압적인, 파시즘적인 거거든요. 한국 사회에 가지고 있는 굉장히 개인의, 어떤 개인성을 자유를 억압하는 굉장히 파시즘적인 사회. 그것을 단적으로 대표하는게 조폭의 집단성이거든요. 조폭의 집단성이고 거기에는 마초이즘이 또 차용되구요. 그런 가운데서, 자. 이 퀴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뭐냐면요,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여자로 변한다는 거예요. 왜? 바로 그 시선이 한국 사회가 가장 억압하고 있는 가부장 질서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한국의 파시즘은 남성 가부장적인 사회예요. 파시즘 = 남성은 아니죠. 남성 가부장은 아니죠. 그렇지만 한국 사회가 굉장히 억압된 가부장 사회인데, 특히 파시즘적인 정치적인 억압의 기재가 같이 작동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남성이 여성으로 변화하려고 하는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반역적인 거예요. 이것은 한국 사회의 가장, 가장 정치권력을 건드릴 수 있는 최고의 이슈예요. 근데 이것을, 이것을 만약에 이것보다 더 파격적이라면 정말 트랜스젠더를 그렸으면, 대단히 파격적이죠. 예를 들면, 그런 트랜스젠더의 대표적인 영화가 <프리실라>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러면 프리실라, 그러니까 게이가 됐든 트랜스젠더가 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사실은 성 소수자라는 측면에서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트랜스젠더라는 소재가 등장했을 뿐이죠. 근데 그것은 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하고 저는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왜? 조폭하고 대비되는 것, 남성성과 대비되는 것. 그것은 이 남성이 가장 어떻게 보면 또 마초적인 남성이었잖아요. 이 사람이 정 반대의 여성, 개인으로 변한다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주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많은 재미있는 해석의 지점들이 이 영화는 있다. 단지 영화가 재미없다라고 얘기한다면 나는 할 말은 없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그런 묘한 지점을 지향하고 있는 상업 오락 영화였다 라는 측면에서 나는 굉장히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라는 거죠. 이 영화의 실패는 상업적으로든 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되어져 있겠지만 그러나 평론적인 가치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왜? 이런 상업 오락판에서의 이러한 진지한 시도가 나는 중요하다라고 봐요. 왜? 예술영화는 장외거든요. 그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고, 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환상이죠. 현실은 변하지 않는데 외곽에서만 외곽 때리기만 하게 되는 것이구요. 이 진영 논리로 본다고 그러면 장진감독과 같이 가장 대중적인 그러한 라운드에서, 경기장 안에서 뭔가 관객을 자꾸 성찰하게 하고 공격하고, 하는 어떤 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나는 높게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이수향: 저도 비슷한 의견인데, 이게 오히려 아까 윤성은 선생님이 잠깐 이야기하셨지만, 몸과, 그러니까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는 게 이 사람의 자아정체성의 혼란에 있어서 굉장히 큰 부분인데, 그러니까 몸이라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어떤, 피튀기는 육체성의 상징으로서 6백만불의 사나이, 지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형사를 그려내고 있었던 것 같고, 반대편에 굉장히 여성적인 그럼 면이 있는데, 그것을 감추고 사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뭔가 이런 코드를, 그러니까 극단적인 육체성과 어떤 혼란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장르를 가지고 온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아까 이대연 선생님과 성진수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영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이렇게 해야 된다라는 그걸 너무 기본적으로 갖고 가는 나머지, 그것에 미달되었지 못했을 때 어떻게 우리가 불만을 갖는 것은 별로 이런 감독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그러니까 영화적으로 굉장히 수준이 떨어진다. 굉장히 기법적으로 한심하다. 이런 건 깔 수 있지만 뭔가 이 방향으로 갔어야 됐는데 좀 덜 됐다고 그 감독한테 우리가 평할 수 있을까.

 

이대연: 내가 재미가 없는데 재미 없다고 말도 못해요? (일동 웃음)

 

이수향: 재미 없다고 하는 건 괜찮았어요. 재미 없다고 하는 건 괜찮은데, 퀴어 영화를 다루는데 이렇게 해야 되는데 막, 뭐 그렇게 이야기하는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이야기해도 되는지.

 

하이힐2movie_image 

 

성진수: 근데 저는 사실 이 영화에서 제가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하고, <끝까지 간다>라는 영화에서 제가 이 영화가 가진, <끝까지 간다>라는 영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사실 같은 지점이거든요. 그것의 양면을 두 영화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끝까지 간다>는 그야말로 오락영화임이 확실해요. 한국영화가, 특히 상업영화는 분명히 서사를 가진 극영화거든요. 그러한 극영화로서 자기의 서사 안에서 코믹, 유머, 혹은 서사 안에서의 주제, 서사 안에서의 모든 것을 끌어내지 않고, 서사는 서사대로 흘러가고, 코믹한 부분은 외부에서 갑자기 삽입되고, 예를 들면 주제가 갑자기 외부에서 삽입되고 하는 그런 것들이 한국영화에서 종종 보이는데, <끝까지 간다>가 가지는 제가 발견한 가장 큰 장점은 유머면 유머, 아니면 과잉 해석하자면 우리 사회를 향한 어떤 약간의 비꼼, 그 다음에 혹은 이 영화에 사람들이 몰입하게 만드는 힘, 이런 것들이 서사 안에서 다 작동하도록 한다라는 것였어요. 저는 그것이 <끝까지 간다>가 가진 미덕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하이힐>이라는 영화가 반대로 서사 안에서, 분명히 상업영화로서 극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영화의 극이라는 것 안에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소재가 표출해야 되는, 소재로부터 출발한 주제, 혹은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 아니면 이 영화가 투영한 장르적인 어떤 특징, 혹은 그 장르적인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장르적 재미, 이런 것들이 서사 안에서 전혀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태로 그냥 컨텍스트로 갑자기 영화 안에 끼어든다고 보기 때문에 저는 그런 측면에 있어서 이 영화가 문제라고 보는 것이지, 이 트랜스젠더라든지 그런 소재를 다루는데 그건 이렇게 특별하게 다뤄야 되는데 이건 그렇게 못다뤘다고 봐서 문제를 삼는 것은 사실은 아니에요. 충분히 느아르라는 장르를 포함해서도 혹은 과도한 남성성과 어떤 여성성을 한 배우를 통해서 표현하면서도 다 가능하지만, 영화적으로 글쎄요. 지금 상업영화에서 네임밸류를 가진 감독이 만든 것으로는 영화적으로 너무나 많이 아쉽다라는게 가장 핵심이죠. 제가 <하이힐>을 봤을 때 느끼는 한계인 것 같고, 그런 것 같아요.

 

이대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간단한 거예요. 세련됨이 없어요. 되게 촌스럽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저는 그게 첫 번째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술에서 세련됨이....

이수향: 그러니까 뭐랄까. 어떤 생각이 드냐면, 어떤 영화를 봄에 있어서의 세련됨의 취향이, 개개인의 차이가 너무 큰데 그게 뭐랄까. 지금 같은, 알만한 영화는 저희가 정리가 되잖아요.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합의가 되는데,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극단적인 것 같아요. 그 어떤 너무 대비가. 그렇게까지 완전 막 저열한 영화예요. <하이힐>이? 저는 그런 인상은 못 받았는데...

그게 약간 배신감 같은 것도 있어요. 정교수님이 말씀하신 것도 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고. 저는 몇 가지 배신감을 느꼈는데, 뭐냐면은 제가 <신세계>나 <끝까지 간다>라는 것을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해피엔딩이에요. 이게 해피엔딩이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이겨요. 어떻게 해서든지. 주인공이 이기고, 쟁취하고, 이런 거였는데. <하이힐>에서는 내면의 타자성이 결국은 부정되잖아요. 부정되는데, 이게 뭘 보는 것 같냐면 근데 영웅서사에서 보는 어떤 자아가 결국 실패하고 죽어버리는, 이게 반복인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어떤 기본적인 서사구조에서의 촌스러운 느낌도 있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서 약간 개그나 액션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고 보는데. 뭐냐면, 우리가 물론 70년대 영화를 보고도 굉장히 좋은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명작들을 볼 수도 있지만, 촌스럽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잖아요. 근데 아까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여기 액션이 <조폭 마누라> 액션이거든요. 아까 복고액션이라고 얘기했는데, <본> 시리즈를 보고, <아저씨>를 본 사람들이 이 액션을 보고 뭐라 그럴 건가. 라고 하는데. 더군다나 뭐냐면, 액션이 굉장히 만화적인 액션이거든요. 과잉되고. 불가능한 액션을 가능한 것처럼 보여주는데. 그 방식도 굉장히 어설픈 느낌이 들고, 뭔가 조롱당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게 조롱당하는 느낌이 들고 개그도, 저는 장진식 개그 사실 좋아하는데, 장진식, 처음에 저는 각본을 확인을 못해 봤는데, 저는 장진이 썼을 거라고 생각을 못하고 있거든요. 아직도. 확인을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장진의 개그들이 아닌 거예요. 장진의 어떤 세련된 개그들. 이런게 아니고 아까 말했듯이 “해병대 몇 기야?”이러니까 막 어색하게 일어나서 막 경례하려고 하는데 이런 건 70년대 액션인데, 아니 90년대 액션인데, 그런 걸 하고 있다라는게 뭔가 성의없어 보이는 이유가 있고, 또 하나는 진정성 문제인데, 뭐냐면 상업영화도 좋고, 상업영화 속에서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노력도 굉장히 좋고, 그게 처음엔 굉장히 좋았는데 되게 성의없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단. 성의없다라는게 내용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성의 없고, 그 내용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소들이 조합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성의 없는, 방식이 된 것 같구요. 그래서 뭔가 기존에 장진이라는 감독에게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신뢰가 깨지는 배신감, 그리고 내가 정말 기대하고 봤던 영화가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가. 그런 거에 대한 배신감도 많이 높았던 것 같아요.

 

정재형: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 영화만을 갖고 보니까 이 영화를 어떤 기준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찬반이 엇갈릴 수가 있어요. 지금 이대연 선생님 얘길 들어 보니까 내 그런 생각이 좀 드는데, 본인도 어느 정도의 대한 애정은 있으나 영화가 좀 세련되지 못했다라는 그 골자로 얘기한다면, 저 같은 경우는 이걸 굉장히 좋게 본 이유는 그 애정이 대단히 지나치기 때문에 그런 결점을 다 덮어버리고 싶으면서 본 거예요. 그래서 얘기를, 반론을 듣다 보니까 다 내가 인정한 것들이었거든요. 새로운 반론이 아니라 나도 그랬지만 그것을 다 용서하면서 좋게 본 거예요. 결론적으로. 그런데 그것들을 가지고 나쁘게 본 것이 반론이거든요. 그래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요. 이 영화가 세련되지 못했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다 동의를 하고 있는 거예요. 자 그러면, 정말 세련된 대중상업영화가 뭔가요. 나는 그런 측면에서 영화를 한국영화를 펼쳐놓고 봤을 때, <끝까지 간다>? 저는 그런 영화는 정말 부정하고 싶은 영화라고 봅니다. 왜? 그런 영화는 너무나 많아요. 이 세상에. 그 다음에, <신세계>? 신세계가 뭘 보여줍니까. 이 영화도 결국은. 뭘 보여주냐면, 바로 <신세계>가 다루고 있는 조직 사회의 암투를 그리고 있는 거예요. 결국은, 송영창이가 마지막에 접수하잖아요.  모든 것을. 바로 그 조폭세계, 이 체제는 이 체계는, 이 체제는 영원히 지속된다라는 현실의 엄중함, 억압을 나타내는 것이거든요. 그게 조폭영화의 결론이예요. 모든 영화가 개변했어요. 장진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도 <신세계>만큼 훌륭해요. 조폭적인 면을 그렸다는 점에서.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주인공이 훼방시켜놓은 질서 때문에 서사가 혼란한 것 뿐이예요. 그런데 나는 거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거죠. 결국은 왜냐. 재밌는 영화는 많다는 거죠. 근데 재밌고 의미 있는 영화를 찾고 있는 거예요. 내 기준은. 그런 점에서 신선하다고 봅니다. 아니면, 정말 좋은 대안을 제시해 달라. 제가 궁금한 것은. 자, 어떤 것이냐. 지금 대한민국에 상대적인 입장에서. 이 정도를 시도하는 감독조차 있느냐.  혹은 정말 완성도 높은 오락, 그러면 제가 <끝까지 간다> 같은 경우 정말 아쉽게 생각한 부분이 뭐냐면. 대단히 오락적이고 재밌게 봤는데, 저도 재밌게 봤는데 보고 나서 얘기를 하려니까 할 얘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렇게 철저하게 할 얘기가 없는 영화는 내 생전 처음 봤어요. 하나도 얘기할 수 있는 주제가 없어요. 그 주제라고 하는 것은 이미 너무나 식상해있는 주제예요. 그렇다면, 더구나 서사의 실패도 보게 돼요. 말하자면, 왜 주제가 실종됐는가를 잠시 내가 추리를 해 보니까 원래 코미디로 만들려다가 뭔가 좀 안될 것 같으니까 바꿔서 가다 보니까 완전히 실종이 되어버려 가지고 코믹하면서 이상하게 주제가 찾아지지 않는 영화처럼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나 어쨌든 경위야 어떻든 결론은 뭔가, 뭘 얘기를, 진지한 우리 사회의 트랜스젠더 같이 어떤 주제어 자체가 한 시간 두 시간 떠들 수 있는 주제가 있냐는 거죠. 없거든요. 그래서 식상한 주제 말고 정말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건드리는 영화들이 저한테는 반갑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식상한 부분이 대단히 많아요. <아저씨>에 대한 부분. 절대 <아저씨>를 모방하지 말았어야 된다. 그러나 <조폭마누라>를 거꾸로 반전시킨 가치가 있어요. 왜? 제가 볼 때는 <조폭마누라> 같은 경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여자가 남성성을 갖고 마초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트랜스젠더적인 영화는 별로 우리 사회를 건드리는 중요한게 아니예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남자들이 문제죠. 남자들이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라는 점에서 저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그 결점을 좀 감싸안으면서 봤는데, 그것을 인제 너무 가혹하게 치면, 저는 그런 질문이 떠오르죠. 그렇다면,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지금 저는 상업영화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제가 먼저 전제할 것은, 지금 그런 얘길 할 기회가 없어서 지금 얘기하지만, 저는 지금 대한민국 영화가 짜깁기 영화와 외국원작을 제대로 심지어는 표기하지 않으면서 거의 표절에 가깝게 리메이크식으로 만드는 그런 영화들, 두 가지 경향으로, 대단히 오락적으로 만드는 영화들이 많다고 봐요. 그래서 오락영화의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지만, 제가 생각할 때, 오리지널리티도 없고, 굉장히 걱정하는 입장이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영화 어떻게 나갈려고 그러나. 이런 입장에서 제가 이 상업영화를 좀 이렇게 신선한 어떤 주제의식 같은 것들을 요구하는 편이죠. 

 

이수향: 저는 비슷한 생각으로, 퀴어영화를 생각해봤을 때, 뭔가 트랜스젠더를 다룬 영화는 별로 없지만, 그나마 정말 아주 저열한 영화들 빼고, 게이영화는 그래도 좀 있는 편인데, 그런 영화를 보면서 제가 좀 불편했던 부분이 김조광수 영화들을 보면 특히 더 그런데 사실, 되게 뭐랄까. 소수자가 하고, 마이너리티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말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느냐고 봤을 때, 저는 굉장히 그 남녀의 로맨스적인 정말 청소년 하이틴물 스타일을 정말 게이가, 게이감독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굉장히 어떤 마크를 얻을려고 한다는 불편함이 있어요. 정말 진지하게 게이들이나 정말 성적소수자에 대해서, 정말 그들의 핍진함과 고통과 슬픔을 얘기하고 있느냐. 그런 부분은 불편하니까 잘 얘기를 안하고. 그나마 게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로맨스적으로 풀어낸다는 얘기죠. 학생들의 이야기라든가, 돈 많은 부자 남자와 굉장히 미소년이지만 어린 남자를 다룬다든가. 그런 너무나 뻔한 방식에 비해서 장진이 선택하고 있는 방식이 굉장히 돈을 많이 들인 상업영화인데 말씀하셨던 여러 가지 단점들이 굉장히 많지만 저도 선생님 말씀에 동의를 하는게 이런 문제제기 자체가 위험할 줄 뻔히 알고, 재미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걸 잡아내기 위해서 그런데 이걸 더, 그렇게 예술영화나 정말 소수자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게 하기 위해서 수면위로 끌어내기 위해서 어느 정도 대중적인 코드를 차용한 것이 아닌가. 뭐 영화적으로 비판받을 점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퀴어를 그리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게 정말 진지하게 웃음기를 빼고, 몇몇 장면들을 빼고, 정말 개인의 고통을 다루는 그런 식의 영화가 몇 개나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는 이 영화가 신선했거든요. 저는 그런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그럼, 이제 <스톤>으로 넘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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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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