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영화 합평회

합평회<거인>참석자: 이대연, 민병선, 정재형, 이지현, 이수향, 성진수, 양경미

씨네톡 합평회

 

참석자: 이대연, 민병선, 정재형, 이지현, 이수향, 성진수, 양경미

 

거인 (김태용, 2014)

 

성진수: 11월 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거인>(김태용, 2014)을 주로 하고, <카트>(부지영, 2014)를 이후에 하도록 할 텐데요, 어떤 순서로 진행 할까요?

이대연 선생님 부탁드려요.  

이수향: 이대연 선생님 준비 많이 해오셨어요? (웃음)

 

이대연: 거인의 애환을 그린....(웃음)

 

정재형: 거의 뭐 2주일 동안 생각을 하셨다는 그런...

 

이대연: (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일단 좋았고요. 그러니까 <한공주> 본 이후에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나름. 제 취향이 그냥 이런 걸 좋아하는 스타일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제일 마음이 아팠던 건, 최근에, 최근이라고 해야 되나요?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몇 편이 쭉 나왔었는데 그 영화들의 배경들이 학교라든가 뭐 이런 데가 많았는데, 그런 배경이 아니고, 그러니까 청소년들을 성장기에 있는, 특수한 시기에 있는 특수한 인물 군들의 모습들, 뭐 이런 정도로 느낌들이 왔었는데, 이건 청소년기에 있는 사람들을 어떤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어떤 한 일원으로서 아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왜그러하냐면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영재, 그 인물 보니까, 여기에 키워드 중에 하나는 결국 경제문제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집에 돈이 없어가지고 어떤 시설... 돈이 없어서 단순히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은, 시설에 와서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기 위해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청소년을 그리는 방법들이 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옛날에 경제문제라고 하면 그냥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게, 이제 청년들의 경제문제까지 내려 왔다가 청소년들한테까지 내려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좀 들어가지고. 이 영화의 하나이 키워드를 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경제상황, 단순히 경제가 어렵고 이런 문제는 분명히 아닐 거고요, 그게 신자유주의의 고도화, 심화 이런 걸로 인해가지고 생존의 문제가 조금 더 깊어진,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일상을 하나하나까지 지배하게 된 이런 상황들을 결국은 청소년에게서까지 보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굉장히 마음이 아팠고요. 그러면서도 주로 배경이나 등장하는 것으로 보면 종교얘기도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단순화된 도식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무책임하고 무능한 부모라는 설정들이 어떻게 보면 위정자와 국민들 내지는 신과 인간, 이런 식으로도 은유될 수 있고 해석될 수 있겠다 라는 생각도 좀 들었고요. 그리고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도 좀 컸는데, 왜 <거인>일까 가만히 생각을 해 봤는데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일찍 철이 든? 어떤 사람이  웃자랐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뭐 그런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아틀라스가 지구를 들고 있잖아요? 그런 거 보면 결국 그 아틀라스가 들고 있는 게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운명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개인의 모습들, 뭐 이런 것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뭐 일단 이정도 말씀을 드릴게요.

 

 

 

2014-11-24 22.41.06

민병선: <거인>을 재밌게 봤고요. 보고 나오면서 두 가지로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일단 내적으로 보면 세대 간의 갈등, 신•구세대의 갈등, 또 사회적인 모순이죠. 그런 것을 잘 그렸다 라는 생각을 했고, 생채기를 드러내면서 소년이 겪는 절망과 아픔, 이런 것들을 내러티브 적으로 굉장히 잘 따라가고 있어서 좋았고. 작품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소년의 아픔과 절망을 따라가는 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즉 그 소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와 사회 구성원들이 뭔가 성찰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주는구나. 그래서 굉장히 감독이 내공이 뛰어나다 라는 생각을 해서 뭐 어떤 감독인가 봤더니 자전적 이야기를 다뤘다 라고 하고, 홈 그룹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더라고요? 아까 이대현 선생님이 말했듯이 청소년 문제라든지, 폭력이라든지, 성적인 거라든지, 그런 문제를 배제한 채 내면의 갈등을 좀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럴까요? 그런 면에서 영화가 뛰어나게 잘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성찰할 수 있는, 그러니까 이게 소년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데 가만히 보면 사회를 반영한다고 그럴까요? 아버지는 아버지, 원장선생이면 원장선생, 신부님이면 신부님들이 다 어떻게 보면 자기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거든요.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가치관이 다른 문제예요. 사회적 환경이 다른 문제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절망으로 다가온다는 거죠. 고통, 좌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점점 영악해져 가는 어떤 한 소년이, 어떻게 보면 저는 <거인>이 아니라 제목이 처음에 괴물이 아니었을까... 괴물처럼 점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 소년이 이중적 잣대를 취하는 데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성찰할 수 있는 반영적 측면이 있어서 훌륭한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지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처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왜 이렇게 불편할까? 이런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이 친구가 예전에 <똥파리> 연출부였지, 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것과 연관을 지어 생각해보니, 재미있는 지점이 있었어요. <똥파리>는 내러티브 상 보편적인 이야기인 거잖아요? 아버지를 발로 찬 아이가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이 결국은 응징을 당하는,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이야기였죠. <거인>의 경우에는 주인공에 대한 집중도가 훨씬 높은 것 같아요. 물론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보여주기는 힘든 구조였겠죠? 젊은 감독의 한계? 너무 주인공만의 세계에만 몰입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렇다고 영화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일단 감독이 어리고, 대단히 사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볼 때 힘들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사실은 어떻게 책임을 질 수도 없고. 굉장히 진한 종교적인 느낌도 들었다는 점에서... 여기서 종교적인 느낌이라는 것은, 기독교나 천주교나 다들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그런 종교는 아니잖아요? 그런 역설적인 의미에서 종교적인 느낌도 있었고...

그리고 <거인>을 보고 난 다음에 이 감독의 단편영화를 두 편 봤는데, <거인>과 연결이 잘 되는 거에요.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약간 뜬금없는 대사들이 나오는데 그게 아, 이런 성장 베이스를 가지고 있어서 얘가 이런 대사를 치는 구나, 이런 느낌도 좀 들었고. <밤벌레> 라는 게이영화가 있는데 또 재미있는 지점이 거기서도, 아... 정리를 해왔어야 되는데(웃음), 두 남자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보이거든요. 감독이 <거인>을 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에서 심리적으로 많은 부분 짐을 덜지 않았나... 하는 그런, 사적인 의미에서 봤습니다. 그리고 물론 영화적으로도 좋긴 했지만... 네, 여기까지 할게요(웃음).

R678x000 

이수향: 저는 이 영화를, 굉장히 좋게 봤고요, 큰 틀에서 영화적인 성격을 얘기해보자 라고 한다면, 상업영화나 재미를 강조하는 영화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우리 현실의 핍진한 면을 굉장히 날카롭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한 개인, 한 학생의 성장담 정도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이 영화의 뛰어난 면이라는 거죠. 보통 이 정도 청년이 등장하고, 이 아이가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면 마지막에 성장을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인데 감독은 그런 쉬운 길을 택하고 있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습니다. 즉, 사회나 개인에 있어서 이런 문제의 층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가 핵심이라는 거죠.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체제 하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라는 문제를 어린 청년을 통해서 명백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개인이 불안을 느끼게 되는, 개인이 가지게 되는 불안의 그 감각의 근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봤을 때 “안전”인데, “안전”은 물론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죠. 그런데 그게 자기 혼자 설 수 없는, 미성숙한 학생인 처지에서 보면 그것은 부모라는 존재의 보살핌이 절대적인 거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됐을 때 극도의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강조되었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갖는 특이한 어떤 심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국가가 더 이상 우리에게 안전을 케어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의 극도를 이 영재라는 학생이 보여준다고 생각을 하고요. 마찬가지로 지그문트 바우만이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나, 『리퀴드 러브』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게 이거죠. 개인이 계속 가지고 있는 심리적 불안이 결국 우리가 루저가 되는 것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 거고, 그런 식으로 계속 흘러가게 되는 것이 개인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는데, 이 영화도 분명히 그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재미가 있었습니다.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스타일은 굉장히 극도의 리얼리즘에 가깝고 심리적인 층을 파고 들어가는데, 재미를 강조하는 오락영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사실 이 영화가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는 좀 괴로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르덴 형제’의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또 아까도 지적하셨지만 <한공주>가 많이 떠올랐어요. <한공주>가 우리는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이 영화는 그 영화보다 더 층위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한공주>를 볼 때 그나마 우리의 마음을 덜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라면, 주인공인 ‘한공주’에 대해서만은 우리가 비판의 시선을 들이대지 않고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감정적으로 편하게 공감해도 되는 대상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좀 특이한 지점은, 주인공인 ‘영재’에 대해 우리가 감정적인 동화를 느끼고 싶은데 이 아이가 하는 행동이 100% 다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거잖아요. 기증품으로 들어온 신발을 훔치고, 사실 자기가 정말로 신학대학을 가고 싶은 건 아닌데 이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서 신학대학에 가고 싶은 척을 하고, 신부님과 수녀님과 사람들을 속이고…. 이런 모습들 때문에 이 아이의 감정과 상황을 우리가 100% 동화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생기는 데, 그런 부분을 미묘하게 잡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공주>보다 조금 복잡하고 힘들지만 더 나아간 지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한 게, 아까 거인의 의미가 뭘까, 저도 많이 생각 해 봤는데 마찬가지예요, 저도. 민병선 선생님처럼 오히려 괴물에 가까운 아이가 아닌가. 왜 이 제목을 <거인>으로 했을까. 마지막에 거인처럼 성장을 하면 또 이해를 하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어떤 생각을 했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가오나시’라는 존재가 나와요, 가오나시. 걔가 계속 외로움을 먹다가 그게 극도화 되면서 괴물처럼 커지거든요? 그런 이미지가 영재에게 겹쳐졌어요. 개인의 혼동과 불안함과 그 외로움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점점 쌓여가면서, 이 아이에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의미에서의 ‘거인’이 된다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거인>을 제목으로 잡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과 원망과 불안과 시기와 질투가 뒤섞여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가오나시처럼 주인공 영재의 괴로움이 일종의 거대한 괴물 혹은 ‘거인’으로 표현된다는 건데, 감정적인 양상의 극한을 물질적인 이미지로 환치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제목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선 독보적인 환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지적하고 싶다면 이런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제일 좋고 편한 태도는 이런 것 같아요. ‘야, 너보다 더 불쌍한 사람 많아, 너는 그래도 그룹 홈에 들어가 있고, 거기서 성적인 착취를 당하는 것도 아니고, 넌 좋은 파카 입고 다니고, 너 좋은 핸드폰 가지고 있잖아. 너보다 더 불쌍한 얘들 많은 데 왜 그래’ 라고 영재한테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힘들고 괴로울 때 가장 주변사람들이 편하게 그 상황을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은 ‘야, 너보다 더 힘든 사람 많아’, 이렇게 얘기하면 되요. 근데 굉장히 편한 방식이지만 사실 그건 그 사람의 고통에 전혀 도움도 안 될뿐더러, 1그램도 감정적인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자의 태도라는 거죠. 그러니까 영재에 대해서, 이러한 주인공의 입장과 상황과 괴로움에 대해 공감가지 않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시선까지도 이 영화는 포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불편한 지점들을 이 영화는 너무 잘 보여주고 있고, 남들이 쉽게 나아가지 못하는 부분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신인감독의 영화 치고는 굉장히 야망이 있다, 좀 더 지켜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좋게 봤습니다. 네, 여기까지.

 

정재형: 저는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을 좀 하고 싶은데, 이미 나왔던 이야기가 한 두개정도 겹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는 제 나름대로 좀 해석을 해본 건데, 첫째는 아까 이대현 선생님이 경제, 경제적 궁핍 얘기 하셨는데, 저도 역시 그런 측면에서 이게 우리 상황을, 굉장히 가난한 상황에 놓인 에피소드들을 소재로 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팩터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제가 이 영화를 굉장히 좋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어떤 한 인간형을 단적으로 잘 형상화 해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나름대로의 그 인간형을 만들어 낸 성취를 보여준다고 좋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굳이 명명하자면 생존적 인간이라고 할까요? 저는 그렇게 명명하고 싶은데,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 바로 그 한국 현대인이다. 그것을 청소년 주인공을 통해서 비유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미학적인 구조는 알레고리적 구조를 갖고 있고요, 사실은 실제의 청소년이라던가, 실제의 신부님이라던가, 실제의 아버지라기보다는 기성세대, 종교, 권력, 혹은 정치권력, 이런 어떤 하나의 시스템의 대표성들을 다 갖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도 주인공이 청소년 일 이유는 없고, 그것은 뿌리 뽑힌 사람이죠. 정주하지 못하는, 그런 가난한 한 사람인데 그 영재라는 주인공이, 굉장히 부도덕하게 살아가죠. 모든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고. 그런 데 그것은 선악의 잣대를 대입시킬 수 없을 정도로 본질적인 인간의 어떤 측면을 얘기하고, 한국이 지금 그런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 사회고, 지금 바로 그런 인물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가치판단 해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고 봅니다. 저는 사실 긍정적으로 바라보죠. 어떤 입장에서 그 사람이 단죄받기를 저는 원치 않아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진,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저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제, 왜 거인일까라는 질문을 아까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바로 거인이라는 것이 생존적 인간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오히려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거인이라고 표현을 한 것인데, 그것이 이 영화가 처음 시작을 한 것이 아니고 제가 봤을 때 일정정도의 계보가 있다고 봅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제가 언뜻 떠오르는 것은 <오발탄>이라든가, <잉여인간>이라는 그런 인간들이거든요. 이범선 원작의,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라든가, 또 손창섭 작가의 소설 그리고 유현목 감독이 역시 영화화 했던 <잉여인간>은 바로 전후의 왜 이런 인간이 존재해야만 되는가, 라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인간형들이고, 그들이 잉여적인 인간이 됐든 신이 버린, 조물조가 버린 쓸데없는 오발탄이 됐든 뭔가 이 사회의 경제적인 궁핍으로부터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던 인간이고, 그래서 정주하지 못하는 뿌리 뽑힌 인간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인간이었죠. 그래서 그 계보를 갖고 있다고 보고, 가장 최근에 제가 좋게 본 영화 중 하나는 2011년에 김중현 감독이 만든 <가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김태균 감독의 <가시>가 아니고, 2011년 김중현 감독의 <가시>. 여기서는 주부, 말하자면 여성 주인공이고 전혀 다른 소재이긴 하지만, 역시 경제적 가난 때문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그런 한국인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것의 연속성에 <거인>이 있다고 보고, 이런 영화가 알레고리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가난이란 것은 하나의 시스템의 문제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는 특히 어른과 종교재단 시설, 어른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보호시설을 운영하는 종교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어떤 시스템을 잘 보여주죠. 국가가 개인의 가난들을 나름대로 구제를 하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애를 갖다가 본인이 케어하지 않고 종교시설에다가 의탁하려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근데 그것이 굉장히 부도덕을 방조하는 역할을 하죠. 그런 부분이 하나의 알레고리적인 거고, 결국은 영재라는 얘가 괴롭게, 부도덕하게 생존할 수밖에 없는 원인제공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저는 또 역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거를 많이 느꼈어요, 보면서.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더 ‘야, 이 세월호 사건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 한국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횡단하는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구나’. 이 <거인>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바로 그 영재의 그런 비극적인 부분을, 인간형을 설명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에 제가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명백히 실존주의적인 계보를 갖고 있다. 그래서 문학적으로 보면 카뮈의 『이방인』 이라든지, 샤르트르의 『구토』 라든지, 이런 소설들이 이런 인간형을 만들어 냈거든요. <거인>의 영재와 같은 인물을 만들었죠. 굉장히 부도덕하지만, 굉장히 생존적인 인간, 이런 인간을 만들어 냈고, 영화로써는 브레송의 <소매치기>라든지 그리고 다르덴의 <차일드>에 이르기까지 애를 팔아먹잖아요? 그런 식의 부도덕한 실존주의 계보를 갖고 있죠, 이 영화가. 또 우리나라의 <오발탄>, <잉여인간>, 이런 소설이나 영화, 이런 것들이 일정정도 선이 그어지는 것이라서, 저는 그런 맥으로 이 영화를 해석하고 싶어요. 지금 2014년에 나왔다고 해서, 50년대의 문맥과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실존주의의 문맥에서 보면 여전히 같은 시간대의 정신상황을 한국이 갖고 가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통해서 이 영화를 해석하고 싶습니다. 네, 이상입니다.

 

이수향: 정재형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수긍가는 부분이 있는 게, 그 실존주의적인 문제의식이나 그런 것들을 이야기 하셨는데 저도 이 영화에서 보면 영어 제목이 “Set Me Free”예요.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 그런 식의 의미인데, 영재로 하여금 제일 고통스런 이 말을 울부짖게 하는 이유가 뭐냐 하고 생각했을 때, 책임지지 않는 부모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종교단체-센터 같은 데에, 그룹 홈에 그대로 가만히 버티고 사는 것도 겨우겨우 너무 견디기 힘든데, 부모나 동생까지 맡기려 하는 이런 저러한 상황들이 계속 영재를 속박하고 옥죄는 거죠. 실존주의적 문제의식을 다루는 용어 중에 제일 중요한 게 ‘상황’이라는 맥락이 있고, ‘속박’이라는 틀이 있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말씀하신대로 저도 여기서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일정부분 세월호 사건 이후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저는 얘기되지 않은 것 중에서는 좀 재밌는 게, 종교단체에 의한 긍휼, compassion의 문제에 대해서 이 영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되게 단순하게 이걸 표현하려면 그 종교단체 원장이나, 그 원장 남편이 막 성적으로 착취를 하거나, 얘들 밥 안주고 더럽게 하거나 이렇게 하면 너무 쉬워요, 영화가.

 

이대연: 그게 젤 불편했어요.

 

이수향: 근데 이게 되게 오묘해요. 그러니까 되게 1차원적으로 괴롭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의 역할을 엄청 안하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봉사를 받고 있는 영재가 거기서 행복하지 않은 거잖아요, 사실은. 그들이 진짜 주려고 했던 compassion이나 종교적인 자비나 긍휼에 결국 이르지 못한다는 건데, 그런 부분을 조금 미묘하게 따라가고 있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진 특이한 속성이라고 생각해서, 단순하게 비판한 것에 비해서 굉장히 층위가 복잡한 거예요, 이 영화는. 그게 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R678x0aa 

정재형: 잠깐만, 잠깐만. 또 잊어버릴까봐, 생각났어. (웃음) 지금 이게 두 가진데, 하나는 사실 『이방인』의 구조하고 아주 굉장히 흡사해요. 왜냐면 『이방인』에도 마지막에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하고,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무덤덤하거든요, 뫼르소, 주인공이. 그래서 거기서도 종교와의 그런 어떤 부분을 얘기하고 있고, 지금 수향씨가 얘기한대로 종교가 이 영화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저는 사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 가지죠, 하나는 영재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거. 그다음에 두 번째는 아버지에게 이용당한다는 거. 그래서 이 두 가지로 기능을 하거든요, 그 종교단체가. 주인공 영재한테 기능하지 못한다는 건 뭐냐면 정말로 영재의 내면을 갖다가, 종교가 한 개인의 내면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지 못해요. 그렇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이 영화에서 보이고, 적어도 묘사되는 보호단체라는 것은 신부님은 전혀 엉뚱한 지점에서 놀고 계시고, 사태파악이 전혀 안되고요. 소위 양아버지와 같은 기능을 하는, 양어머니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인물들은) 굉장히 일정정도 거리감이 있다는 걸 관객한테 느끼게 해 주죠. 굉장한 거리감을 보여주거든요. 이 주인공이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죠. 주인공은 그러면서 계속 도둑질을 하고 있고, 역시 주인공은 나름대로 그걸 또 이용을 하고 있는 그런 시설일 뿐이에요. 보호 시설일 뿐인 거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양아버지도 계속 믿지를 않잖아요? 계속 경고를 하고, ‘난 너를 믿지 않는다.’ 이런 식의 관계 형성이 되어 있고. 그리고 더 놀라운 거는 아버지가 결국 이용한다는 거죠. 결국은 완전히 속을 뻔 했잖아요. 그래서 동생도 거기다 위탁을 할 뻔 한 그런 상황까지 갔고. 그러니까 이것을 하나의 알레고리로 본다면 종교가 한 개인의 아주 진곡한 내면까지를 껴안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참 부족하다, 여전히 빈 구멍, 맨홀 속에서 계속 방황을 하고 있는 실존적 주체들이 너무나 많다. 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어떤 질문을 한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종교문제를 얘기한다면 과거에 우리가 다뤘던 <사이비> 같은 그런 것과 같이 놓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참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와 <사이비>를 보면 종교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으로부터, 실제적인 삶으로부터 유리 되어있는가?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이지현: 저는 종교적이라고 봤던 것이, 주인공은 무책임한 아버지와 무능력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거잖아요? 사실은 한국 제목보다 영어 제목이 더 어울리는 영화인 것 같은데, 주인공은 자기 인생이 좀 더 나아지기 위한 어떠한 희생도 하지 않아요, 사실은. 그래서 구호품이나 훔쳐다 갖다 팔고, ‘쟤는 왜 일을 안 하지?’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희생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구원받기를 원하고. 자기가 ‘이삭의 집’에 있으면 보다 평범한 삶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더 있겠다, 라고 생각하게 그렇게 시도하다가 결국은 실패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보면 ‘역설적인 의미’로 종교적인 코드가 있지 않나.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부정적인 의미.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이수향: 저는 약간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요. 저도 이 영화에서 분명히 종교적인 구휼이나 시스템을 통한 것에 맹점이 있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예요. 예전에 <밀양> 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근데 이 영재라는 친구가, 그리고 그 또 다른 친구 이름이 뭐였지? 같은 방 쓰다가 쫓겨 났다가, 나중에 얘의 약점을 틀어쥐고 계속 얘를 협박하는 그 친구 있잖아요? 이 영화에서 되게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이 그건 것 같은데, 얜 또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범태죠, 범태. 그 친구마저 신고를 해요. 그래서 걔는 이제 경찰에 끌려가는데, 얘가 여기저기에서 길도 막히고, 자기가 되게 신학대를 지원하는 착한 아이인 척 했지만 자기의 본색을 다 들키고, 자기의 처절한 내면이 다 보이고, 상황적인, 뭔가 말하기 힘든 복잡한 게 다 들킨 다음에 정말 숨을 곳이 없고, 갈 곳이 없어진 아이가 결국 성당을 찾아가죠. 성당을 찾아가서 울고 있어요. 울고 있는데, 저 멀리 보니까 자기가 신고했던 친구 범태가 또 여기를 와요. 와가지고 조용히 앉는 거죠. 서로가 서로를 신고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따지고 들자면 넉살잡고 치고 박고 싸울만한 이유가 충분한 상황에서 그 아이들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울기만 하거든요? 그 장면이 굉장히 가슴이 아팠는데, 그렇다면 어떤 단체나 시스템을 통한 이 아이들의 구원은 사실 굉장히 요원해 보이지만, 그 아이들에게 어쨌건 성당이라든가 교회라든가 그런 단체가 가진 기표 자체로써의 의미가 유일하게 이들이 찾아갈 수 있는 어떤 마지막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종교성 자체를 모두 다 비난한다거나 부정한다고 보기 보다는, 기표 자체에 대한 마음은 살아 있되 사실 인간이 만들려고 하는 시스템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저는 그런 느낌도 받았습니다.

 

정재형: 그 <사이비>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애매모호하게 끝나잖아요. 현세의 종교를 갖다가 완벽하게 부정하고, 종교 집단의 그런 부조리를 탄핵을 하고 결국은 미친 사람이라고 느껴졌던 그 주인공의 말이 다 맞고, 경찰들이 나중에 개입하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데, 마지막에 그 주인공은 동굴 같은데 들어가 가지고 막 또 기도를 하잖아요. 저는 이 영화도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지금 수향씨가 얘기한 대로 저는 그거 자체를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는 거죠. 결국은 이들이 의탁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이들의 마음이었던 거예요. 종교라는 건 결국 사람이 만든 것 아닙니까. 결국 인간은 종교를 끊임없이,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그것이 결국은 어떤 교회가 됐든 성당이 됐든 어느 공간이겠지만 그러나 결국은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닌 거죠. 사람들은 아니고, 도그마도 아니고. 그런 모순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죠, 끊임없이 마음속의 공간은 그들은 신이나 절대자의 신앙으로 표현하고 싶은. 왜냐하면 인간은 나약하니까 끊임없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교라는 어떤 우상을 만들 수밖에 없는. 그래서 분명히 기성의 어떤 현세적인 종교는 비판한 거라고 보여 저요. 비판했고, 비판하지만, 또 그런 신앙조차 비판할 순 없으니까 그런 모습, 가서 기도드리는 모습으로. 그 자체가 굉장히 나약한 모습 아닐까요? 굉장히 나약한 모습. 그게 <사이비>의 마지막 엔딩하고 너무 흡사하다고도 느껴져요.

 

이대연: 종교얘기가 나오니까 기독교인으로서 (웃음) 농담이구요, 저는 『이방인』 이나 이런 거 말씀 하셨지만, 동의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저는 『적과 흑』 이 보는 순간 떠올랐거든요. 줄리앙 소렐이 신부가 되잖아요. 신부가 되나요, 되려고 하나요? 뭐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신부가 되거나 군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그러니까 프랑스 혁명이 있고, 나폴레옹이 지나간 다음 시기, 약간 이 모습들이, 성인들의, 어른들의 모습들이 약간 폭력적이고 부패한 왕당파와 무능한 공화파, 당시의 이런 모습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마치 영재가 줄리앙 소렐을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적어도 줄리앙 소렐은 성공을 위해서 발버둥 치고 하는데 얘는 성공을 위해서라기보다 뭔가 생존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되게 안타가운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면서 아 요게 요런 식으로 가겠구나, 라는 기본적인 『적과 흑』 의 플롯대로 예상을 하고 있다 보니까 어떤 생각까지 들게 되냐면, 영재가 과외선생 누나를 뭔가 이용을 하겠구나, 그래서 아주 기생충처럼 숙주를 버리고 계속적으로 숙주를 옮겨 다니는 그러한 경우처럼, 그 이삭의 집인가요? 거기서 그 과외선생 누나의 집으로 옮겨가는. 자꾸 밖에서 바라보잖아요? 그게 고걸 대비하는 어떤 과정들이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요럴 줄 알았지?’ 하고 안하더라고요. (웃음)

 

이수향: 맥거핀이야, 약간?

 

정재형: 의도하긴 했는데, 거기까지는 완전히 줄리앙 소렐처럼.

 

이대연: ‘눈치 챘나?’ 이러면서. 그냥 그런 생각도 들었고, 또 하나는 그 아버지가 네 걘가 다섯 개의 교회를 다니잖아요. 이 이삭의 집도 성당에서 운영하는 건데, 근데 그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뭐냐 하면 아버지가 통화를 하면서 그쪽에서 물어본 것 같은데, “다른 교회 나가시는 거 아니죠?” 라고 아마 물어봤을 거고, 이 남자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나한테는 어디어디 교회밖에는 없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순간에 든 생각이 뭐냐면 결국은 이 사람들한테, 이 아버지한테 돈을 주는 거는 교회지, 하느님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종교라고 하는 것과, 어떤 종교성이나 이런 것은 좀 구분해서 여기서는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종교 단체나 이런 것들이 결국은 사람의 논리로,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을 조금 비아냥거리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제일 마지막에 결국 성당에 가서 둘이 맥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얘네 들이 찾은 건 결국 인간들의 논리와 인간들의 구조 속에서 밀려난 어떤 지점인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얘들이 간 데가 어딘가 하면, 결국 성당이라는 덴데 ‘얘네 들이 거기서 찾은 게 뭘까?’ 를 생각해 보면, 어떤 초월성인 것 같거든요. 근데 그 초월성이란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얘네 들이 본 것은 성이라는 것도 결국 속의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란 걸 충분히 보아온 얘들인데, 얘들이 성당에 가서 다시 그 성스러움의 어떤 힘을 바라고 있을 때는, 뭐랄까요, 정말 이 세상에서는......

 

이수향: 네, 맞는 말씀 인 것 같아요.

 

이지현: 저는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집이 없고 돌아갈 곳이 없는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것은 사실 한정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리얼한 거죠 사실은. 우리가 거기에 계속 의미를 부여하는데 사실상 걔네들이 갈 곳이 어디 있겠어요.

 

이수향: 근데 그거 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걔네가 돈이 아무 것도 없는 얘들이 아니었고, 어쨌거나 다만 몇 푼이라도 있는 얘들이었고, 사실 범태 같은 경우는 계속 찜질방 돌아다니고 이런 애였거든요. PC방에서 밤 샐 수도 있고... 거기 계속 있을 수는 없고, 거기 밤에 잘 수도 없는 데잖아요? 그런 데는 잠깐 있다 나올 수밖에 없는 덴데, 근데 뭐 갈 데가 없어서 거기 같다는 것은......

 

이대연: 성당을 어떤지 모르는데, 교회는 잠가 두죠.

 

이수향: 잠그죠.

 

이지현: 그런데 주인공이 의지가 굉장히 강한 애잖아요. 인생이 망가지지 않기를 원해서 사실은 집이 있는데도 집을 나온 거고, 또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강한 친구고. 주인공과 같이 살던 친구는 모범생이면서 아버지에게 되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요. 과외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엄마랑 사이가 굉장히 좋잖아요. 그래서 저는 과외선생님을 볼 때는 주인공이 안 그런 척 하지만 많이 부러워하는 시선들을 느꼈거든요. 과외선생님을 보는 시선이나 주인공의 친구를 보는 시선에서.

 

정재형: 성당 얘기를 잠깐 하면, 덴마크 영화 <헌트>라는 영화에 보면, 일종의 마녀사냥 같은 억울하게 몰려가지고 진실이 묻혀 져 있을 때 정말 자기가 믿었던 어떤 친구와... 그런데 어찌 보면 배신의 감정은 물론 아니지만 그 친구는 자기를 그래도 믿어줄 줄 알았는데 그 친구가 끝까지 자기를 모른 척 하니까, 그러니까 너무 분한 나머지 그 성당에서 예배를 보다가 완전히 뒤집어져가지고 폭발하는, 거기서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거기서 사실 친구가 좀 바뀌죠, 바뀌기도 하는데 왜 하필이면 그 장소가 성당일까, 왜 교회일까? 이거는 저는 그 자체도 하나의 알레고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게 왜냐면 인간이 정말 그래도, 그나마, 그 배경이 어땠고 살아온 과정이 어땠던 간에 그 순간만큼은 그러한 공간성 그 속에서 진심이 터져 나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공간을 미학적으로, 양식적으로 채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렇게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엉뚱한 것은 아니겠다, 저는 또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2014-11-24 22.40.27 

이수향: 비슷한 생각이 드는 데, 아까 이대연 선생님이 초월성 얘기하는데, 그리고 정재형 선생님께서 알레고리적 공간을 얘기하는 것도 저는 굉장히 수긍이 가는데요? 그러니까 비슷한 거예요. 얘네가 성당 다녀서 여기 간 건 그럴 수 있다 치는데, 가령 뜬금없는 영환데, 그 <약속>에 보면 막판에 조폭 두목이랑 전도연이 굳이 왜 성당이나 교회를 가서... 뭐 누가 와서 결혼식 승인됐다고 땅땅땅 찍어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거기 가서 의탁을 하잖아요. 자기 결혼식이 진짜임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진정성 있는 것임을 확인받기를 바라는 의식인데, 그게 재미있는 거예요. 얘네가 종교성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니까요. 그건 그러니까 말씀하신 대로 공간 자체가 주는 알레고리적인 기표가 있고, 또 뭔가 초월적이고, 사람들은 모르지만 누군가는 정말 우릴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그런 메타포로써 그런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재형: 그 영화가 잠시 또 떠올랐는데, 원작이 이만희 작가의 희곡이잖아요? 이만희 작가의 희곡,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원작 <돌아서서 떠나라>) 인가? 뭐 그런...

 

민병선: 박수칠 때 떠나라.

 

정재형: 아니, 그거 말고. <약속>의 원작이 이만희 작가의 희곡이고, 연극으로 했었는데, 그 희곡은 사실은 면회 장소에서 계속... 굳이 말하자면 박신양의 면회를 온, 조폭의 면회를 온  간호원인가? 그 여자의, 계속 거기서 벌어지는 얘기고, 회상과 그거를 통해서 보여주거든요? 그것을 영화를 통해서 그렇게...

 

이수향: “돌아서서 떠나라.”

 

정재형: 예, <돌아서서 떠나라>. 그래서 그걸 영화적으로 하는 것은, 하나의 영화적 장치라고 보여지죠.

 

이지현: 김태용 감독 단편 중에서, <인생은 새옹지마>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인데, 뜬금없이 ‘사랑이 최고다’ 이런 대사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게 되게 뜬금없이 들려요. 감독이 천주교 보호시설에서 자란 배경이 있으니까 이런 대사를 썼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뭐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이 사랑이다... 뭐 이런.

 

이대연: 스탕달도 죽기 전에 그런 얘기를 했는데... (웃음) 살아보니까, 연애한 여자들, 사랑한 여자들의 얼굴 밖에 기억나는 게 없다.

 

이지현: <인생은 새옹지마>의 마지막 대사가... 그래서 좀 뜬금없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정재형: 지금까지 나온 얘기와 좀 다른 얘긴데 그 영재 역할을 했던 연기자의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그 눈빛하며, 뭔가 눈치를 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앞의 계획을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우리가 흔히 말해서 머리 굴린다, 잔머리 굴린다고... 그런 캐릭터의 연기에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감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만 저는 사실은 주인공의 연기가 어쩜 그렇게 이 영화를 잘 해석 하는지... 정말로 그... 농담이지만 만약에 뭐 연기상을 준다면 남자 연기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그 주제의식 같은 거를 참 잘 해석하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지현: 선생님 그런데 주인공 배우가 다른 작품에서는 그렇게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고...

 

정재형: 아 그렇습니까?, 못 봤어.

 

이지현: 약간 어색한... 뭔가 약간 어색해요. 표정 같은 것들이... 어색한 느낌이 드는데, 이 작품에서 너무 연기를 잘 하는 것 같아요.

 

정재형: 상을 뭐 하나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지현: 그리고 <밤벌레>라는 작품에서 되게 재밌는 게 뭐였냐면, 남자애들 둘이 나오거든요? 한 명은 포주 역할을 하고, 한 명은 약간 동성애 매춘부같은 역할이 나오는데...

 

이수향: 영화 제목이 뭐라고요?

 

이지현 : <밤벌레>요. 거기서의 동성애 매춘부 아이의 생김새와 <거인>의 남자주인공 생김새가 비슷하고요. 그 포주 배우와 <거인>에서의 아버지랑 닮았어요. 그게 재밌더라고요.

 

이수향: 이수향입니다. 저도 이 최우식 배우의 연기를 굉장히 놀랍게 봤고요. 제가 그냥 TV에서 봤을 땐 일일극 이런 데서 약간 귀여우면서 전형적인 도시 청년 같은? 그냥 그런 귀여운 캐릭터 남자애로 나왔어요. 근데 이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좀 재밌게 봤고요. 그냥 전형적인 젊은 남자 연기자? 신인? 딱 이런 느낌인데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저는 말씀하신대로 그룹 홈에서 눈치보고 뭐 이런 장면도 되게 재밌었지만 또 신기했던 장면이 친구들한테 나이키 신발을, 기증품 들어온 거를 막 팔잖아요? 자기가 몰래 가져가서 파는 데, 되게 미묘한데 그 연기를 잘해줬어요. 오히려 울고 이런 연기는 차라리 쉽다고 생각해요, 전. 근데 약간 어려운 게 거기서 그걸 가져갔던 애 중 한명이 와가지고 ‘야, 이거 밑창이 뜯어졌으니까 환불해줘’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거든요? 얘는 되게 복잡한 거예요, 뭔가. 이거를 집으로 가져갈 순 당연히 없고, 걔한테 당연히 돈을 돌려주긴 싫지만 또 걔가 ‘야, 너 그럼 담임한테 다 이른다.’ 이렇게 얘기 하니까, 걔한테는 굴욕적으로 보이지만 그래서 자존심을 굽히고 걔한테 돈을 돌려줘야 되는 그런 상황. 이런 거를 표현하는 그 어떤 미묘한... 자존심이 상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굽혀야 하고, 굴욕적이지만 또 해야 되는. 이런 복잡한 표정을 정말 잘 하더라고요. 그거를 보면서 참 재능있구나, 잘하는 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정재형: 짧게 얘기할게요. 그 나는 최우식이라는 배우가 청소년 역할이지만 그 연기를 보면서 사실 성인들의 삶을 보고 있다 라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기 때문에 너무 연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로 이게 청소년을 다룬 어떤 영화가 아니라 확산된 거죠. 말하자면 하나의 알레고리로써 바로 그 한국인의, 우리의 이 시 대를 살아가는 그러한 생존적인 인간의 모습을 정말 잘 보게 하더라고요. 그것이 나이에 국한 대는 것이 아닌... 그런 점에서 연기도 참 잘 맞았던, 잘 묘사됐던 그런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병선: 연기는... 전 단순히 생각한 게, 그 친구가 캐나다에서 왔더라고요. 그래가지고 한국문화나 이런 걸 이해를 잘 못하는 그런 너의 상황을 지금 이 영화에, 말씀하셨듯이 이방인적인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데, 요쪽에서도 살아남아야 되고, 이쪽에서도 임기응변을 발휘해야 하는 게, 한국에 와서 연기를 하고, 살아가려고 하는 데 이게 그 친구의 그 스타일들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구나... 막 그런 느낌도 좀 받았어요.

 

정재형: 캐나다인이야?

 

이지현: 어린 시절을 보냈대요.

 

이대연: 저는 사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는 게 뭔지를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그냥 봤는데, 조금 그 느낌은 들었거든요. 근데 이 느낌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카메라가 보여주는 시선에 비해서 영재라는 아이를 연기한 최우식 인가요? 그 배우 톤이 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뭔가 약간 3도 정도 떠있는 느낌이 들어가지고,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은 좀 들었었는데, 일단 잘 모르겠고요.

플롯에서 아까 맥거핀, 그 과외선생 누나는 인질로 잡히기 위해서 나온 건가요? 인질로 잡히기 위해서 나온 것 같은 그 느낌이 들어가지고. 조금 후반에 사실은, 제가 볼 때는 플롯 상으로 보면 한 30분 정도가 더 있어야 이 영화가 될 것 같은데, 여자가 나오고, 여자 집을 혼자서 가면서 창밖에서 들여다보는 씬들이 몇 번 나오고, 관계가 뭔가 진전되면서 또 다른 얘기가 한 번 정도는 더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끝나가지고 그게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이삭의 집에 와 가지고 갑자기 거기서 영재의 분노와 그것들이 다 터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해는 가는 데 약간 과잉 아닌가? 라는 생각도 좀 들었고요, 저 상황에서 아무리 다급하고, 절박한 그런 느낌은 알겠는데, 갑자기 칼을 가져와가지고 저러는 행동이 지금까지 얘가 보여준 어떤 모습들에 비해가지고 뭔가 조금 성격이 달라진 분위기, 그러니까 걔가 터질 지점 이었는가 의심스럽기도 하고요. 저렇게 터질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는가도 조금 의심스러운 게 뭐냐면 굉장히 영악스럽고, 물론 그 전에 얘가 신부님한테 아주 다급하고, 강하고 협박조로 얘기하는 뭐 이런 모습들이라든가, 그리고 과외 선생님에게도 그런 모습들을 보이면서 아, 얘가 뭔가 지금 상황이 약간 불안정한 상황이구나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럴 정도의 과잉된 어떤 모습을 보여줄 만한 그런 부분이었을까 라는 것은 조금 아쉬웠던.

R678x0mmm 

정재형: 저도 약간 그거와 비슷한 지점에 의문을 가진 것이 있어요. 뭐냐 하면 실존주의적인 캐릭터로써는 다르덴의 <차일드>에 나오는 부르노라는 인물이라든지, 브레송의 <소매치기>에 나오는 인물이라든지, 『이방인』의 뫼르소라든지, 하나같이 그 인물들은 사실 그 현재를 살아가는 거지, 이상주의자거나 정의로운 인간들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현실이 개혁되기를 바라는 이즘을 갖고 있거나 하지 않아요. 그 어떤 뚜렷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만 갖고 있죠, 분명히. 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권리와 천부적인 나의 성격과 뭐 이런 것들을 충분히 본인이 변호하고 그런 것이지, 세상이 이렇게 가야한다, 뭐 이런 식의 계몽을 한다든가 하는 이즘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영재가 왔다 갔다 해요. 그러니까 그런 행위들을 보면 굉장히 실존주의적인 인간인데, 또 아버지에 대해서는 훈계를 하거든요. 이렇게 살아야 된다. 어른에 대해서 훈계를 하고, 어떤 뚜렷한 이즘을 갖고 있고, 또 동생을 대하는 태도도 뭔가 동생한테 옷도 물려주고 하면서 굉장히 선행을 한단 말이죠. ‘나는 이렇게 살지만, 너는 이렇게 살지 마’라는 식의 흔한 훈계처럼, 동생에게는 굉장히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렇다 면은 실존주의적인 인간형이 아니라 완전히 도덕주의적인 인간이고, 정의로운 인간이고. 이런 어떤 것들이 묘하게 결합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바로 그 칼로 난동을 피우고 하는 부분에서도 굉장히 정말 오버가 됐다 라는게... 아버지가 하는 행동이 싫어서 그런 거기는 하지만, 너무 오버됐다 라는 생각을 가져서 좀 튀더라고요. 그런데 어쨌거나 그런 것들에 대한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저는 대단한 수확이다, 이런 작품은 굉장히 보기 드문 좋은 작품이라고 보여 지는데, 고런 부분은 감독이 사실 좀 혼란스럽지 않은 가, 그런 생각도 좀 듭니다.

 

이수향: 이수향입니다. 저는, 같은 장면 가지고 여러 가지 생각이 가능하잖아요? 저는 사실 그 장면이 튄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안 했어요. 왜냐면 이 친구가 실존적으로 괴로운 건 사실인데, 얘가 현실적으로 제일 싫은 건 뭐냐면 여기 이 그룹 홈에서 나가는 게 1위. 그리고 2위는, 즉 더 싫은 건 아빠가 동생을 여기까지 넣으려고 하는 것. 두 개가 사실은 제일 싫은 거예요, 세상에서. 이 거 두 개만 아니었으면 이 상황에서그냥 저냥 버티며 살 것 같은데, 이 거 두 개 때문에 지금 미칠 것 같은 거예요. 아빠가 자꾸 동생까지 여기에 넣으려고 하니까. 왜냐면 내가 돌아갈 때가 없거든. 동생까지 여기 오면, 엄마도 아빠도 없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되면 내가 정말 정주할 곳이 없어지니까 그게 너무 싫은데, 아빠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하는 거예요. 왜냐면 여기에 억지로 동생을 밀어 넣음으로 해서 동생이 오는 것도 싫은데, 이런 식으로 되면서 자기 가족의 치부가 이 앞에서 점점 더 밝혀지고, 난 여기서 착한 척 하면서 살고 있고, 그나마 ‘집에 갔는데, 잘 계시더라고요.’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집 사정을 얘기 안하고 그럭저럭 버텨보려고 하는데 그 거짓되지만 최소한의 자존감으로 가리려 하는 영재의 세계가 무너지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 두 개를 아빠가 폭발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실 그 장면이 별로, 저 개인 취향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지현: 저도 마지막 장면이 무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 든 생각인데, 이대연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셨던 과외선생님과의 관계에서는, 이 감독 <서울 연애>에서 아마, 영화는 못 봤는데, 그런 관계가 좀 다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추측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저도 그 마지막 장면은 별로 튄다는 느낌이 안 들었는데...

 

정재형: 아니, 이게 크게 논쟁할 만한 것은 아닌데, 영화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영화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런 문맥적으로나. 그런데 제가 꼭 문제 삼는 것은 꼭 그 장면만이 아니라 영재란 얘가 일관적으로 갖고 있는, 걔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질문을 좀 하게 되는 거죠. 얘가 굉장히 생존에 대한 어떤 그런 부분만을 강하게 갖고 가는 인간형이냐, 반항적 인간, 소위 말해 카뮈가 얘기한 대로, 그런 인간이냐, 아니면 뭔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어떤 저항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이즘을 갖고 있는 친구인가, 그런 부분에서 조금 이렇게 섞여있다 라는 거죠. 특히 저는, 그것이 가장 많이 섞여있는 게 동생에 대한 계몽적인 태도예요. 순수한, 아무것도 모르는, 티 없이 맑은 동생만큼은 자기와 같은 전처를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내가 참 동생만큼은 잘 해주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고전적인 문맥이고. 그런데 그러기에는 이 친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동생을 거둘 여유조차도 없을 정도로 자기의 생존에 대한 본성이 굉장히 강하게, 너무 강하게 작용하는 친구거든요. 그러니까 친구를 갖다가 고발을 한다든지, 아주 잔인할 정도로 생존에 대해서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아버지에 대한 태도나 이런 건 다 이해가 가는데, 동생에 대한 태도에서는 조금 모순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고, 일관성을 좀 혼란스럽게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그 마지막 장면 자체만 가지고 크게 문제 삼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일관성이 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서, 감독이 조금 더 그런 부분이 어떤 생각으로 정리 될지, 그건 다음 작품을 봐야 되겠죠. (웃음)

 

이지현: 저는 주인공 캐릭터가 굉장히 리얼하다고 느꼈던 지점이, 제가 느꼈던 해외 입양아 출신 아이들이나 이런 상처를 받고 성장한 사람들이 가진 어떤 공통적인  느낌 같은 게 있는데, 영재 캐릭터에서도 이런 게 드러난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거든요. 그래서 외적으로는 굉장히 공손하면서, 안에 품고 있는 분노들이 있잖아요? 버림받은 것에 대한 분노는 어떤 형태로든 표출이 되요.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 무책임한 아버지를 비난하지만, 막상 본인도 현실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잖아요. 아버지가 돈을 안 번다고  뭐라고 하지만, 주인공 본인도 훔치면서 살아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죠. 하지만 그걸  쉽게 비난할 수는 없죠, 사실. 그 아이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캐릭터들이 굉장히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인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감독 본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추는 솔직한 이야기를 던졌다는 게 감독으로서 굉장한 용기였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수향: 저는 이 작품에서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하셔서 생각이 났는데, 이 작품이 되게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라고 생각했던 장면은, 우리가 영화나 문학이나 이런 데서 연대를 얘기할 때 쉬운 방식 중 하나가 강자가 우리에게 심하게 하니까 약자들끼리 연대해서 이걸 좀 잘 해쳐나가면 좋지 않을까, 라는 식의 일반적인 문법이 있잖아요.

 

정재형: 카트, 카트. (웃음) 카트로 넘어갈 때 됐나보다.

 

이수향: (웃음) 이 영화에서 그 영재에게 쫓겨난 친구 범태가 와 가지고 막 이러잖아요. “야, 좀 원장아버지한테 얘기 좀 잘해서, 나 다시 들어가게 해줘. 원장선생님이 너 이뻐 하잖아.” 뭐 이렇게 얘기 하니까 얘가 정말 약간 미칠려고 하는 표정을 봤어요. 정말 약간 눈이 확 돌더라고요. 영재가 정말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얘기를 해요. ‘멍청한 자식아.’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 의중은 이런 거죠. 너가 정말 멍청한 거는 내가 원장한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것 자체가 니가 얼마나 현실 파악이 안 된다는 의미냐, 뭐 이런 뜻이죠. 그건 또 다른 의미로는 나는 나 하나도 거기서 견디기도 힘든 상황인데 내가 널 어떻게 거둬 이 멍청한 놈아, 막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거거든요.

 

이대연: 누가 누굴 도와줘

 

이수향: 그러니까 누가 누굴 도와줘. 뭐 이렇게 되게 낮은데 되게 정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정말 그게 너무 걔한테는 지금 강한 거예요, 그 마음이. 나 하나도 견디기 힘든데, 약자의 연대, 이런 얘기는 얘 앞에서는 너무 허울 좋은 얘긴 거예요. 지금 자기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우리가 정말 쉽게 갈 수 있는 어떤 그런 표현에 대해 감독이 조금 비트는 부분이 사실 이 영화가 가지는, 다른 이런 작은 성장영화? 작은 약자들의 뭐 이런 거를 다룬 영화들과 달라진 점이 아닌가. 그런 부분에서 조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특이한 점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연: 근데 지금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를 하는데, 이게 사실은 노동자들이나 자본가들의 이런 싸움에서 굉장히 고전적인 분열 방식이고, 분열 전략이고, 서로 싸우게 하는 그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한국 영화에서 표현들이 안됐던 게 오히려 저는 좀 이상할 정도였어요. 제가 그런 모습을 좀 기억나는 한에서 처음 본 거는 <하녀>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났었거든요. 이런 식의 시점, 관점은 다른 데서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많은데, 거기서 보면 하녀로 나오는 전도연이나 부인이나, 결국은 이정재라는 절대적인 가장 아래서는 다 똑같은 사람인 거잖아요. 똑같은 여자인거고. 그런데 서로 싸운다고 해야 하나요? 서로 질투어린 시선이나, 이런 것들을 하고. 사실은 그 모습들이, 한국의 노동 시장 안에서의 그런 모습들이 아주 비일비재한 모습들 인건데 그런 것들이 너무 표현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이게 <거인>하고 무슨 상관있죠, 지금? (웃음)

 

이수향: <카트> 인 것 같은데?

 

이대연: 연대 얘기 하면서... (웃음) 사실은 영재의 대사나 그런 모습들이 현실이면서도 되게 부정하고 싶은, 영화에서는 오히려 안 나왔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을 했지만, 막상 나오니까 너무 불편해지는 그런 지점이었다는 생각이 좀 듭니다. 예, <카트>로 자연스럽게..

.

정재형: (웃음) 연대 나오고, 뭐 고전적인 방식 나오고 그러는데. <카트>로 넘어 갈까요, 그러면?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4-12-13

조회수2,730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
번호제목등록자등록일조회수
29합평회<거인>참석자: 이대연, 민병선, 정재형, 이지현, 이수향, 성진수, 양경미

관리자

2014.12.132,730
28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족구왕>1부 참석자: 정재형, 민병선, 양경미, 안숭범, 이수향, 성진수, 윤성은, 박태식

관리자

2014.11.082,102
27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족구왕>2부 참석자: 정재형, 민병선, 양경미, 안숭범, 이수향, 성진수, 윤성은, 박태식

관리자

2014.11.081,898
26 씨네톡(영평):<자유의언덕>성진수, 박태식, 이대연, 이수향, 정재형, 민병선

관리자

2014.10.212,227
25씨네톡 <스톤>참석자: 정재형, 박태식, 민병선, 이대연, 안숭범, 성진수, 윤성은, 이수향

관리자

2014.09.102,040
24씨네톡 <경주>참석자: 박태식, 정재형, 민병선, 이대연, 성진수, 윤성은, 이수향

관리자

2014.09.102,139
23씨네톡 <하이힐>참석자: 박태식, 정재형, 민병선, 이대연, 성진수, 윤성은, 이수향

관리자

2014.09.092,138
22씨네톡<타짜: 신의 손> 참석자: 정재형, 민병선, 이대연, 안숭범, 성진수, 윤성은, 이수향

관리자

2014.09.092,353
21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명량> 2부 박태식, 정재형, 이수향, 윤성은, 성진수, 안숭범, 이대연, 민병선

관리자

2014.08.203,406
20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군도>와 <명량> 1부 박태식, 정재형, 이수향, 윤성은, 성진수, 안숭범, 이대연, 민병선

관리자

2014.08.202,654